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로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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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일 | 1972.06.26 |
태조, 교육진흥책, 향교, 동래향교, 임진왜란, 경국대전
기본정보
1392년(태조 원년) 나라에서 교육진흥책을 위해 지방에 향교를 설립함에 따라 동래에도 동래향교가 설립되었다고 생각되나,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타버렸다.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홍준(洪遵)이 재건한 이후 여러 차례 옮겼다가 1813년(순조 13)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7년 9월 도리이상을 해체보수하였고, 2010년 9월 주초이상 해체보수를 거쳐 2011년 8월 단청 및 수지처리를 완료하였다. 2013년 5월 8일 지정 명칭이 동래향교에서 동래향교 대성전으로 변경되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규정을 보면, 동래향교에는 종6품의 교수 1명과 학생 70명이 있으며,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해 학전(學田) 7결(結)이 지급되었다. 향교의 건물구조는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동무(東廡)서무(西廡)와 내·외삼문, 협문으로 구성된 제향공간(祭享 空間)과, 명륜당(明倫堂)을 중심으로 반화루(攀化樓), 동재(東齋), 서재(西齋)로 구성된 강학공간(講學空間)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이고, 공포는 이익공이며, 부속건물로 앞쪽 좌우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동무서무 등이 있 다.
대성전에는 공자(孔子) 이하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 7분과 우리나라 유학자 18분을 모시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유림(儒林)들에 의해 석전대제(釋奠大祭)가 봉행되고 있다.
현존하는 향교 대성전 건물 중에서는 다소 늦은 시기에 건축된 건물이지만 구조와 평면형식, 입면구성 및 세부에서 조선후기 향교 대성전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등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