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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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96 ㅣ 2024.04.02
칼럼 리더의 조건 춘분이 지나 봄꽃들이 마치 너도나도 뻥튀기 터지듯 피어오르는 시기다. 머잖아 새하얀 벚꽃들이 개화해 봄의 전성기를 뽐내겠지. 밤에 가로등이 켜진 벚꽃길을 걷는 흥취를 어찌 필설로 형용할 수 있으랴. 그러다 봄비가 내리면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바닥을 온통 덮을 테다. 꽃이 피는 시기가 짧기에 더 귀하다. 뒤이어 다른 꽃들이 피어날 테니 아쉬움을 접자. 떨어질 것을 미리 걱정할 것도, 떨어졌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그 아름다운 순간을 즐기고 마음에 담으면 되니까. 지난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우리는 큰 아쉬움과 실망감을 느껴야만 했다. 대표팀 캡틴 손흥민과 이강인이 싸움을 벌였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손흥민 선수가 보인 의연한 자세에서 리더의 진정한 조건을 읽을 수 있었다. 소속팀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의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매우 인상깊은 말을 했다. "리더는 때때로 총구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내가 아는 건 손흥민이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포 감독의 리더십 이론은 이랬다. "리더십은 인기를 얻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전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나는 손흥민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다." 포 감독의 예리한 지적이 이어졌다. "손흥민이 긍정적이기만 한 사람이라는 건 오해다. 그는 항상 이기고 싶어하며, 기준이 무너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무언가 옳지 않다면, 그는 그것을 지적할 것이다. 그것이 인기 있는 행동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리더의 조건을 적확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바로 손흥민이라는 의미로 읽혀진다. 리더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나와 너, 우리 모두가 불편해진다는 그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걸프전 영웅 슈와르츠코프 장군이 내세운 리더의 네 가지 조건, 즉 능력, 인격, 실천력, 정의감이 바로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다음달 10일 국민에게 봉사할 리더를 뽑는 총선이 치러진다. 리더의 조건을 꼼꼼히 따져서 책임 있는 자세로 투표에 임해야겠다. 투표가 우리 모두의 삶을 적시는 은혜로운 봄비가 되어 천지간에 봄꽃들이 활짝 피어나는 찬연한 봄 세상이 되기를.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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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90 ㅣ 2024.04.02
칼럼 봄이 온다, 살아보자! 우수가 지난 후 바람결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무에는 예쁜 꽃눈들이 망울망울 맺혀 생명의 약동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초봄은 나른한 부드러움으로 온다고 했던가.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법. 단호하기까지 하다. 때로는 아른거리는 안개로, 때로는 매서운 꽃샘추위로 찾아온다. 그렇게 일상의 나날들을 지내다 보면 어느덧 봄의 한가운데에 들어서 그 달콤한 향기, 꽃이 상큼하고 화사하게 익어가는 냄새를 들을 수(?) 있을 테다. 자연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데도 우리는 늘 지루하게 이어지는 똑같은 날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분명한 건 나이 들수록 반복하는 날이 많아진다는 거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살고, 어김없이 다가오는 사계절을 맞는다. 늘 반복되는 삶은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의 지성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여기에 제동을 건다. 삶이란 그 반복 속에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저마다의 미세한 파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거다. 시시하다고 치부하는 일상 루틴이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그래서 삶을 터무니없는 은총이라고 찬양한다. 파스칼에게 반복은 되풀이되는 게 아닌 정체된 전진이다. 나이 들수록 반복과 자기복제로 시들어간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우리의 노년층에게 참 반가운 이야기가 아닌가. 반복적인 자극으로 작은 루틴(습관)을 만들고, 그 소소한 루틴들이 모여 삶 전체를 바꾸게 될 테니까. 최근 외신 토픽에서 비스듬하게 깎여진 얼음 조각 위에 북극곰이 몸을 웅크린 채 불안한 잠이 든 장면을 포착한 얼음 침대가 지난해 최고의 야생 사진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심각한 기후 위기 속에 녹고 있는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조각에서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북극곰의 저 안쓰러운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다. 날마다 봄이고 순간순간 봄이며, 우리 인생 전체가 봄이라고. 그래서 봄의 느낌으로 살아보자고. 이 봄은 특별하고도 유일한 봄이다.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 나만 극대화하고 너는 극소화하는 이 삭막한 세상에 필요한 것이 바로 봄이 아닐까. 우리 모두 봄 속으로 풍덩 뛰어들자. 그래, 살아보는 거야!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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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97 ㅣ 2024.01.29
지난 연말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의리를 저버린다는 뜻이다. 이제 승천하는 청룡을 상징하는 올해에는 이익에 앞서 의로움을 생각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의 기운이 퍼져나가기를. 신년 벽두에 우리는 뭔가 목표를 정해서 새로이 시작한다. 새 계획을 세우고 새 다짐을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지 않나. 잘만 시작하면 반쯤 성공이라는 부푼 마음을 품지만 대부분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건 왜일까. 새해부터 잘하자는 결심과 새해부터 잘하면 된다는 위안을 핑계 삼아 아까운 며칠을 대충 살아도 되는 날로 허비해버린 적이 없는가. 그러고도 작심삼일의 덫에 걸리는 것은 과정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나 새해의 첫날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한 해를 채우는 수많은 날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시작과 끝을 과정이 이어주지 못하면 어찌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우연히 시작할 수는 있지만, 우연히 지속할 수는 없다. 과정은 시작의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잡는 기능이 있기에 중요한 게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더라도 과정에서 얼마든지 고쳐 나갈 수 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사흘을 못 넘기고 싱겁게 끝나버리는 일상의 촌극으로 인해 남들에게 멋쩍고 자신에게 미안해지곤 하는 경험은 누구나 해본 적이 있을 테다. 그런데 작심삼일은 반성하고 수정하기에 너무 짧다. 과정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작심열흘이나 작심삼주라면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일 수 있다. 하지만 과정은 시작의 의지에 성찰을 얹어주니 끝을 향해 달려갈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여기에 더해 관념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내용을 피하라고 충고한다. 사람들에게 친절하자처럼 두루뭉술한 결심을 하지 말라는 거다. 일주일에 한번은 누구와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와 같이 구체적인 행동 목표를 정한다면 훨씬 실천하기 수월해질 듯하다. 내일부터를 외치며 오늘을 포기하지 말자. 그렇다고 결심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나무라며 지난 일을 후회할 필요도 없다. 한 시인은 새 마음을 품는 자는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옳거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새 마음을 뒷받침해주는 작심열흘이나 작심삼주의 실천 의지가 아닐까 싶다.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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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3 ㅣ 2023.12.29
칼럼 연말의 추억, 빨강 우체통 벌써 연말이다. 올해도 달랑 달력 한 장만 남았다. 날수로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된다. 왜 이리도 세월이 빨리 흐르는지…. 겨울의 색이라 하면 뭐니 해도 하양을 들 수 있겠다. 성탄절하면 떠오르는 빛깔이니까. 흰 눈이 소리 없이 내려 소복이 쌓인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지 않은가. 온 세상을 온통 흰색으로 뒤덮기에 평등을 상징하는 색깔이 하양이기도 하다. 겨울의 또 다른 색은 빨강이다.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색. 산타클로스의 옷이 그렇고 연말 온정의 온도계 수은주가 빨갛게 물들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러하다. 그러니까 겨울은 평등과 사랑을 아우른 희망의 계절이렸다. 지난 주말 도서관 앞 빨강 우체통을 지나치다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필자가 기자 시절 한 대학교수와 가진 술자리였다. 그는 대뜸 새로 나오는 우표를 산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메말라가는 정을 자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란다. 그 교수의 논지는 이랬다. 새 우표를 가져가면 아이들이 신기해하며 일단 관심을 보인다. 그러면 우표에 담긴 내용과 쓰임새를 자세히 알려준다. 아이들이 드디어 편지지를 집어 든다. 골똘히 생각한 다음 한 문장을 적고, 다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이어지는 문장을 고민한다. 정성을 들여 편지를 다 쓰면 봉투에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고 상대방에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이 얼마나 좋은 인성교육이냐는 거다. 자기 성찰은 물론, 글 교육도 되니 말이다. 그는 "정에 대한 그리움을 휴대전화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 역시 인생을 살찌워준다"고도 했다. 가정마다 이런 인성교육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정이 흐르는 사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지금처럼 소식이 빠르게, 그리고 편리하게 오가는 시대에 편지라니. 손편지가 귀해지고 우체통도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교수의 열정어린 말이 지금도 가슴을 울린다. 연말 빨강우체통의 강렬한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바로 이게 느림의 철학이 아닐까 싶다. 피에르 쌍소가 갈파했듯이 수동적으로 달려드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지혜로서의 느림! 느리게 살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빨리빨리로 대변되는 한국병은 절대 치유될 수 없음을 연말을 맞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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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5 ㅣ 2023.11.27
칼럼 아름다운 퇴장이 그립다 때아니게 더운 날씨가 이어지더니 급작스럽게 추위가 몰아닥쳤다. 늦가을이 품고 있는 건 쇠퇴와 시들어 떨어지는 조락(凋落)이다. 머지않아 모든 걸 벗어던진 나목(裸木)의 계절로 접어들 테다. 서서히 짧아지는 낮과 줄어드는 일조량. 마음이 쓸쓸해지는 까닭이다.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죽음이 시작되는 것처럼, 가을 역시 시작하는 순간 동면에 들어 약동하는 봄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험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가을이 수렴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응축이다. 가을이 열매와 단풍의 시간이라면 겨울은 모든 잎과 열매를 떨어뜨리고 맨몸으로 버티는 시간이다. 우리가 계절에서 배워야 할 가치가 이게 아닐까. 아름다운 퇴장 말이다. 비움의 진정한 의미가 그것 아닌가.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영 심기가 편치 않다. 대표적인 게 전청조 사건에 엮인 펜싱 전 국가대표 남현희 씨의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희대의 결혼 사기극을 벌인 전 씨가 선물했다며 SNS에 올린 최고급 외제차를 비롯한 명품들. 그걸 보란 듯이 자랑한 남 씨에게서 필자가 느낀 것은 허영과 과시욕, 그리고 탐욕이었다. 뒤늦게 경찰 수사에서 전 씨가 남 씨를 내세워 사기 친 금액이 26억 원에 이르고, 피해자도 수십 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까 남 씨의 SNS는 자신에게는 남들에게 뻐기는 통로였을 뿐 아니라, 전 씨가 사기 행각을 벌이는 쇼윈도였던 거다. 남씨는 그동안 올림픽 메달리스트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인이 아닌가. 죄의 유무를 떠나서 이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문득 월드컵 4강의 주역 초롱이 이영표 선수가 은퇴하면서 남긴 말이 뇌리를 스친다. "좋은 축구선수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국전쟁과 월남전의 명장 고(故) 채명신 장군은 나라를 위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면서도 화려하게 단장된 장군묘역을 거부하고 비석만 달랑 놓인 좁은 무덤을 택했다. 나만 살아 돌아왔다는 미안함, 동고동락한 전우들과 함께하겠다는 정신을 그는 죽어서 실천했다. 굳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버릴 때와 물러날 때, 그리고 내려놓을 때를 안다는 것, 아름다운 퇴장은 화려한 등장보다 훨씬 값지고 소중한 가치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자기를 가꾼다는 건 치장하는 게 아니라 자기답지 않은 군더더기를 쳐내고 덜어내는 게 아닐까 싶다.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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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37 ㅣ 2023.10.31
칼럼 맑은 가을, 행복한 독서 맑고 시린 가을이 짙어가고 있다.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반들거리는 나뭇잎마다 햇빛이 반짝이는 파란 가을이다. 대관령에서는 벌써 첫서리와 첫얼음 소식이 전해졌다. 곧이어 울긋불긋 단풍도 절정을 맞을 테다. 가을에는 그만의 소리가 있다. 필자에겐 아궁이에서 타닥타닥 나뭇가지가 불타오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뇌리를 스친다. 저녁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 안에서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도 잊지 못하겠다. 그 가을의 기척에 귀를 기울일 때 잔잔한 고독에 빠져든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말을 많이 들어봤을 테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표현이다. 서점 종사자들은 가을에 책이 잘 팔렸던 적이 없었단다. 얼마 전 2030세대의 한 달 책 구매비용이 처음으로 1만 원 밑으로 떨어졌다는 기사를 접하고 적잖이 놀랐다. 2달에 책 1권 읽기도 힘든 세상이라니. 통계청에 따르면 1년 전보다 무려 30% 이상 줄어들었다는 거다. 사실 도시철도를 타보면 요즘 책을 읽는 승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책 읽기에 느긋하게 빠져들며 관조적 삶을 즐기지 않는다는 현실이 서글퍼진다. 하지만 우리 삶을 돌아보자. 중장년을 계절에 비유하면 가을이고, 노년은 겨울에 해당할 터이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들 하지 않나. 겨울을 앞두고 부지런히 양식을 차곡차곡 쌓아두듯 책 속의 지혜를 마음에 쟁여 두어야 할 때가 가을이 아닐까. 책은 돛대가 달린 배이고, 그 배는 독서삼매경에 빠진 우리 자신이다. 바람이 배를 밀고 저 먼바다를 거쳐 낯선 나라로 데려간다. 독서열을 자극하기에 멋진 표현이 아닌가. 요즘 가을 도서관에는 겨울을 준비하는 나이 지긋한 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남에게 보이고 경쟁하기 위한 공부, 곧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열성을 바친다. 독서는 그런 점에서 진정한 나에게로 가는 길을 찾는 과정이라 하겠다. 지금 책이 바라는 건 뭘까. 그건 독서라는 사랑의 손길이 아닐까. 독서는 메마른 현실에서 행복으로 향하는 도피이고, 눈사태처럼 쏟아지는 행복의 경험이라는 한 시인의 말을 명심하자.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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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0 ㅣ 2023.09.25
칼럼 한가위 보름달의 미소 기후 변화로 사계절에 양적 균형이 깨졌다. 가을과 봄은 점점 더 긴 여름과 긴 겨울 사이에 끼인 틈새 계절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짧은 가을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가을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짙은 고요를 확장해간다. 어느 시인은 가을을 외롭고 슬픈 영혼들의 합주로 완성되는 계절이라 읊었다. 달이 지휘자라면 노자가 칭송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물은 겸손하게 낮은 곳에서 저음대를 맡고, 밤의 정적을 깨며 우는 풀벌레들은 고음대를 맡는다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제 여름이 떠난 자리에 높은 하늘과 산색 고운 단풍이 들어설 테다. 필자 사정을 이야기해서 죄송하지만 최근 노모를 급작스럽게 여의었다. 그 한없는 사무침과 그리움의 진정한 뜻을 이제야 깨달았다. 하물며 내면의 외로움을 부쩍 많이 느끼는 계절인 가을이 아니던가. 생명은 늘 오래된 외로움이고, 외로움은 생명의 본질이라고 했다. 진정 외로울 때야말로 일상에 빠져 무시했던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잃어버린 생의 리듬과 휴식을 찾을 시간임을 상기해야겠다. 또한 외로움이 사람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켜주기에 견뎌내야겠다. 지난 보름달은 훨씬 크다고 해서 슈퍼문, 한 달에 두 번 뜬다고 해서 블루문이란 명칭이 겹쳤다. 그래서 슈퍼 블루문이라 칭한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비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다. 다시 보려면 장장 1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데 무척 아쉬웠다. 코로나의 족쇄에서 풀려난 첫 추석을 맞게 됐다. 오랜만에 자신의 뿌리를 찾아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질 터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웃음을 잃었다. 모처럼 그 환한 미소를 되찾을 기회가 목전에 다가왔다. 한가위 밥상에 오순도순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정겨운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얼마 전 미소의 힘이라는 기획기사를 접했는데 매우 유익했다. 눈과 입이 동시에 웃는 게 진짜 미소다. 반면 가짜 미소는 일명 비즈니스 미소나 항공기 승무원들의 형식적인 표정에서 따온 팬암 미소라고 부른다. 가짜 미소는 우리 의지에 복종해서 나타나지만, 진짜 미소는 영혼의 달콤한 감정에 의해서만 나타난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설명이다. 웃음의 빈곤 속에서 우리는 사소하게 불행해지지만 해맑은 웃음은 불행을 중화시킨다. 이제 둥실둥실 떠오를 한가위 보름달의 환한 미소를 보며 배우자. 그리고 웃자, 더 자주, 더 크게. 물론 더 좋은 건 함께 웃는 것이다.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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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30 ㅣ 2023.08.25
칼럼 노인혐오증후군 물극필반(物極必反). 오면 가고, 가면 오는 법이다.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된 폭염이 기세등등하지만 꼬리를 내릴 테다. 9월을 향해 가면서 아침저녁으로 코끝을 스치는 바람 기운이 제법 선선하다. 그렇지만 푹푹 찌는 불볕더위에 힘들고 불쾌감이 심한 건 여전하다. 더워서 생기는 불쾌감은 생존을 위해 조치를 취하라는 뇌의 신호라는데 닫힌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는 요즘 세태 때문에 더욱 기분이 좋지 않다. 필자가 언론사에 몸담고 있을 때 법정에서 한 판사가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늙으면 죽어야지"라고 말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벌어진 적이 있다. 그 발언은 숙명론적인 시각이 아니라 노년층에 대한 혐오까지 담은 학대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최근 야당 혁신위원장이었던 이의 발언이 폭염 못지않게 온 국민의 불쾌지수를 치솟게 하고 있다. 발언의 핵심은 왜 미래가 짧은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과 1대 1로 표결해야 하나?,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가?였다. 한마디로 법이 허락한다면 노인층의 투표권을 제한해도 된다는 거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엉터리 논리가 명색이 법학 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버젓이 나오는지 말문이 막힌다. 철학자 칼 포퍼가 말했다. 상대를 거부하는 혐오의 전쟁은 닫힌 사회에서 벌어진다고. 혐오 표현이 우리와 상대 집단을 분명히 갈라서 내적 결속을 다지는 데 활용되고, 혐오 감정이 정치 사회적으로 상대를 배척하는 데 악용되며, 나아가 오염을 일으키는 존재를 제거하겠다는 도취된 환상 속에서 공격성이 더욱 심해진다는 거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 꼴이 아니고 뭔가. 일상 속 잦은 불쾌가 누적돼 곪아 터지는 상태 말이다. 모두 자기 권리만 외친다. 남의 권리는 아예 외면해버린다. 이제 노후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가 됐다. 그 기간은 늘었으되 노인들은 대부분 국외자로 떼밀려 초라하고 쓸쓸한 삶을 사는 게 우리 사회의 일상이 돼버렸다. 당당한 노인과 꿈꾸는 노인, 아름다운 노년은 그야말로 말뿐인 각박한 세상. 나이 든다는 사실 자체를 싫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노인을 짐으로 여기는 세태 말이다. 늙음을 추함의 동의어로 인식하고 애써 노년을 외면하거나 부정한다. 《행복의 기원》저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의 말을 새겨들었으면 한다. "내 집단만 중요하게 여기지 말고, 모르는 사람들과도 서로 행복 신호를 켜는 작은 기쁨을 나누자. 사람은 서로에게 반사되는 빛으로 가장 행복해지니까."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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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1 ㅣ 2023.07.25
칼럼 지구의 열병이 두렵다 참 성질 사나운 여름이다. 땀이 줄줄 흐르고 피부를 끈적끈적하게 해 견디기 힘들다. 극한 호우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퍼붓는 폭우는 말할 것도 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이글거리며 아스팔트를 녹여버리는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슈퍼 폭염으로 지구촌이 열병에 걸렸다. 최근 올해 기온이 12만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외신을 접하고 화들짝 놀랐다. 기사는 이건 서막에 불과하다. 막 시작된 엘니뇨(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오르는 현상)가 강해지면 지구의 온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특히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나서 지구 평균 기온이 3도 오르기까지 1만 년 걸렸는데 화석 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난 200년 만에 3도나 치솟았다고 한다. 온난화에 엘니뇨 현상이 맞물리며 올여름 전 세계적으로 기록적인 더위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는 가운데 폭염에 따른 질병 및 사망의 위험이 더욱 커질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특히 도심지역과 노령층이 더 취약해 폭염 사망의 양극화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년 전 이맘때 유럽을 덮쳤던 끔찍한 재앙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특히 프랑스 파리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했다. 70대 이상 노인만 1만 명 이상 떼죽음을 당했다. 병원 안치소가 모자라 곳곳에서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은 나라의 참극이었다. 젊은이들이 늙은 부모를 놔두고 떠난 바캉스가 원인이었다. 당시 프랑스 언론 르 피가로는 프랑스의 야만이라며 절규했다. 우리나라도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만에 하나 블랙아웃이라도 발생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도 정확히 안다. 무엇이 필요한지 관심을 기울이고 빨리 진지해져야 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가 달린 절박한 상황이다. 이타적 생각을 품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내야만 한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는 사회. 그리고 작은 실천일지라도 행하는 사회. 그런 의식의 진화가 이뤄지는 사회를 기필코 가꿔나가야 한다. 최원열 언론인(전 국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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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36 ㅣ 2023.06.27
칼럼 청춘 예찬 1968년생인 나의 어머니는 25살이라는 나이에 첫째 아들을 낳았다. 4kg에 달하는 작지 않은 몸집을 지닌 그 아이는 어머니 뱃속에서 거꾸로 자리를 잡는 바람에 어머니는 제왕절개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서러워서 눈물만 계속 흘렸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첫 출산으로부터 2년이 지난 후 그녀는 둘째 아이를 낳았다. 둘째 아들은 첫째보다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우량아였다. 어머니는 "한 번 겪어본 출산이라 조금 편할 줄 알았지만 몸에 칼을 대는 고통은 예외 없이 끔찍했다"고 나를 낳았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후 어머니는 막내딸을 낳기 위해 또다시 산부인과를 찾았고 애만 낳았을 뿐인데 당신의 청춘이 없어졌다며 장난 섞인 말투로 푸념하곤 했다. 어느덧 내 나이는 어머니가 첫 아이를 낳았던 25살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출산은커녕 결혼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는 날 보면서 같은 나이에 결혼과 육아를 선택한 어머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푸념처럼 만약 어머니가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결혼과 출산이 청년의 관심사에서 멀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 낳기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는 것 같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결혼식장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청년들에게는 결혼이 일종의 리스크가 되어버린 셈이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19만 1700건으로 197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라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결혼을 망설이는 그들의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결혼, 출산이 주는 의무로부터 소중한 청춘을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이 큰 비중을 차지할 테다. 결혼에 드는 비용, 아이에게 쏟아야 하는 시간 등의 총합을 고려했을 때 결혼과 육아가 청춘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는 셈이다.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 심리도 여기에 있다. 결혼과 출산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미루는 것이 청춘을 빛나게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이 일상이었던 과거가 어둡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은 있다. 육아로 당신의 청춘이 사라져 버렸다며 푸념하면서도 "너희를 낳은 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의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또 두 달 전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총총이의 아빠가 된 친구의 웃음과 행복한 모습의 가족사진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펜을 쥐고 변화하는 사회를 기록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행복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삶에는 여러 형태가 있고 모두가 존중받을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탁경륜 기자·《돈보단 꿈을 모으고 싶어》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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