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소개 및 인사말

우리 수민동은 옛 동래구 읍내면 지역으로 1914년 평남, 안민, 장남, 안국, 서호동을 합쳐 수안동이 되고, 산락과 회룡동을 병합하여 낙민동이라 해서 동래군 동래면에 편입되었으며, 다시 수안동과 낙민동을 합해 수민동이 되었다.
수민동은 옛날부터 동래부사가 집무하던 동헌(東軒 : 부산지방유형문화재 제1호)이 위치하고 있어 사실상 동래의 모든 중심이 되어왔다.
현재에도 수민동은 충렬로, 동래교차로, 동래기차역등 교통의 요충지이자, 공공기관, 금융기관, 재래시장, 접객업소등이 밀집해 있는 여론형성지역이고, 동래패총, 동헌, 망미루터, 장관청등 유형문화재와 문화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조상의 얼이 담긴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그리고 인구의 75%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동래의 중심인 수민동은 전 주민과 공무원들이 합심하여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동(洞)을 만들고자 모든 일을 주민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눈높이 행정을 펼치고 있으며 특히, 21세기에 걸맞는 복지사회 구현을 위해 민간이 참여 하는 민간참여 복지행정을 특수 시책으로, 3만 5천여 동민이 한가족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훈훈한 정이 있는 동이다.

기본현황

면적 1.21㎢ 세대수 13,319세대
남자인구 14,844명 여자인구 15,932명
공무원수 19명 통반 32개통 166개반

연 혁

  • 삼한시대 금관가야에 속함
  • 통일신라시대 동래현에 속함
  • 조선시대(태조 6년) 동래부 읍내면
  • 1914. 4. 1. 수안·낙민동이 동래부 동래현에 편입
  • 1942.10. 1. 부산부 동래출장소에 속함
  • 1957. 1. 1. 부산시 동래구에 속함
  • 1958. 3. 1. 수안·낙민동이 합하여 수민동으로 됨

유래 및 특성

지명유래

수민동은 옛 동래구 읍내면의 지역인데 1914년 평남, 안민, 장남, 안국, 서호동을 합쳐 수안동이 되고 산락과 회룡동을 병합하여 낙민동이라 해서 동래군 동래면에 편입되었으며, 다시 수안동과 낙민동을 합해 수민동이 되었다.
수민동이란 명칭은 1957년 1월 1일부로 수안동과 낙민동 2개의 법정동이 병합되면서 생긴이름이다. 수안동과 낙민동의 명칭에 관한 유래는 문헌상으로는 알려져 있지 않고, 다만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수안동이라고 불린 것은 당시 동래부(東萊府)의 수장(首長)이던 동래부사가 집무하던 동헌(東軒)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어 가장 으뜸되는 관아라는 뜻으로 수안(首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수안(水安)동으로 불렸다는 설도 있는데 그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땅을 조금만 파도 물이 나오는 등 물(水)이 흔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이곳에 동래성(東萊城)의 수문(水門)이 있어서 수문 안의 동네라는 뜻으로 수안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낙민동(樂民洞)은 조선시대 남문 동변동(南門 東邊洞)이라 부르던 지역인데 수령이 민정을 살피려 나가는 지역이라 하여 백성을 즐거이 해주었다는 뜻으로 일제시대때 낙민동으로 고쳐졌다.
이 지역은 1960년대만 하더라도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물구덩이로 미나리깡 밭이거나 연밭(蓮田)이었으나 현재는 매축되어 집단 아파트가 조성되어 동래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역특성

  • 구(舊) 동래부(東萊府) 중심지역 - 區의 중앙위치
  • 교통의 요충지 - 충렬로, 명륜로, 동래교차로, 동래기차역 인접
  • 상가, 소비성업소 집중 - 공중다중 집합지역
  • 공공기관, 금융기관, 접객업소 밀집 - 여론 형성 지역
  • 대단위 아파트 밀집지역 - 인구의 75%가 공동주택 거주
  • 조상의 얼이 담긴 유서깊은 고장 - 유형문화재, 문화유적지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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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수민동     
  • 문의전화051-550-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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