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건 진짜잖아.” “진짜지. 믿을 수 없는 진짜.” 12시, 종이 울리면 80년간 숨겨진 비밀이 드러난다! 진실을 향해 용기 낸 두 소년의 이야기 『괭이부리말 아이들』 『기호 3번 안석뽕』 『4×4의 세계』 등 주옥같은 창작동화를 발굴하며 한국 어린이책의 기준을 정립해 온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제30회 고학년 동화 부문 대상작 『비밀의 종이 울리면』이 출간되었다. 외증조할머니의 49재를 치르게 된 열세 살 소년 ‘우찬’이 친구와 마을의 출입 금지 구역에 드론을 띄우다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두 아이의 호기심이 타인을 향한 연민과 책임감으로 확장되는 과정, 이들이 어느새 역사적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순간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며, 어린이의 시선으로 ‘기억하는 일’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하는 작품이다. “무거운 담론이나 뻔한 장치에 기대지 않고 한 인간의 아픔과 고귀한 품성에 집중하여 감동을 끌어낸다. 과거의 아픔을 현재의 용기로 위로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_전수경 김민령 박숙경(심사평에서) 줄거리 돌아가신 외증조할머니의 49재를 치르게 된 열세 살 소년 ‘우찬’은 친구와 호기심으로 마을의 출입 금지 구역에 드론을 띄운다. 그런데 드론이 출입 금지 구역 한가운데 추락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두 아이가 실망한 채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산속에 울린 종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내일이 궁금한 어린이를 위한 조금 빠른 미래 생활 미리 보기 『진짜로 올지도 몰라, 이런 미래』는 과학과 사회를 잇는 동시에 어린이 생활에 밀접한 여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 다가올 가까운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 본 어린이 교양서이다. 발전한 과학 기술로 변화할 미래 생활은 가상 일기 형식을 통해 들여다보고 과학 기술에 관한 지식은 만화를 곁들여 어린이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구성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과학 기술이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상상해 보고, 현재의 과학 기술과 그 발전 가능성, 그리고 한계점까지도 함께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 『진짜로 올지도 몰라, 이런 미래』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어린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아야 할지 스스로 질문하도록 이끈다.
서로를 돌보며 함께 자라는 사계절 이야기 제3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마나의 편지』(나이 그림책)가 출간되었다. 주인공 ‘마나’와 '일곱 숭아’가 고래섬에서 사계절을 지나며 겪는 다채로운 나날을 편지 형식으로 담았다. “탄력 있는 서사와 친근한 캐릭터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심사평)으로, 마나와 일곱 숭아가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돌보는 관계 속에서, 일상이 한층 풍요로워지는 순간들을 섬세하게 그려 낸다. 옛이야기의 요소를 오늘의 감각으로 새롭게 풀어 어린이들이 즐겁고 주체적으로 삶을 가꾸어 나가도록 북돋는다. 줄거리 고래섬에서 홀로 평화롭게 지내던 할머니 ‘마나’가 복숭아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자 어린이를 닮은 ‘숭아’들이 탄생해요. 저마다 성격이 다른 ‘일곱 숭아’와 마나가 함께하는 사계절이 시작됩니다.
“물속에서 천천히 깊은 호흡을 하는 법, 무른 몸으로도 건강하게 사는 법” 담백한 이야기의 감칠맛 속에 깃든 인생의 참맛 한국문학의 싱그러운 새바람, 김유나 첫 소설집 “화자의 갈팡질팡하는 마음 곁에 나란히 서서 그 마음을 물끄러미 응시하게 되는 독특한 힘”(심사평)을 지닌 작가로 주목받으며 202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한 김유나의 첫번째 소설집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이 출간되었다. 정교한 묘사와 감정의 축적, 감칠맛 나는 유머가 버무려진 일곱편의 수록작에 제각각 깊이 익은 인생의 참맛을 담았다. 인물의 다층적인 내면과 핍진한 서사를 균형있게 다룬 첫 장편소설 『내일의 엔딩』에서 보여준 솜씨가 더욱 무르익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번 소설집에서는 작가와 인물이 “서로 같이 고군분투하는”(추천사, 윤성희) 진심이 자상하게 다가와 말을 걸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고달픈 인생을 버티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는다. 『믿을 수 있을 만큼의 진실』은 보통의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인생의 쓴맛을 맛깔나게 묘사하며 세계의 담백한 진리를 담았다. 작중 인물들은 시련을 맞이해 사기와 배신, 폭로와 도주, 침묵과 공모 같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며 세상을 속이고 자신도 속인다. 하지만 김유나는 사는 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속인다면 삶 역시 우리를 속이기 시작한다는 엄정한 사실을 또렷하게 직시한다. 그렇기에 소설 속 인물들은 해피엔드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더욱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은 뒤 독자들에게 묘한 개운함과 깊은 여운이 남는 이유는, 김유나가 ‘더 나은 삶’을 애써 꾸며내기보다 ‘덜 거짓된 삶’을 향한 한 걸음의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기 때문이다. 진실 너머의 모호한 희망을 약속하는 대신, 나답게 살며 한 걸음이라도 내 호흡으로 걸어가는 것, 그 작고 더딘 움직임이 삶의 가장 단단한 본질임을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김유나는 인물의 감정과 선택이 현실의 조건과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치밀하게 설계한다. 가족, 사랑, 노동, 돈, 계급, 돌봄,
‘중독 심리학 분야 최고 권위자’ 저드슨 브루어가 밝히는 마음의 작동 방식 우리는 왜 무언가에 중독되고, 나쁜 습관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중독은 뇌를 어떻게 바꾸는가》의 저자 저드슨 브루어는 그 답을 ‘뇌’에서 찾고, 해결책을 ‘마음챙김’에서 찾는다. 저자는 신경과학자로서 갈망이 뇌에서 형성되고 강화되어 습관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중독 심리학자로서 마음챙김을 통한 근본적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중독의 범위는 알코올, 담배 같은 중독성 물질부터 우리 생활에 필수 불가결한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나아가 자아, 생각, 사랑 같은 한층 복잡한 차원까지 다양하다. 뇌는 ‘촉발 요인-행동-보상’이라는 과정을 통해 보상 경로를 강화하고 그 결과 갈망을 학습한다. 나쁜 습관을 학습하는 게 가능하다면, 반대로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따라 읽다 보면, 마음챙김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유혹에 넘어간 대가로 받게 될 보상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실상은 생각처럼 달콤하지 않다. 유혹을 참지 못하고 야식을 먹은 다음 날 퉁퉁 부은 모습을 보며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때 명상을 비롯한 마음챙김 훈련은 도파민의 습격을 당한 우리 뇌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돕는다. “갈망은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임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오늘날 도파민의 습격을 받은 현대인들에게 ‘도파민으로부터의 해방’을 알려주는 필독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하녀, 공장노동자, 지방 도시의 연금 생활자,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은 서민 여성, 나의 어머니 노동계급 가족을 떠나 지식인이 된 아들이 평생 한 계급에 머물렀던 어머니의 삶을 통해 보는 나이 듦과 인간 주체의 취약성, 연대의 문제 어머니의 예기치 못한 죽음에 맞닥뜨린 에리봉은 그로 인해 자신이 흘린 눈물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 말하기 위해, 나아가 어머니를 위시한 노인들의 모든 주름, 모든 고통, 모든 신음에 담긴 ‘정치적인 것’을 밝혀내기 위해 애쓴다. 이 책은 그 노력의 산물이다. 「옮긴이 해제」에서 게이이자 지식인으로서 자신을 ‘재발명’하기 위해 노동계급 가족을 떠났던 한 사회학자의 치밀한 자기 분석으로, 프랑스는 물론 국내 지식 장과 일반 독자층의 고른 지지를 얻었던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저자 디디에 에리봉의 신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2023)이 그것이다. 에리봉은 전작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오래 떠나 있던 고향 랭스를 방문하면서 노동계급 정체성이 게이라는 성 정체성과 복잡하게 교차하며 자신을 규정해왔음을 깨닫고, 자신의 과거와 가족의 사회적 궤적을 냉철하고도 섬세하게 회고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철학적, 사회학적, 정치적 분석을 독특한 방식으로 자전적 이야기와 연결하면서 사회구조와 현실을 명석하게 규명했다”(2024 베를린 아카데미상 선정 이유)라는 평은, 또 하나의 자기 분석이라 할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에도 대입 가능하다. 다른 점이라면, 이 책에서는 에리봉 자신이 아니라 제목이 나타내듯 “어느 서민 여성,” 즉 자신의 어머니가 중심인물인 사회적 전기를 써 내려간다는 데 있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에서 저자는 평생 노동계급의 일원으로 머물렀던 어머니의 삶을 술회한다. 특히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요양원에 입소한 뒤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맞게 된 어머니의 죽음은 에리봉에게 노년과 취약한 주체, 돌봄과 연대의 문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 이때 저자가 마주한 것은 인간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질병과 고통받는 몸, 노화와 자율성의 상실, 열악한 공공 보건과 요양원의 현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같은 문제들이다. 하나같이 무겁지만, 그렇다고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이 문제들을 에리봉은 자기 어머니와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여러 책과 영화 텍스트 등을 참조해가며 진중하게 논의한다. 자기 어머니에 관한 개인적인 회고담에서 출발하면서, 저자는 ‘프랑스 노동계급 여성의 전형적 일생’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를 거쳐 다시 ‘노년’과 ‘노인’이라는 사회적 범주, 나아가 늙음과 장애를 숙명적으로 겪는 인간 주체의 취약성과 연대에 관한 이론적 성찰로 이야기를 확장해간다. 어머니에 관한 사회적 전기 계급과 젠더, 나이 듦과 몸의 취약성에 대하여 과거의 그 무엇도 남지 않고 모든 것이 망각 속에 사라졌다 해도, 예속화assujettissement의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은 살아남는다. (p. 46) 1930년대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리봉의 어머니는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랐고, 열네 살에 하녀가 되었으며 이후 가정부와 공장노동자로 일했다. 노동계급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제약 속에서 숱한 가능성과 삶의 경로를 그저 공상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55년간 함께 살았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스무 살에 결혼한 이래 처음으로 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에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홀로 자유로워졌”(p. 44)다고 느꼈다. 그녀는 오랫동안 노조원으로 지내며 “언제나 파업 명령에 따르고, 조업 중단과 공장 앞 집회에 참여할 의향이 있었”(p. 234)을 만큼 정치화되었지만 노조(와 활동가들)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았으며, 나이 들수록 집단 소속감과 정체성을 잃고 고립된 뒤로는 “‘좌파’가 환기하는 모든 것, ‘좌파’와 관계된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가 너무나도” 커진 나머지 “좌파에 대항하기만 한다면 덮어놓고 아무에게나 투표할 준비가”(p. 231) 되기라도 한 듯 극우 정당에 표를 던졌다. 더구나 백인 노동자 공동체 내에서 서슴없이 공유되던 인종주의는 어머니와 에리봉 사이를 갈라놓곤 했다. 이처럼 우파 또는 극우파의 판본에도, 좌파의 판본에도 꼭 들어맞지 않았던 노동계급 여성으로서 어머니 삶의 복잡성에 관해 에리봉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기술한다. 그로써 프랑스 사회의 신자유주의화와 정치적 우경화가 어머니의 정신과 신체를 노년에 어떤 식으로 파괴했는지 규명한다. 에리봉의 어머니는 예산 삭감에 시달리는 공공 요양원 시설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다가(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믿다가)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다. 이 극단적 상황은 에리봉에게 다시 한번 집단의 구성에 관한 이론적 질문을 일깨우는 기회로 작용한다. 다만 그 질문의 구체적 형태는 『랭스로 되돌아가다』와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노동계급의 해체와 재구성이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주요 쟁점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노인 집단’의 정치적 구성 (불)가능성이 핵심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인들이 스스로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현실을 언급하며 ‘노인’을 정치적 ‘집단,’ 즉 ‘우리’로 (재)구성하고 조직하려면 대변인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대변인의 매개를 통해 노인 개개인의 흩어진 말, 억눌린 불평, 숨죽인 울음이 사적 영역을 떠돌다 휘발되지 않고, 공론장에서 집단적 목소리로 울려 퍼지며 정치적 결집과 운동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변인은 집단을 대표할 권리를 누구에게 어떻게 위임받는가. 이 질문은 대표 행위의 자격과 철학적·정치적 의미에 대한 성찰로 이끈다. 어긋나면서도 이어져온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끈질긴 이해의 시도를 거듭하며 써 내려간 어머니에 관한 사회적 전기 어머니를 계속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그녀에 관해 말해야만 한다. (p. 183) 이 책의 중심인물이 에리봉 자신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새로운 긴장감을 조성한다. 그는 아들의 시점에서 어머니의 일생을 기술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자신을 사회학적으로 객관화하여 분석하는 작업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어머니는 결국 타자이며, 저자는 30년 가까이 가족과의 교류를 끊은 채 매우 상이한 지역적·계층적 환경 속에서 지냈다. 이는 이 책의 글쓰기가 자기 이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스스로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타자를 이해하면서 그에 따른 어려움을 감수하는 작업이었으리라는 점을 환기한다. 저자는 이 책을 비롯해 여러 글에서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은 가족들은 책이 가족의 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고 불평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저자 스스로도 “어머니가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 외에는 그녀의 현재적 삶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p. 178)라면서 어머니에 대한 무지를 토로하기도 한다. 타자를 이해하는 일이 일차적으로 그를 특정한 관계와 상황 속에 배치하는 일이라면, 그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충분히-원칙적으로 우리는 이 ‘충분한’ 상태에 영원히 이를 수 없을 것이다-갖추지 못한 채로 우리는 어떤 위협을 무릅쓰며 타자에 관해 말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에리봉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기에 관한 사회적 전기를 써 내려간다. 구체적으로 에리봉은 어머니와의 일화를 들고 각자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조건들을 객관화한다. 어머니의 ‘랭스어’와 어머니가 즐겨 읽던 대중소설은 저자의 ‘파리어,’ 저자가 읽던 철학책과 나란히 놓이면서 두 사람 사이의 계급적 거리와 문화적 차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의 일원인 어머니의 몇몇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게이이자 계급 탈주자인 저자를 여성이자 지방민, 과거 노동자였으며 노인이 된 어머니와 비교하는 일은 서로의 소수자적 위치를 비춰주는 정신적 거울로 작용하고, 이는 다시 소수 집단을 낙인찍고 열등화하는 사회적 메커니즘을 객관화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또한 저자가 어머니에 관한 사회적 전기를 쓰듯, 어머니가 저자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기록 보관자” “역사가”로서 저자가 묻어두고 싶었던 과거를 고집스레 들춰내 보이는 장면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계급 탈주자가 된 자식과 불가피하게 만들어지는 공백을 메우려는 노동계급 부모의 반응, 자식과의 “감정적 연결을 유지하는 최상의, 아마도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p. 174) 아무리 공통의 역사를 공유한다 하더라도 타자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불가능한 이해의 시도를 거듭하면서, 어머니가 기억들을 되새겨 자신과의 감정적 연결을 유지했듯 자신 또한 어머니와, 더 나아가 노동계급과 연결하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에 나타나는 끈질긴 이해의 시도와 그 가능성의 확장은, 자기에 관해 사회적 전기를 쓰는 일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일궈낼 수 있는 중요한 성취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