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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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 ㅣ 2019.03.25


임진왜란 문학의 최고봉 "그날 생생"

오늘 찾은 곳은 유물전시관.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에 있는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다. 동래교차로 지하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2005년 지하철 공사 도중 발굴한 유물을 전시한다. 유물을 둘러보는 발걸음은 무겁다. 마음은 더 무겁다. 유물 한 점 한 점 비분을 자아낸다. 저럴 수가! 저럴 수가! 비분을 삭이느라 몇 걸음 걷다가 멈추고 몇 걸음 걷다가 멈춘다.

유물은 하나같이 귀기가 감돈다. 모형이긴 하지만 인골이며 실물 녹슨 무기는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인골은 대부분 두개골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 예리한 칼날로 잘렸거나 창에 찔렸거나 둔기에 맞아 함몰됐다. 3년에 걸쳐 발굴한 인골 모두는 1592년 임진왜란 희생자였다. 그해 4월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동래읍성 군인과 양민이 400년 세월을 수안역 지하에 묻혀 있었다.
역사관 여기는 동래읍성 성벽과 해자가 있던 자리다. 해자(垓子)는 침입에 대비해 성벽을 따라 판 도랑이다. 성벽과 해자를 가운데 두고 음력 4월 15일 벌어진 동래읍성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아군은 전투 경험이라곤 백지였고 게다가 양민이 주축이었다. 반면 왜군은 100년 내전을 치른 정예군이었고 신식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대군이었다.
전투는 한나절 만에 끝났다. 여자를 비롯하여 아이와 개, 고양이 할 것 없이 피를 흘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살해되었고 부친의 유해를 찾으려 동래성에 가니 시신이 가득 쌓여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음력 4월은 여름. 왜군은 시신을 그대로 두면 염병이 창궐할까 두려웠다. 가득 쌓인 시신을 해자에 내던지고 묻었다.
지하철 공사로 발굴된 유골은 100여 구.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둘레 1.4km에서 겨우 50m 발굴해 그 정도니 실제로는 옛 기록대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금은 서기 2천 년. 해자 자리에 들어선 건물을 헐지 못해서, 온종일 차가 밀리는 도로를 걷지 못해서 동래는 곳곳에 400년 원혼이 묻혀 있다. 동래에선 뒤꿈치 들고 조심조심 다녀야 하는 이유다.

4월 15일 새벽 집집이 곡을 하니/천지가 온통 쓸쓸하게 변하고 스산한 바람이 숲을 뒤흔든다./놀라고 기괴하여 늙은 아전에게 물었지./"통곡 소리 어찌 이리 참혹한가?"/"임진년 왜구가 이르러 이날 성이 함몰되었지요./다만 이때 송 사또만 있어서 성벽을 굳게 닫고 충절을 지키니/경내 사람들이 성으로 몰려들어 동시에 피바다를 이루었지요./쌓인 주검에 몸을 던졌으니 천 명 중에 한두 명만 살아났지요./이 때문에 이날에는 술잔을 바치고 죽은 자를 곡한다오./아비가 자식 위해 곡하고 자식이 아비를 위해 곡하고/할아비가 손자 위해 곡하고 손자가 할아비를 위해 곡하고/또 어미는 딸 때문에 곡하고 또 딸은 어미 때문에 곡하고/또 아낙네는 남편 때문에 곡하고 또 남편은 아내 때문에 곡하고/형제와 자매까지 산 자는 모두 곡을 한다오."/찡그린 채 차마 다 듣지 못하는데 눈물이 문득 뺨에 가득하네./아전이 앞에 나와 다시 말하기를/"곡할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슬프지 않지요./얼마나 많은데요, 퍼런 칼날 아래/온 가족이 다 죽어 곡할 사람조차 없는 집이." 
 - 이안눌 시 동래 4월 15일   

이 시는 동래읍성 전투가 벌어진 날의 참상을 다룬다. 동래맹하유감으로도 불린다.
맹하(孟夏)는 초여름이란 뜻. 봄은 음력 1월, 2월, 3월이고 여름은 4월, 5월, 6월이다. 이안눌은 임란 끝나고 10년 후인 1608년 2월 11일부터 1609년 7월 10일까지 동래부사로 있었다. 그때 이 시를 썼다. 7년 왜란은 끝났어도 왜란이 남긴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던 시기였다. 그래서 현장을 직접 보듯 시가 살아있다.
시인은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다. 감정을 절제해도 감정이 북받치는 까닭이다. 한문 원문은 동래문화원 발간 국역 <동래부지> 제영잡저 95쪽에 실렸다.
동래 4월 15일은 기념비적인 시다. 임진왜란 기록물은 차고 넘쳐도 독자의 내면을 이토록 일렁이는 문학작품은 드물다. 임란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하고 싶다. 동의한다면, 동래는 임란 문학 최고봉의 산실이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이안눌은 4천 편 넘는 시를 쓴 대문호. 자신의 호를 딴 문집 <동악집> 26권을 남겼고 범어사 청룡암 석벽에도 시를 남겼다. 온천장 금강공원에 송덕비가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답게 거기 송덕비 20기 가운데 가장 낮고 가장 가늘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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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 ㅣ 2019.03.25


동헌서 문화재 돌봄 체험교실 개설
초등 3~6년생 및 가족 40명 대상
4월 1~19일 선착순 모집

초등 교과서에 있는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현장에서 체험하는 교실이 개설돼 관심을 끌고 있다.
동래구는 조선시대 동래부사가 공무를 관장했던 동래부 동헌 충신당 앞마당에서 내 고장 문화재를 돌보는 2019년 문화재 돌봄 체험교실을 처음으로 연다.
부산에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고읍도시로서 동래의 역사와 전통을 잇기 위해 마련된 이 체험교실은 초등 4학년 교과과정에 소개되고 있는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초등학생과 가족들이 동래부 동헌에서 살아있는 현장 수업으로 진행된다.
(사)부산문화재기술원이 진행하는 이 교실은 오는 4월 27일 토요일 오전 9시30분부터 3시간가량 초등 3~6학년생과 가족 등 모두 40명을 대상으로 조선시대 동래부 사람들의 생활모습과 동헌 등 관내 주요 문화재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특히 참여가족들은 문화재 돌봄사업단의 도움으로 4개 조로 나눠 창호지 바르기, 목부재 들기름 칠하기, 기와 쌓기, 한식 미장 등 간단한 문화재 관리 및 보수 체험을 할 수 있다.
신청은 4월 1~19일이며, 전화 또는 이메일(nackne@korea.kr)로 문화관광과에서 선착순 접수를 받는다.
한편 동래구는 이번 문화재 돌봄 교실이 좋은 반응을 얻을 경우 하반기에도 개설해 창호철물 방청 작업, 문화재 기초용어 교육 등 체험 범위와 체험 대상 문화재지역도 확대할 계획이다.  문화관광과(550-4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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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 ㅣ 2019.03.25


김준호, 손심심 출연
4월 6일 오후 3시

동래구는 지역의 주요문화재인 동래읍성, 동래부 동헌 등을 널리 알리고 지역 주민에게 전통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동래전통문화거리 동래야 한판 놀자 공연을 4월 6일 오후 3시 동래부 동헌에서 개최한다.
이날 국악인 김준호, 손심심이 출연해 구성진 한마당 토크콘서트와 함께 동래학춤, 동래성주풀이, 동래구음 등 공연과 사인회를 선보인다.
동래전통문화거리 공연은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 3시 동래부 동헌에서 관객이 참여하는 놀이마당, 신진민속예술인 초청공연 등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문화관광과(550-4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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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 ㅣ 2019.03.25


4월 9일 안남초서 첫 공연
10월까지 모두 7회 진행

찾아가는 동래부사 집무재현 마당놀이 공연이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를 더하고 있다.
동래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관내 2곳의 초등학교 강당과 특구페스티벌 행사장, 동래부 동헌 마당, 동래읍성역사축제 야외공연장 등지서 모두 7회에 걸쳐 동래부사 집무재현 마당놀이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
이 공연은 극단 더블스테이지가 맡아 4월 9일 오전 10시30분 안남초등학교에서 첫 공연을 가진 다음 △4월 11일 오후 1시10분에는 온천초 △5월 18일 낮 12시30분에는 특구페스티벌 행사장 △6월 7일 오전 10시에는 동래부 동헌 마당에서 각각 진행한다.
이와 함께 올해 제25회 동래읍성역사축제 기간 중 동헌에서 열릴 마당놀이는  동래부사 혼례를 주선하다란 주제로 매일 1회씩 3일간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올해 초등학교와 동헌에서 진행될 마당놀이는 식전·후 공연으로 뚜기·뚜미 캐릭터 홍보 공연을 펼쳐 분위기를 띄울 전망이다. 
동래구 관계자는 "올해로 5년째인 동래부사 집무재현 마당놀이 공연은 지난해 총 8회 1863명이 관람하는 등 매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새로운 내용으로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관광과(550-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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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 ㅣ 2019.03.25


동래아카데미 명강사 특강
4월 19일 오후 4시 동래문화회관
신동흔 구전설화 전문가 초빙

동래구는 문화교육특구에 걸맞게 직원과 구민 소통을 위해 오는 4월 동래아카데미를 4월 19일 금요일 오후 4시 동래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동래아카데미 강좌는 30여 년에 걸쳐 구전설화를 수집·정리하고 분석 작업을 한 신동흔(건국대 국어국문학과긿사진) 교수를 초빙한 가운데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된다.
신동흔 교수는 올해 1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 우리가 몰랐던 전래동화의 다양하고 파격적인 스토리를 맛깔나게 전개해 출연자 모두에게 옛이야기가 주는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동래구 관계자는 "이번 동래아카데미 명강사 특강인 옛이야기가 주는 다양한 반전스토리가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어 구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평생교육과(550-4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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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 ㅣ 2019.03.25


첫 방송, 동래고·동래여고편 소개
3월 리포터 좌담회 열어

인터넷 라디오방송인 동래고을 팟(pot)이 문을 열었다. 다채널 다매체 속에 종이신문이 갖는 한계를 넘어 새로운 트렌드를 추구하는 독자들의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주로 지면에서 다루지 못했던 취재 뒤 이야기나 그 달에 가장 핫한 이슈를 소개한다. 
개국에 앞서 지난 2월에는 3.1절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박차정 의사 일대기를 드라마로 제작해 시범 방송했다.
첫 방송은 동래고 역사관 관장과 동래여고 동문들을 초대해 100년 전 부산의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동래고보와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지난 15일에는 수민동 희망정류소 지하 녹음실에서 동래고을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느낀 보람과 에피소드 등을 대담하는 동래고을 리포터 좌담회를 가졌다.
동래고을 팟 청취는 스마트폰 플레이스토어에서 팟빵 앱을 내려 받아 동래고을 팟을 검색하면 되며, 회원으로 가입하면 댓글도 달 수 있다.  문화관광과(550-4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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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8 ㅣ 2019.02.26


100년 전 동래시장 "이랬답니다"


동래는 반골(反骨)의 도시다. 불의와 비정상엔 결단코 맞선다. 임진년 동래읍성 전투가 그랬고 일제강점기 삼일 만세운동과 항일학생의거가 그랬다. 올해는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딱 100년. 대한독립을 외치며 조선팔도가 들고일어났고 반골의 도시답게 동래 역시 똘똘 뭉쳐 들고일어났다. 동래고보 학생이 망미루 누각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동래사람은 남녀가 하나 되어, 노소가 하나 되어 온누리 들고일어났다. 그날 그 뜨거운 열기는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진다.


동래시장은 역사의 현장이다. 1919년 대한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 활화산 하나가 여기다. 그래서 언제 가 봐도 후끈댄다. 양은솥 내건 국밥집에서 내뿜는 허연 김은 알고 보면 100년을 똘똘 뭉친 열기다. 지금도 그럴진대 100년 전 동래시장 풍경은 어땠을까. 누가 무엇을 어떻게 팔았을까. 그때 풍경을 사진으로 더러 접해도 사진은 거기까진 알려주지 않는다. 과연 누가 무엇을 어떻게 팔았을까?

차상찬(1887~1946)은 일제강점기를 뜨겁게 살았던 행동파 지식인. 시인, 수필가, 언론인으로 한 시대를 드날렸다. 항일의병으로 나섰으며 1920년 민족계 잡지 <개벽>을 창간한 주역이다. <별건곤>은 개벽이 총독부 탄압으로 1926년 강제 폐간되자 그에 맞서 펴낸 민족계 잡지다. 별천지, 신천지란 뜻이다. 일제 압박에서 벗어난 새 세상 염원이 담겼다. 강원도 춘천사람이지만 반골 정신만큼은 영판 동래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동래를 찾았다. 반골이 반골의 본향을 어찌 안 찾았을 텐가. <별건곤> 1929년 8월호 기행문은 그가 다닌 동래 곳곳의 풍경을 정감 넘치게 묘사한다. 이런 글이 또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다. 시장 풍경도 정감 넘친다. 1929년이면 만세운동 10년 후. 만세운동 일어난 해의 동래시장 풍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잘 바뀌지 않는 우직한 데가 시장이지 않던가. 기행문 한 대목이다.

동래시장은 함흥보다 장소가 좀 좁고 장꾼이 적을 따름이지 피차에 비슷하다. 장꾼이 전부 여자인 것도 함흥과 같고 생선 많기도 함흥과 같고 에누리 잘하기도 함흥과 같고 여자의 목소리가 억센 것도 함흥과 같다. 함흥은 가자미가 많은 대신에 이곳은 멸치가 많고 함흥은 도야지 새끼를 함지에 이고 다니며 파는 대신에 이곳은 개를 함지에 이고 다니며 함흥 여자는 함박수건 또는 어린아이의 저고리를 쓰고 다니는 대신에 이곳 여자는 경상도의 특색인 삿갓 혹은 짧은 치마를 쓰고 다니며 고래의 산지인 울산이 접근한 까닭에 고래고기를 많이 파는 것이 특색이고 경상도에서 개고기를 많이 먹느니 만치 개고기 파는 것이 또한 특색이다. 미인향(美人鄕)이니 만치 함흥보다는 장꾼 중에도 비교적 미인이 많고 온천장이 가까운 만치 얼굴이 모두 조출하여 보인다. 또 가향(歌鄕)이니 만치 엿장사, 과자장사 무슨 장사 할 것 없이 물건을 사라고 외우는 소리가 모두 노래화하여 육자배기 조가 아니면 춘향가 조와 같다. - <별건곤> 제22호, 1929년 8월호 


인용이 길어졌다. 그렇긴 해도 더 길게 인용 못 해 아쉽다. 언제 어디서 이 글을 다시 내보일까 해서다. 그런 마음으로 끝 대목을 옮긴다. 차상찬이 시장을 기웃대면서 끼적였을 장돌뱅이 장타령이다. 에∼ 골라잡으시오, 골라잡어. 마음대로 골라잡으시오. 이 수건, 이 비누 가지시면 온천장에도 그저 가오. 비누 한 장에도 단 오 전, 수건 하나에도 단 십 전, 얼굴이 보고 싶으면 이 석경을 사시고 미인이 되고 싶으면 이 분을 사시오. 분 한 갑에도 오 전, 석경 하나에도 십 전이오. 알록달록 오색댕기 가시내 선물이 제격이오. 달큼살큼 왜사탕은 아기의 선물이라 에∼어서 사오, 어서 사오.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네….
삿갓 혹은 짧은 치마를 쓴 장꾼이며 육자배기 조가 아니면 춘향가 조 장타령이 걸쭉했을 장터. 어느 기록에서도 찾기 어려운 100년 전 그때 그 풍광이 기행문 형식으로 우리 앞에 부활한다.
그게 문자의 힘이고 문학의 힘이다. 엿장수, 과자 장사 등등 글에 나오는 그들 모두 동래사람과 더불어 동래장터 만세운동에 나섰으리라. 똘똘 뭉쳐 장터 여기에서 저기까지, 저기에서 여기까지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으리라. 곧 삼일절. 동래시장은 또 얼마나 후끈댈 것이며 동래사람은 또 얼마나 똘똘 뭉칠 것인가. 국밥집 양은솥은 연신 허연 김을 내뿜는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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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 ㅣ 2019.02.26


2019년 3월 1일은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을 맞는 날이다. 올해 정부는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란 슬로건을 내걸고 3.1절 행사를 집중 조명하며 거국적으로 펼친다.  동래구는 부산·경남 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래 선열들의 얼을 잊지 않기 위해 지난 1996년부터 올해로 24년째 동래3.1독립만세운동 행사를 재현한다. 특히 일제의 침탈에 항거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당시 동래고보(현 동래고등학교)와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선열들의 정신을 잇고 있는 이야기를 담아 본다.



일제에 항거하며 부산 독립운동 이끈 동래고

동래고 정문을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항일운동기념탑이, 바로 앞 화단에는 곽상훈 지사 흉상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1898년 9월 동래부학교로 개교한 이래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동고정신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7일 1986년 개관한 동래고역사관의 윤정국 관장을 만나 민족학교로서 동래고의 역사와 항일학생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1919년 동래지방에서도 3.1항쟁의 물결이 이어졌다. 3월 7일 서울의 학생대표단이 동래고보 학생대표인 김귀룡·엄진영·고영건 등을 찾아와 부산지방 봉기를 협의했다. 당시 경성고등공업학교에 다니던 곽상훈(동래고 선배)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왔다. 곽상훈은 선언서 원본을 가지고 올 수가 없어 창호지에 복사한 후 노끈을 만들어 숨겨왔다. 학생들은 선언서를 준비하면서 태극기와 독립만세기를 준비했다. 3월 13일 약속한 동래장날 동래군청 앞으로 학생과 일반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후 2시가 되자 엄진영 학생이 군청 옆 망미루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자 모여 있던 주민과 학생들이 호응하며 만세를 불렀다. 그러나 얼마 뒤 학생들은 검거되기 시작했다. 이 때 피검돼 재판에 회부된 후 징역형을 받은 학생이 22명이었다.
이후 동래고보는 장산촛불의거(1925년), 일본상품 불매운동, 부산공설운동장학생의거(1940년) 등 부산 동래의 저항 운동에 선구적 역할을 다했다.
동래고역사관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관람이 가능하다. 3.1절  100주년을 맞아 동래고역사관에 들러 애국애향정신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 배출한 동래여고

대륙의 들꽃으로 일컫는 박차정 의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동래여고 동문들은 올해 3.1절이 특별하다. 1919년 3월 11일 부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처음 시도해 자부심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동래여고동창회는 동래3.1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 때 동래여고옥샘합창단원 60명과 옥샘합창단원 40명 등 100명이 애국가와 3.1절 노래를 합창하며, 많은 동문들이 행사에 참가해 100주년의 의미를 드높일 계획이다.
동래여고동창회에서는  2005년 8월 31일 박차정 의사 숭모회 후원회(회장 최영람·54회)를 발족해 박차정 의사의 얼을 기리는 추모행사도 매년 주관하고 있다.  박 의사가 출생한 5월 8일에는 칠산동 생가(동래구 명륜로98번길 129-10)에서 동창회원들이 참배하고, 1944년 34세의 일기로 치열했던 삶을 마감한 5월 27일 기일에는 금정문화회관 만남의 광장에 있는 동상 앞에서 추모회를 갖고 있다.
동창회에서는 1919년 당시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다 일경에 체포돼 징역 5개월을 선고받은 김반수(당시 16세·2001년 작고) 할머니를 2001년 별세하기 전 동래여고에 초빙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김반수 할머니는 "10일 밤 10시경 일경의 눈을 속이기 위해 전기 불을 끈 뒤 벽장 속에 들어가 촛불을 밝히고 사발을 뒤집어 태극의 동그라미를 그리고, 깃대는 학교 대나무밭에서 구해 100여 개의 태극기를 준비했다"고 증언했다.
동래여고총동창회는 올해 100주년 3.1절을 계기로 동래여고 건학이념 애국 애족 애향을 적극 실천하고자 동문들이 대동단결해 부산의 독립만세운동의 맥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김순점·도라지·정문량(동래고을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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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5 ㅣ 2019.02.26


부산로얄필하모닉오케스트라
2019 신춘음악회 특별무대
3월 19일 동래문화회관 대극장


새봄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을 담은 신춘음악회가 구민 곁으로 찾아온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감성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2019 신춘음악회가 오는 3월 19일 오후 7시30분 동래문화회관에서 막이 오른다.
제48회 숲속의 열린음악회 프로그램으로 마련되는 이번 음악회는 백진현 교수의 지휘로 부산로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귀에 익은 아리아 연주와 주옥같은 한국 가곡들을 들려준다.
주요 레퍼토리는 오페라 카르멘 중 투우사의 노래로 첫 무대가 열린다. 이어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의 왈츠 △돈 죠반니 중 우리 손을 잡고 △라보엠 중 오 미미는 돌아오지 않고 등 아리아 명곡들을 잇따라 감상할 수 있다. 이날 △청산에 살리라 △강 건너 봄이 오듯 등 모처럼 한국 가곡의 멋에 젖어 새봄을 음미하는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이번 공연은 현재 부산대학교 음악과 성악교수로 재직하며 2014 독일 튜링엔주 최고의 예술가 상을 수상한 테너 김충희, 마에스트로 정명훈 지휘자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 국립오페라단과 다수의 호흡을 맞춰왔던 세계적 소프라노 윤정난, 현 안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적인 콩쿨에서 다수의 입상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은 바리톤 한명원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특별 무대가 마련된다.
또 현재 동서대학교 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부산마루국제음악제 집행위원장 겸 예술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는 백진현 교수와 클래식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기획연주와 오페라음악을 연주해온 부산로얄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낼 아름다운 선율과 하모니 역시 큰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관람료는 2만원이며, 초중고학생, 장애인 및 동반 1인, 65세 이상 경로우대자, 국가유공자 및 동반 1인, 의사상자는 50% 할인된다. 인터파크 홈페이지와 동래문화회관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예매가 가능하고 당일 현장구매도 가능하다.
  동래문화회관(550-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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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92 ㅣ 2019.01.29


한국문학의 자산, 동래의 자랑

동래는 심층 도시다. 속이 깊다. 무어든 그렇다. 역사면 역사, 문화면 문화, 부산에서 가장 깊은 데가 동래다. 천년의 신비를 품은 까닭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근대 이전은 물론이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래는 한국문학의 속살이었고 내면이었다. 문학과 동래는 불이(不二)였고 이이일(二而一)이었다. 문학에 담긴 동래 이야기를 더듬어 본다. 편집자 글



문학관은 한 문학가의 처음과 끝을 담은 공간. 문화적 자산이자 지역의 자랑이다. 부산에 있는 문학관은 셋. 이주홍문학관, 요산문학관 그리고 해운대 추리문학관이다. 광역 대도시에 고작 셋뿐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엄정하고 귀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동래엔 이주홍문학관이 있다. 부산시에 등록된 사립문학관 제1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이주홍문학관. 향파 이주홍(1906~1987)을 기리는 문학관이다. 온천동 부산전자공고 어름에 있다. 도시철도 명륜역에서 내려 유락여중 방면으로 걷다가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표지판이 보인다. 문학관은 가는 길부터 문학적이다. 이주홍문학거리라고 이름 붙인 길에 이주홍 문학의 알갱이 같은 작품이 이어진다.

향파는 팔방미인이었다. 1928년 동화로 등단해 동시, 소설, 수필, 시나리오, 희곡, 고전번역, 서예, 출판기획 그리고 만화를 비롯한 그림까지 문학 안팎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가를 이루었다. 한국 최초의 출판미술가로 불리기도 한다. 작품집은 200권이 넘는다. 연말이 되면 그림을 손수 그린 연하장을 보냈다. 향파 연하장을 받지 못한 문인은 문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문학관은 단아하면서 다감하다. 깔끔하면서 정이 많았던 선생의 생전 모습을 보는 듯하다. 향파 이주홍과 요산 김정한은 두 살 차이. 살아생전 문학 동지였고 술친구였다. 성격은 정반대였다. 요산이 뾰족했다면 향파는 둥글었다. 격해지려는 술자리를 다독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끄는 데는 향파 만한 이가 없었다.

향파는 경남 합천 사람. 그런데도 동래구 온천동에 문학관이 들어선 것은 여기가 제2의 고향인 까닭이다.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1971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온천장에 살았다. 무엇보다 1947년 여름 동래중 교사로 부임해 많은 제자를 두었다. 국제신문 주필까지 지냈던 김규태 시인도 그때 제자다. 동래중에 있으면서 부산지역 학생연극에 앞장섰고 부경대 전신인 수산대 교수로도 오래 있었다. 금강공원에 동시 해같이 달같이만 시비가 있다.

"향파 선생님은 도장이 참 많으세요. 인장 전시회를 열 정도였어요." 이주홍문학관 강영희 사무장은 이주홍 문학 애독자였다. 중학생일 때 교과서 동시 메아리에 반해 편지를 보냈고 답장과 함께 선생 작품집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저런 인연으로 2008년부터 문학관 일을 본다. 강 사무장 말대로 문학관에 전시된 인장은 수십 종. 서예와 그림을 즐겨 한국 문단에선 보기 드물게 낙관 인장이 많았다. 인장이나 만년필 같은 소장품, 예술작품, 그리고 한 생애의 처음과 끝을 담은 이주홍문학관은 한국문학의 자산이자 동래의 자랑이다.     

동래를 소재로 한 작품은 어떤 게 있을까. 동래와 인연이 깊었던 만큼 차고 넘친다. 강영희 사무장은 단편소설 동래금강원을 추천한다. <신동아> 1969년 2월호에 발표했고 1973년 발행한 작품집 <풍마>에 실렸다. 당시 금강공원 정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구절이다. 그전 때는 베비꼴프장이나 노지에 만들어 놓은 탁구대 몇 대 정도 있는 것뿐이었는데, 지금은 하니문카니 로울러플레이어니 회전비행기니 케이블카니, 게다가 동물원까지도 생겨 있다는 이야기였으니 금석지감이 무량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dgs1116@hanmail.net


동길산 시인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뻐꾸기 트럭> 등 시집 다섯 권과 <시가 있는 등대 이야기> 등 산문집 다섯 권, 그리고 한국신발 100년사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를 펴냈다. 국제신문·부산일보·한국일보에 부산의 길 부산의 등대 부산의 포구 부산의 비석 부산·경남 문화지리지 등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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