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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사의 젓가락

어느 해 영남지방에 극심한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생할 때 한배하(韓配夏)라는 사람이 동래부사로 부임해 왔다. 논바닥이 갈라져서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짓는 백성들의 우울한 얼굴을 보고 있던 부사는 무엇을 결심했는지 그의 객사에 장작을 쌓게 하고는 "내가 백성을 다스리는 관장으로 이곳에 와서 이 참상을 보게 되는 것은 나의 부덕으로 오는 까닭이니 스스로 죽을 각오를 했소. 내가 죽은 뒤 부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게 되길 빌 뿐이오." 부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라고 명했다.
그러나 감히 불을 지필 사람이 없었다. 부사가 다시 엄한 어조로 하인들을 꾸짖자 한 하인이 눈물을 머금고 장작에 불을 지폈다. 장작더미 위에 태연히 앉은 부사의 옷깃에 불이 붙을까 말까 할 때 별안간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들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연 이틀 동안이나 비가 흠뻑 내려서 개울에는 물이 콸콸 넘쳤다. 그리하여 오랜만에 백성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한부사는 동래에 재임하는 동안 언제나 백성을 위하는 명부사(名府使)로서 이름이 높았고, 나중에는 재상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 당시 조정에서는 백성들에게 술을 금하던 때였고 또한 당쟁도 심한 때였다.
어느 날 조회(朝會)에 들어오는 한재상의 얼굴이 홍당무같이 술에 취한 모습이 완연히 드러난 것을 본 반대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상감마마, 만백성의 귀감이 되어야 할 재상이 나라에서 금한 술에 취해 이 엄숙한 조회에 나오니 이를 그냥 둘 수 없사옵니다. 마땅히 제재를 가하여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라고 상소했다. 이 때 한배하 재상은,「말씀드리기 황공하오나, 소신은 매년 구월 구일에는 꿈속에서 옛 부사로 있던 동래에 가서 술과 음식을 대접받습니다. 지난 밤에도 꿈속에 동래에서 마신 술의 취기가 아직 덜 가신 듯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나라에서는 제향에만 술을 쓰게 했으므로 반대파들은 제향을 핑계하는 비겁자라고 반박했다.
「그러하온데 또 한 가지 신기한 일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어젯밤 제향에 갔더니 하필 소신 앞에 놓인 음식에 젓가락이 없어서 소신은 옷에 찼던 첨저(尖箸)를 뽑아 먹었사오나, 돌아올 때 그만 첨저를 잊어버리고 그냥 두고 왔사옵니다. 그런데 꿈에서 깨어보니 기이하게도 소신의 첨저가 없어졌으니 동래부사에게 관차(官差: 관청에서 보내는 아전)를 보내어 확인하심이 어떠하오리까?」라고 덧붙였다.
이리하여 왕은 동래에 관차를 내려보냈다. 이 때 마침 동래에서는 향사에 차렸던 제물을 치우다 보니 한부사 자리에는 젓가락을 놓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첨저가 놓여있으므로 모두들 야단들이었다. 이 첨저라는 것은 당시 양반의 옷에 차고 다니던 작은 칼집 안에 꽂아 두는 조그만 젓가락을 말하는 것이다. 동래 관헌들은 이 신기한 일을 그대로 둘 수 없어서 서울의 한 재상에게 알리기 위해 통인(通引)한 사람을 막 보내려고 하던 참인데 서울에서 내려온 관차가 들어섰다. 관차가 향사 지내던 곡절에서부터 한재상의 첨저에 이르기까지 이모 저모를 묻게 되었다. 관헌들은,「그렇지 않아도 하도 일이 이상하여 서울로 사람을 올리려던 차였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그 첨저를 내놓았다. 관차는 서울로 돌아가서 왕에게 첨저를 올리고 사실대로 고했다. 왕의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 찼다. 본래부터 한배하가 청렴결백한 사람임을 믿고 있던 왕은 이 말을 듣자 더욱 그를 신임하여 정승의 자리까지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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