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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정봉서와 마누라

옛날 동래부에 구차한 집안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정봉서란 사람은 효성이 지극하고 힘센 사나이였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병석에 눕게 되어 의원에게 물었더니 개 천 마리를 잡아먹어야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에서 개를 천 마리나 구할 길이 없었던 정봉서는 갖은 힘을 다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칠 것을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하여 길을 걸어가다가도 살찐 개가 보이기만 하면 냉큼 뒷다리를 잡아 집에 들고 와서 병든 어머니에게 고아 드리곤 했다. 이것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되었으니 어머니가 죽고 난 뒤에도 도둑으로 생계를 이어오다가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격으로 나중에는 큰 도둑이 되었다. 어느 날 동래 성내의 사람들이 기장의 쌍다리 험한 고개에서 험상궂게 생긴 8-9명의 도둑패를 만났다.
「이놈들아 꼼짝 말고 제자리에 서거라.」사납게 호령을 하곤 아무소리 말고 따라오라고 말했다. 혼나간 행인들은 공포에 떨면서 도둑의 무리를 따라 깊은 산중으로 10여 리나 되는 먼 길을 끌려 들어갔다. 얼마 후 산 중턱에 자리잡은 그들의 소굴까지 끌려온 행인들은 괴수 앞에 꿇어앉았다. 이 때 이리에 쫓긴 어린 양처럼 떨고 있던 행인 중의 한 사람이,「저희들은 모두 동래 성내에 살고 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괴수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안색이 달라지며 조금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부하들을 시켜 깨끗한 방으로 안내시키고 맛난 음식을 차려 이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이튿날 행인들이 떠날 때는 노자까지 빠짐없이 주었다. 이 도적의 괴수가 바로 정봉서였다.
이미 골수에 배인 도적질이라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많은 부하를 거느린 그는 깊은 산중에 본거지를 두고 도둑질을 하여 생계를 때웠으나, 의적의 이름을 들을 만큼 부잣집에서 빼앗아다가 구차한 집을 도와주곤 하였다. 하루는 정봉서가 가난한 어느 집 앞을 지나가는데 집안에서 방금 해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어 그 집 부엌을 들여다보니 밥 지을 쌀은 물론 국을 끓일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남편 되는 주인은 속수무책으로 산모 수호를 해줄 길이 없어 얼굴만 쳐다보고 한숨만 쉬고 있는 딱한 형편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쌀과 쇠고기를 집주인 몰래 사 가지고 부엌에 두고, 안을 향하여 「바깥주인 계십니까?」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라 주인이 쫓아 나오니 정봉서는「부엌에 들어가 보시오.」라 말하고는 그 집에서 사라져 버렸다. 주인은 의아해 하면서 부엌으로 나가보니 쌀과 고기와 산모에게 끓여 먹일 미역 등이 준비되어 있더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의적으로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정봉서도 말년에 동래 포졸에게 잡히고 말았다. 옥에 가두어 둔 정봉서에게 옥리는 먹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주지 않아서 15일째 되는 날 굶어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정봉서의 아내는 거품을 물고 동헌(東軒)으로 달려갔다. 남편 못지 않게 장사였던 그녀는 동헌 앞의 하마석(下馬石)을 번쩍 들고는
「이놈들아, 너희들이 아무리 관헌이라고 하지만 너무 심하지 않느냐. 내 가장이 비록 도둑은 도둑이지만 의적이라는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렇게 죽이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고함치며, 동헌 3대문을 때려 쳐서 판자가 날아갔다.
지금의 금강공원 입구에는 그 때 정봉서의 아내가 부순 대문 기둥으로 건물을 지은 것이 남아있다는 게 동래의 고로(古老)들 사이에 떠도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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