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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모자

지금 동래구 서문통 옛날 관문대로에 이르는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면 둘째 집 뜰에 동래부사 류심(柳沁)의 비가 서 있다가 2001년 봄에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길가에서도 잘 볼 수 있었던 이 비의 주인공 류심이 전생의 모친을 만난 이야기를 여기에 소개한다.
옛날 이 집에 일찍 남편을 여의고 아들 하나에 마음을 의지하고 살던 과수가 살았다. 이 아들은 인물이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네 살짜리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여간 영리하지 않았다.
당시 동래에는 부사가 바뀌고 새 부사가 부임할 때엔 그 부임하는 행사가 여간 성대하지 않았다. 새로 부임하는 부사가 8선녀를 청하면 동래의 명기를 뽑아 8선녀의 행렬을 하고 대군복을 차리라고 하면 군졸에게 갑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내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성대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성내 주민들은 물론 건넛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집을 비우고 길에 나와 구경했으니 하나의 거부적(擧府的) 행사인 셈이었다. 이 구경에 과수도 어린 아들을 업고 길 옆에 섰다. 장관을 이룬 부사 행렬을 눈 담아 보고 있던 아들이 갑자기,「엄마,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왜 말이 없어, 난 커서 어른이 되면 저렇게 할 테야.」라고 엄마 등을 동동 치고 있었다.「얘야 너는 어른이 되어도 저렇게 할 수 없단다. 우리들은 상놈이라서 저런 벼슬은 꿈에도 못할 거야.」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그 날부터 밥을 먹지 않고 말도 잘 하질 않더니 며칠 뒤 이름 모를 병으로 죽게 되었다. 과수의 슬픔은 말할 나위 없었다. 그녀는 밤과 낮을 이어 울음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던 차에 어느 날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만났다. 「어머니 울지 마세요, 저는 서울에서 재상을 지내는 류씨 가문에 태어나서 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 저는 이젠 상놈이란 소릴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벼슬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어머님 걱정 마셔요.」라고 똑똑히 말하고 사라졌다. 그 후 세월은 가고 세상도 바뀌어 과수의 눈물도 말랐다.
숨가쁜 하루살이에 피로한 그녀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나, 아들에 대한 정은 잊을 수 없었기에 아들이 죽은 날에는 제상을 차려놓고 울기도 했다. 그런데 류심은 매년 생일날이면 꼭 꿈속에서 동래에 가서 제사음식을 먹고 돌아오곤 했다.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 장성한 류심은 동래부사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행차하는 동래의 길이 이상하게도 꿈속에서 오가던 길과 흡사함을 느꼈다. 어느 날 밤중에 제삿밥을 먹던 집을 찾기 위해 통인과 함께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꿈속에서 찾아간 집과 똑같은 집이 있었다. 류부사는 조심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백발 노파가 제상을 차려놓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부사는 정중한 인사를 올리고「노인은 어이하여 제상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요?」라고 물었다.
「이 몸은 가장 없이 아들 하나를 의지하여 살았사오나, 어린 것이 단명하여 저승으로 갔사온데 오늘이 바로 그 입제일이옵니다.」라고 말하고 소매를 적셨다. 아들이 죽은 날을 듣고 보니 이상하게도 그 날이 류 부사의 생일과 같은 날이었다. 과수는 덧붙여「그런데 그 아이가 죽은 뒤 꿈속에 나타나서 서울 류씨 가문에 태어났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했을 때 류 부사는 마음 속으로 어머님이라고 불렀다. 이 노파가 바로 전생의 어머니임을 알았던 것이다.
부사는 그의 직권으로 전생의 어머니께 돈과 곡식을 내려보내고 여러모로 도움이 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리곤 부사가 타처로 전출되었을 때는 제사도구와 농토를 마련하여 주었으므로 이 노파는 노후에도 어렵지 않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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