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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동

안락동은 조선시대 중기까지 동래부 읍내면의 동부에 속했던 호현리, 안락리, 충렬사리, 염창동, 구향교동 등을 포함하는 민가밀집지역이었다. 조선후기에 들어 염창(廉倉)은 염창(鹽倉)으로 바뀌었고 충렬사리와 안락리는 서원부락으로 바뀌어 호현, 화현 등 4개 부락을 합해 원리라 불렀다.
원리란 서원이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송상현, 정발장군 등을 모신 안락서원에서 동 명칭이 유래되었다.

안락1동
조선시대 동래부 읍내면 지역으로, 서원이 있는 마을이라 뜻으로 원리(院里)라 불렸으며 1940년대 원리(서원부락)는 현재의 충렬사관리사무소와 그 마당에 위치해 있던 30여호의 작은 마을이었으며, 개인의 농장과 단감나무가 많았던 곳이었다. 또한 산자락의 모양이 소쿠리 같다하여 '소쿠리터'로 불렸던 현재의 충렬사 뒷편 망월산은 달구경하기 좋은 산이라 하여 망월산이라 했다는 설과 동래읍성의 일부로 왜놈들의 침노를 망보던 산이라 해서 망월산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안락2동
1960년대 안락2동은 인가라곤 화현 부락을 형성했던 40~50가구 뿐이었으며 충렬로와 철길 건너편은 온통 논과 갈대밭으로 시골의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1970년대부터 변모하기 시작한 안락2동은 크고 작은 아파트, 공장, 주택이 들어서면서 신흥 주거지역으로 변모한 것이다.
또 월성 박씨의 선조 15분의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음력 10월5일이면 묘사를 지내고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박씨재실'과 1920년대 온천천일대 갯벌을 개간하여 논밭을 만들고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준 공덕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오남근 공덕비' 등이 구수한 옛 이야기를 묻어나게 한다.

안락1동 특정지명은 다음과 같다.

  • 염 창 : 현, 동래고등학교와 충렬사 사이에 있던 옛마을 이름 (옛 수영, 명장지역은 염전으로 여기서 나는 소금을 보관한 창고가 많았음)
  • 서원 : 안락서원이 위치한 일대의 마을(양반 및 그 노비들만 살았음)

안락2동 특정지명은 다음과 같다.

  • 여울다리 : 지금의 원동교
  • 호현 : 안락고개 밑에 있는 마을로서 옛날에 여우가 많았다 함 (현, 군인아파트 일대)
  • 화현 : 현, 원동교 부근으로 조선시대 재산관리청이 있었던 곳
  • 구천묘 : 현, 남일중학교 부근으로 묘가 9000개가 되면 해방이 된다는 설이 전해 오던 곳(공동묘지)
  • 시내그랑 : 원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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