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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동

동래구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명륜동은 동래군 읍내면 지역으로 동래향교가 위치하고 있어 '향교골', '교리' 혹은 '객달리', '신향교동'이라 칭하였는데 1914년 대평동, 범어동, 서호동 일부를 합해 교동이라 했다. 명륜동은 향교의 중심건물인 명륜당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국립지방교육기관이 있던 동래향교를 비롯한 옛 동래읍성의 문화유적지를 끼고 있는 곳인만큼 예의바르고 보수적인 성격을 지닌 마을이며 동래구 행정의 중심지이다.
옛 선조들의 교육진흥정책의 일환으로 세워진 동래향교는 조선초기부터 세워졌으나 몇차례 이전을 하였고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1605년(선조38)에 중건된 후에도 다시 위치를 옮겼다가 지금의 위치에 세워진 것은 1813년(순조13)에 동래부사 흥수만에 의한 것이다.

복산동 특정지명은 다음과 같다.

  • 삼성대 : 현, 대동병원 맞은편 일대로서 안(安), 송(宋), 옥(玉)씨등 세 성씨의 시조가 살았던 곳
  • 관황묘 : 현, KT동래지사 뒤편으로서 중국 관운장의 사당이 있었음
  • 교리 : 향교가 있는 동네를 통상 부르는 지명으로서 현, 향교주위 일대를 말함
  • 만년대 : 죄인들을 처형하던 자리로서 뒤에는 연못, 주위는 논이었음 현, 중앙여자고등학교 남쪽 지역
  • 사거리 : 명륜동에 있던 네갈래의 길 서북쪽으로 옛날에 소전(소시장)이 있었음 (소전거리, 소전, 소정그래) 현, 국민은행 길건너 맞은편
  • 서천교 : 현, 동래지하철역 자리인 온천천(옛날의 동래천이라 부르던 곳)에 세워진 다리로서 동래에서 온천동 산저마을로 가는 나무다리
  • 비석거리 : KT동래지사 뒷골목을 말하며 비석이 줄지어 있어 비석거리라 했다 일제말기에는 '나까마치'라 불렀고 앞길을 포푸라(버들)마치라고 불렀는데 술집이 많았다.
  • 대낫들이 : 옛 동래읍 명륜동에서 온천장으로 가는 길인데 도임 또는 이임하는 부사가 옷을 갈아입고 지나는 곳이라 하여 일명 개복장이라고도 했다.
  • 못안골(화장골) : 동래문화회관 부근 일대, 못안쪽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
  • 시실골 : 현, 동해중학교 뒷마을로서 산열매, 특히 돌감나무가 많고 숲이 울창하였다.(새실, 수곡, 시시골, 시실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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