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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홍문학관

이주홍문학관 이미지
이주홍문학관에 대한 소재지, 이용시간, 연락처, 휴관일을 나타낸 표
주소 (607-834) 부산 동래구 금강로61번길 20-12(온천동)
연락처 051) 552-1020
홈페이지 http://www.leejuhong.com

태그 이미지이주홍문학관, 이주홍선생, 문학, 3·1독립운동

기본정보

「이주홍문학관」은 향파 이주홍 작가(1906~1987)가 1971년부터 1987년 별세할 때까지 기거했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 1동 177-18번지 가옥을 부산광역시의 지원금으로 구입하여 개축한 것인데, 이 지역의 개발 공사로 인하여 2004년 5월 현 위치에 문학관을 신축하여 이전하였습니다. 「이주홍문학관」운영을 위해서 1980년에 이주홍 선생의 제자들이 결성했던 <이주홍 아동문학상 운영위원회>를 해체하고 2002년 1월 <사단법인 이주홍문학재단>을 설립하여 본격 사업에 들어갔으며, 2002년 10월 5일에 처음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이주홍문학관」은 향파 이주홍 선생께서 소장했던 도서 및 서화를 비롯한 유품을 전시하고, 문학 세미나, 문학 강연회, 창작 수업을 통해 시민들에게 문학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용정보

이용시간 화요일~일요일, 10:00 ~ 17:00
휴관일 월요일, 국가공휴일
주차장 시내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자가용 이용시 교통체증과 주차장 협소로 주차하기가 곤란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리함.

이주홍 선생

향파 이주홍 선생은 1906년 5월 23일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은 1918년 합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던 중 1919년 3·1독립운동을 맞았습니다.
14세 어린 나이의 그는 3·1운동의 양상에서 나라의 앞길은 새문물, 새학문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가정 형편상 새학문을 위한 진학의 뜻을 펴기는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1920년 고학이라도 하려고 단신으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사고무친의 서울에서 껌과 은단을 팔고 신문을 배달하며 고학의 꿈을 이루려 했습니다마는 정규 중학 진학의 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1924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일본은 그 당시 우리나라보다 서구의 신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고학의 길도 쉬우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각박한 이국땅에서 겪는 나날의 노동은 육신의 허기를 채워줄 뿐 제도적 정규학교의 꿈은 그곳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경야독하는 삶은 뒷날 인간 존재의 의의를 헤아리는 체험적 예지로 열렸습니다.

1925년 이국땅에서 쓴「뱀새끼의 무도」가 모국의『신소년』에 발표된 일은 그 어려운 생활 속에서 얻어진 문학적 예지라면, 1928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우리 교포 자녀가 우리말 우리글을 잃어가는 실정이 안타까와 양인환씨와 근영학원을 설립하여 교사노릇을 한 것은 나라와 겨레의 내일을 염려한 실천 의지였습니다.

1929년에는 모국의『조선일보』에 보냈던 단편소설 가난한 사랑이 입선된 그해 고국으로 돌아오니 아동잡지『신소년』에서 편집을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신소년』은 경영이 지극히 어려울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요, 동화, 동극은 물론 표지화, 컷, 삽화, 만화까지 혼자서 하는 노력과 재능을 발휘하여 어린이의 꿈을 살려갔습니다. 그는『신소년』 편집에 그치지 않고 소설, 시, 희곡, 시나리오 등을 국내 잡지에 발표하면서 우리나라 현대문학 초창기를 열어갔습니다.

1936년에는 종합문예지『풍림』창간에 동참하여 편집을 맡고, 1939년에는 잡지『영화·연극』편집을 주간하고, 1940년에는 잡지『신세기』의 편집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당시 일제가 우리말 우리글의 말살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가 되어 그는 일본경찰의 요시찰인물로 지목되어 있었습니다. 마침내 1945년 봄 서울에서 체포되어 거창검사국에 수감되었습니다. 감방에서 풀려난 것은 1945년 8·15광복 다음날인 16일이었습니다.풀려난 그는 배재중학교(당시는 5년제 중학) 교사가 되어 학생을 가르치는 한편, 연극운동과 창작활동을 병행해왔습니다.『초등국사』를 발간하여 일제로 해서 상실한 우리의 국사교과서를 되살렸습니다.

1947년에는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동래중학(현 동래고교) 교사, 1949년에는 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연극운동과 문학의 저변 확대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것이 문화의 불모지 부산이란 그때였습니다. 그의 창작은 아동문학, 시, 소설, 희곡, 평론, 시나리오 수필, 중국고전의 번역 등 문학 전 영역으로 펼쳐지면서 회화와 서예에까지 그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1966년에는『문학시대』를 창간하여 문화의 불모지 부산은 물론 한국문학을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부산에서 활동한 햇수는 40년이었고 일본과 서울에서 활동한 해수를 합하면 60년이 됩니다. 60년 동안의 문학과 일반교양 저서는 각 출판사의 기획출판으로 중복된 것까지 합하면 200권 정도가 될 것입니다. 선생의 작품을 각 장르별로 평한 평가들의 평은 인간성의 옹호와 회복을 위한 휴머니즘의 세계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은 1957년 제1회 부산시문화상, 1962년 제1회 경상남도문화상, 1963년 제1회 부산대학 학술공로상, 1968년 눌원문화상, 1979년 대한민국예술상, 1983년 대한민국문화훈장 1984년 대한민국문학상, 1987년 3·1문화상들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설소개

  • 개요
    • 1층 : 사무실, 로비, 향파문학당
    • 2층 : 전시실, 수장고, 서재
  • 전시 안내
    • 일대기, 작품활동, 예술활동, 매체활동, 문단활동, 사회활동과 연구문헌, 경남지역문학과 향파, 향파와 글벗, 소장편지글, 소장희귀본 등 10분야로 나누어져 있음
  • 행사안내
    • 5월 : 이주홍문학축전
    • 여름방학 : 어린이문예교실 (어린이연극교실, 동시·동화창작교실, 어린이독서신문교실)
    • 상시 : 도서관 개방 (지역주민 도서 대출 가능)
  • 관람시간
    • 화요일~토요일 : 오전 10시 ~ 오후 5시
      (문학관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미리 문의 바랍니다) 휴관일 : 일요일, 월요일, 국가공휴일
  • 주차장
    • 이주홍문학관은 시내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자가용 이용 시 교통체증과 주차장 협소로 주차하기가 곤란하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편리합니다.
  • 관람안내문의
    • 051) 552-1020 (단체 관람 시 반드시 사전에 전화문의 필수)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 및 변경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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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정보

  • 담당부서 문화관광과
  • 담당자 임성원
  • 문의전화 051-550-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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