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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담뱃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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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의 고로(古老)들은 이 지방의 명산물로서 서슴지 않고 담뱃대를 든다. 그만큼 동래지방에는 일찍부터 담뱃대를 만드는 수공업(手工業)이 성행하여 부산지방 수공업의 대종을 이루었다.
옛날에는 연관(煙管)이란 이름으로 불린 담뱃대가 언제부터 생산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조선시대에 울산(蔚山)의 병영(兵營)에 무기 제작창(武器製作廠)이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연관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이곳에서 동래지방으로 옮겨진 것이라고 추정한다면 대략 150년은 됐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울산을 비롯, 경주(慶州), 김천(金泉) 등 전국 각지에서 담뱃대가 다량 생산되었지만 가장 성했던 곳은 동래라고 한다. 풀무불에 쇠까치를 달구어 두드리는 쇠망치 소리가 여기 저기 쉴 새 없이 들려왔고, 연관공(煙管工)들이 부르는 흥겨운 담바귀타령이 밤늦게까지 흘러나오곤 했던 것이다.

"시작일세 시작일세 담바귀타령이 시작일세
귀야 귀야 담바귀야 동래 울산 담바귀야
너의 국(國)이 어데길레 대한의 국을 왜 왔나
우리 국도 좋건마는 대한의 국을 유람왔네…"
(담바귀타령의 일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물건은 장날이 되면 연관조합(煙管組合)에 가져다주고 그 대금(代金)을 받아와서 직공들에게 임금을 지불했으며, 물건을 인수한 조합은 이것을 직매(直賣)하지 않고 서울에 있는 조합(총판)으로 보내어 전국의 판로(販路)를 통해 거래가 되었다 한다.
그러나 해방 후 서민의 담뱃대가 궐련으로 바뀌고, 언제부터인지 담배가 고급화됨에 따라 담뱃대는 하나 둘 자취를 감추어 민예품으로 장식품화되어 가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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