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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줄다리기

동래줄다리기 이미지
3·1운동(1919)이 있은 후 울분을 토할 길이 없었던 부산(동래) 사람들은 예부터 이 지방에 있었던 민속놀이인 줄다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1922년 음력 대보름날 부산시를 동(좌천동에서 북쪽)과 서(수정동에서 남쪽)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했다. 집집마다 짚을 내놓아 새끼줄을 꼬고 거기다가 로프나 철제줄까지 섞어 암줄과 숫줄을 만들었다.
머리가 좁은 수줄을 암줄의 넓은 구멍에 끼워놓고 숫줄머리 구멍에는 전봇대만한 나무 기둥을 끼워 징과 북소리에 맞추어 양쪽이 힘껏 줄을 당겼다.

당시 부산에 거주했던 우리 동포가 6만명이었는데 줄다리기에 참가한 인원이 2만명 이상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큰 행사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3일만에 끝난 이 해의 줄다리기는 서군(西軍)이 승리했다. 정월 대보름을 기해 이같이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일본인 상가(商街)도 철시를 하고 근방에는 포장을 친 음식점이 즐비하고 휴식시간에는 술을 마시고 장구를 치며 흥청댔다. 줄을 당길 때는 선창자(先唱者)의 노래창에 따라 "쾌지나 칭칭나네"의 후렴을 일제히 따라 부르고 탈춤과 갖가지 놀이로 흥겨웠다. 그 이듬해의 대보름날 줄다리기에서는 동군(東軍)이 이겼으나, 그 이후 몇 년 동안은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0년에 부활하여 3∼6년간 계속되기도 했으나, 그 이후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막대한 물량, 도로사정, 새끼구입의 곤란, 시민의 참여도 등 여러 문제로 오늘날 재현이 어려운 실정이나,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민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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