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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사 영산회상도

원광사영산회상도 이미지
소재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쇠미로 3-22(원광사)
문화재정보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97호
지정일 2008.12.16

태그 이미지석가여래삼존상, 원광사, 대운전, 영산회상도

기본정보

원광사 대웅전의 석가여래삼존상 뒤에 보안되어 있는 영산회상도는 화면의 일부에 안료와 문양이 벗겨지고 떨어지는 현상이 보이기는 하지만, 화면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본 작품은 화기에 의해 1791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불화의 제작에는 편수(片手) 영린(永璘), 용안(龍眼) 영수(影修)를 비롯해 15명이 참여하였는데, 이들은 18세기 후반 부산경남경북 일대를 근거지로 활약한 화사로 알려져 있다.
화면 중앙에는 해면(海面)에서 솟아오른 커다란 연꽃 줄기의 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설법인(說法印)을 취한 모습의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 6위를 배치하였다. 화면 하단 중간에는 석가여래가 앉아 있는 연화대좌 좌우로 석가여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이 시립(侍立)해 있고, 좌우 가장자리로는 사천왕상이 2위씩 배치되어 있다. 뒷줄에는 석가여래의 두광 좌우로 상반신만 표현된 16위의 나한상이 표현되었다.
가섭과 아난, 좌우 사천왕상은 모두 해면에서 뻗어 오르는 줄기 위로 만개한 연화좌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영상회상도에 해수면이 표현된 사례는 이 작품이 유일한 것으로 주목된다. 그리고 둥근 신광에 표현된 꽃잎과 어우러진 기하학적 무늬는 대구경북에서 부산경남으로 확산된 문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본존, 보살, 천부 권속들이 위로 솟아오르는 연화좌에 앉거나, 답할좌(踏割座)로 채용한 사례는 대개 19세기 경기도, 영남일대에 많이 보이나,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본 작품은 그 선두 격에 속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조선후기 것으로 화격(畵格)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제작 연대가 뚜렷하고 도상과 화풍에 특색이 있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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