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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야기〈236〉
작 성 자 등록일 2016-04-26 조   회 267

무애 양주동 선생의 수필집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백주회' 이야기가 나온다. 그 책엔 동경 유학 시절 노산 이은상 선생 등과의 교우관계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거니와 가난한 유학생들이 어쩌다 돈이 생기면 하루 저녁에 술집 100곳을 순회했다는 회고담이 나온다.

 

비루(맥주의 당대 발음), 위스키, 청주를 가리지 않고 한 집에서 딱 한잔씩 마시고 다른 술집으로.

 

그래도 100잔이니 대취할 밖에. 남의 땅에서 공부하던 식민지 출신 유학생들의 슬픈(?) 호기가 이른바 ' 데카당스' 취미로 나타난 것일 터이다.

 

술이라면 수주 변영로 선생도 빠뜨릴 수 없다. '명정(酩酊)사십년'이란 수필집에는 그의 장구한 술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다섯 살 때 어쩌다 술맛을 보게 된 이후 도주(盜酒)에 맛 들였고, 고보시절에는 날마다 술 취한 채 등교해 선생과 싸움을 일삼았다니 알 만하다.

 

수주가 "술 마신 뒤 찬바람 부는 거리에 나서기 싫다"고 했다는 이야기 역시 유명하다. 왜냐. 없는 돈에 겨우 취했는데 찬바람을 맞고 술을 깨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것.

 

음주를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는 시인 조지훈이었다. 술을 바둑에 비겨 9개의 급과 9개의 단으로 나눈 그의 주도론 또한 유명하다. 9급은 불주(不酒)라 해서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이요, 1급은 학주(學酒)라 해서 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면 초단은 술의 취미를 맛보는 애주(愛酒). 7단은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낙주(樂酒). 입신의 경지인 9단은 폐주(廢酒), 또는 열반주의 경지이니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일컫는다.

 

갑자기 술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최근 연이은 술자리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일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목이 뜨끔뜨끔하고 온몸이 쑤시는 게 감기 몸살이었다. 잇몸까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웬일인가 했더니, 바로 전 이틀 동안 연이어 술을 마신 데다 그날은 개표방송을 보느라 잠을 설쳤던 탓이었다.

 

마누라의 핀잔이 쏟아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당신, 아직도 청춘인줄 알아요? 며칠 동안 부어라 마셔라,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는 거 보고 이 꼴 될 줄 알았다니까.“

 

하긴, 지방간이네, ()수치가 높네 하며 의사로부터 절주 권고를 받은 지도 오래이니 할 말이 없긴 하다. 술을 절제해야 할 줄 알면서도 좋은 벗들과 어울려 마시다 보면 그만 한계치를 넘기 일쑤이니 내 의지 박약을 탓해야 할까.

 

술은 마물이어서 지나치면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인격의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불상사를 자초할 수도 있다. 아니, 열반주가 되지 말란 법도 없을 터이다.

 

안 마시자니 허전하고, 마시자니 다음날 후회하게 되고. 그러니 술은 영원한 애물단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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