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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밤 벗들을 만나다〈248〉
작 성 자 문화공보과 등록일 2017-07-28 조   회 273

지난 주말 오후 봄빛 가득한 교외의 바닷가로 갔다. 오랜만에 고교 동창들과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 바닷가 근처에서 개인 병원을 열고 있는 동창이 친구들을 초청해 만든 모임이었다. 몇 명이나 올까 하고 갔는데, 글쎄 100여 명 가까운 동창들이 모였기에 은근히 놀랐다. 서울에 사는 동창들은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왔다고 한다.


 부산에 사는 친구들이야 가끔 모임을 가지니까 낯이 익지만 서울이나 타지에 사는 친구들은 오랜만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했다. 심지어 졸업 후 처음 만나는 동창들도 없지 않았다. 이름도 가물가물해서 주최측(?)이 만들어준 명찰을 목에 걸 정도였으니. 그래도 고교 동창만큼 허물없는 사이가 어디 흔하겠나. 다들 아무개야, 하며 다정하게 안부를 나눴다.


 횟집 하나를 통째로 빌려 멸치회와 튀김을 안주로 떠들썩하게 술을 마셨다. 나중엔 멸치찌개까지 나왔으니 그야말로 멸치 잔치였던 셈. 향긋한 미나리에 무쳐진 멸치의 부드러운 속살이 혀에 감기면서 봄이 왔음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회식 중에 몇 사람이 일어서서 즉석 스피치를 했다. 사회를 보는 친구가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바람에 나도 일어서서 몇 마디 했다.


나를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하나 같이 왜 그렇게 늙었느냐고들 해서 좀 머쓱하긴 했다. 저희들도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주제에……. 하기야 나만 해도 요즘 들어 주름살도 깊어지고, 뒷머리도 빠지고 있으니 세월이 속절없긴 하다.


 다시 시내로 나와 노래방까지 갔다. 수십 명이 대형 노래방 몇 개를 점거(?)해 노래 부르고 춤도 추었다. 다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얼굴이었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이 있었던 나는 밤 10시쯤 몰래 자리를 떴지만 타지에서 와서 따로 잡은 숙소에서 묵은 동창들은 광란(?)의 밤을 보냈다던가. 그러고서도 그 다음날엔 복국으로 속풀이를 하고 이기대 바닷가 길을 트래킹까지 했다니 체력들도 대단하다 싶었다.


어쨌거나, 노래방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룸미러로 나를 흘끗 보던 기사가 한마디 불쑥 던졌다. "오늘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기분 좋게 취하셨네요."


 오랜만에 동창들과 만나 얻은 활력이 내 얼굴에 배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대답 없이 빙긋 웃고 말았지만 가슴 속에 봄 향기가 가득 찬 느낌이었다. 모임을 마련한 친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여 명의 친구를 불러 모아 밥과 술을 대접하고 숙소까지 챙기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벗에 대한 정과 성의가 없다면 선뜻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문득 살아간다는 일이 아득하게 느껴져서 나는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춘기 때 같은 교정에서 만나 헤어져서는 40년을 제각기 분주히 살아가다 다시 만난 친구들의 주름진 얼굴이 차창 밖으로 흘러갔다. 아, 그렇게 또 봄이 오고 다시 봄이 가고 있었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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