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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에서〈246〉
작 성 자 문화공보과 등록일 2017-07-28 조   회 269

지난 2월초,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 홋카이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을 졸업하는 아이들에겐 졸업선물이라고 짐짓 생색을 냈지만 기실은 내가 더 들떴을 게다. 처음엔 아이들도 아버지를 위해서 따라가 준다는 듯 시큰둥했지만 막상 집을 나서니 좋아들 했다.


배낭여행에 걸맞게 컴퓨터에 붙어 앉아 내 스스로 초저가 예산으로 여행 계획을 짰다. 한 달 반쯤 전 미리 서두른 덕에 부산서 후쿠오카로 가는 국내 저가항공사와 후쿠오카에서 삿포로로 가는 일본 저가항공사의 항공권을, 값이 싼 중에서도 가장 싼 값에 예약할 수 있었다.


호텔도 싼 것을 서둘러 예약했다. 인터넷을 뒤져 날짜별로 구경 갈 곳을 미리 챙기고 맛집 정보도 찾았다. 홋카이도에서도 그때그때 따로 표를 사서 교통편을 조달했다. 덕분에 기차, 시외버스, 시내버스, 지하철 등등 모든 대중교통을 섭렵했다. 좀 고달프긴 했지만 패키지여행의 절반도 안 되는 경비로 모든 것을 해결했으니 발품 판 보람은 있었던 셈이다.


아이들과 배낭을 짊어지고 삿포로는 물론 오타루, 아사히카와, 노보리베츠 같은 도시를 도는 강행군을 했다. 며칠 동안 눈만큼은 질리도록 보았다. 쌓인 눈이 녹지 않았는데 그 위에 다시 눈이 퍼부으니 1m가 넘는 눈이 단층을 이루며 쌓여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며 본 끝없는 설경, 북해의 검푸른 파도 위로 눈보라가 쏟아지던 황량하면서도 장쾌한 풍경이 지금도 망막에 잔상처럼 남아있다. 아들과 온천욕을 같이 하면서, 이 녀석이 취업을 하고 장가를 들면 부자가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함께 목욕할 일이 더는 있을까 싶어 잠깐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그 중에서도 비에이라는 마을의 설경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점심을 먹던 중에 딸아이가 갑자기 가보고 싶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기차표를 끊어 나선 길이었다. 시골 소읍이었는데 기차역을 나서자마자 그림엽서에서나 보았음직한 풍경이 펼쳐졌다. 첨탑이 우뚝한 공회당, 역사 앞의 시계탑, 그리고 눈에 덮여 조는 듯한 인적 없는 거리….


유령 도시에 뛰어든 침입자 같은 기분이 돼 눈을 밟으며 텅 빈 거리를 돌아다녔다. 글쎄, 유아기로 되돌아가 동화의 세계를 다시 맛보았다고나 할까. 홋카이도 대학의 카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캠퍼스를 창밖으로 하염없이 바라본 것도 나쁘지 않았다.


쓰다 보니 놀러 다닌 자랑이 돼 버렸지만, 여행이란 분주한 삶에서 잃어버린 내면의 앨범을 다시 들쳐보는 기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야 하는 단체여행보다 자유여행에 나선 것도 결과적으론 잘한 선택이었다. 여행 중 아이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 여행의 덤이었다.


홋카이도 대학의 카페에서 쏟아지는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봄을 떠올렸다.  지난 겨울은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그리고 그 시공간을 사는 국민 모두에게도 힘겹고 잔인한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다가오는 봄엔 혼란의 시간이 끝나고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짜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마련되기를 기원했던 것도 같다. 이제 봄이 오고 있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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