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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차를 마시는 가을〈266〉
작 성 자 문화관광과 등록일 2018-10-29 조   회 167

올해는 별일 없이 넘어가나 했더니 10월에 태풍 콩레이가 부산에 몰아쳤다. 그나마 치명적인 피해는 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피해를 당하신 분들로선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혀를 차시겠지만, 갓 피어나던 집 마당의 은목서 꽃잎이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것은 좀 아쉬웠다.


10월에 태풍이 오는 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드문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미국 플로리다에선 허리케인이 몰아쳐 30여 명이 사망하고 50명 가까이 실종된 데다 2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났다니 콩레이는 거기 대면 온순했던 셈이다.  어쨌거나 살아갈수록 기상 이변이 심해져 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다들 아시는 대로 지난여름은 얼마나 더웠던가. 게다가 올 겨울 추위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장기예보도 나온 터다.


그런데, 내게는 태풍이 준 뜻밖의 선물(?)도 있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던 옆집의 모과나무가 바람을 맞는 바람에 예닐곱 개의 모과가 우리 집 마당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던 거다. 채 익지 않아 시퍼렇긴 했지만 그래도 알이 꽤 굵었다. 주워서 옆집에 돌려주려 했더니 "익지도 않은 채 떨어진 건데 가지려면 가지시라"고 하는 것이었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모과를 썰어내느라 용을 쓰는 아내에게 익지도 않은 걸  뭐 하러 그렇게 힘들여 썰고 있느냐고 핀잔을 줬다. 아내는 "아깝잖아요"하고 한 마디 하더니 잘게 채썰어낸 모과를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고 설탕을 붓는 것이었다. 나는 핀잔 준 것도 잊어버리고는 "거, 이왕이면 모과주를 담지 그래"하고 주책없이 참견을 했다. 아내는 나를 슬쩍 흘겨보더니 집 근처의 마트에서 소주를 사와서 또 다른 유리병에다 술을 담그는 것이었다.


며칠 후 책상 맡에 앉아 청탁 받은 원고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유리잔에 뭔가를 담아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바로 그 모과로 만든 차였다. 시음용이라는 거다. 채 익히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향긋한 향기가 물씬했다.


한 모금 마셔보니 특유의 새콤한 맛이 입안을 감도는 것이었다. 태풍 덕분에, 아니 이웃 덕분에 이 가을과 겨울엔 가끔 모과차를 마시는 행운을 누리게 된 셈이다. 게다가 향긋한 모과주를 맛 볼 생각을 하니 벌써 목젖이 짜르르해진다.
모과차를 마시다 문득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란 말이 떠올랐다. 잘 가꿔지고, 잘 만들어진 완성품이 가득 찬 세상이지만, 익기도 전에 떨어진 모과가 안겨준 작은 지락(至樂)도 있는 것이다.


어디 과일만 그렇겠는가. 사람도 매한가지인 것을.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엔 어수룩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오래 사귀어 볼수록 덜 여물고 덜 영악한 사람이 인간미를 풍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업수이 볼 게 아니라, 잘 도닥이면 얼마든 한몫을 하는 것을. 모과차 한잔의 향기에 작은 행복을 느끼는 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강 동 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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