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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③ 동래부사 이안눌 詩 '동래 4월 15일'
작 성 자 문화관광과 등록일 2019-03-25 조   회 235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③ 동래부사 이안눌 詩 '동래 4월 15일'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③ 동래부사 이안눌 詩 '동래 4월 15일'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③ 동래부사 이안눌 詩 '동래 4월 15일'


임진왜란 문학의 최고봉 "그날 생생"

오늘 찾은 곳은 유물전시관. 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에 있는 동래읍성 임진왜란 역사관이다. 동래교차로 지하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2005년 지하철 공사 도중 발굴한 유물을 전시한다. 유물을 둘러보는 발걸음은 무겁다. 마음은 더 무겁다. 유물 한 점 한 점 비분을 자아낸다. 저럴 수가! 저럴 수가! 비분을 삭이느라 몇 걸음 걷다가 멈추고 몇 걸음 걷다가 멈춘다.

유물은 하나같이 귀기가 감돈다. 모형이긴 하지만 인골이며 실물 녹슨 무기는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인골은 대부분 두개골에 치명상을 입은 상태. 예리한 칼날로 잘렸거나 창에 찔렸거나 둔기에 맞아 함몰됐다. 3년에 걸쳐 발굴한 인골 모두는 1592년 임진왜란 희생자였다. 그해 4월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동래읍성 군인과 양민이 400년 세월을 수안역 지하에 묻혀 있었다.
역사관 여기는 동래읍성 성벽과 해자가 있던 자리다. 해자(垓子)는 침입에 대비해 성벽을 따라 판 도랑이다. 성벽과 해자를 가운데 두고 음력 4월 15일 벌어진 동래읍성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아군은 전투 경험이라곤 백지였고 게다가 양민이 주축이었다. 반면 왜군은 100년 내전을 치른 정예군이었고 신식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대군이었다.
전투는 한나절 만에 끝났다. 여자를 비롯하여 아이와 개, 고양이 할 것 없이 피를 흘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살해되었고 부친의 유해를 찾으려 동래성에 가니 시신이 가득 쌓여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음력 4월은 여름. 왜군은 시신을 그대로 두면 염병이 창궐할까 두려웠다. 가득 쌓인 시신을 해자에 내던지고 묻었다.
지하철 공사로 발굴된 유골은 100여 구. 임진왜란 당시 동래읍성 둘레 1.4km에서 겨우 50m 발굴해 그 정도니 실제로는 옛 기록대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금은 서기 2천 년. 해자 자리에 들어선 건물을 헐지 못해서, 온종일 차가 밀리는 도로를 걷지 못해서 동래는 곳곳에 400년 원혼이 묻혀 있다. 동래에선 뒤꿈치 들고 조심조심 다녀야 하는 이유다.

4월 15일 새벽 집집이 곡을 하니/천지가 온통 쓸쓸하게 변하고 스산한 바람이 숲을 뒤흔든다./놀라고 기괴하여 늙은 아전에게 물었지./"통곡 소리 어찌 이리 참혹한가?"/"임진년 왜구가 이르러 이날 성이 함몰되었지요./다만 이때 송 사또만 있어서 성벽을 굳게 닫고 충절을 지키니/경내 사람들이 성으로 몰려들어 동시에 피바다를 이루었지요./쌓인 주검에 몸을 던졌으니 천 명 중에 한두 명만 살아났지요./이 때문에 이날에는 술잔을 바치고 죽은 자를 곡한다오./아비가 자식 위해 곡하고 자식이 아비를 위해 곡하고/할아비가 손자 위해 곡하고 손자가 할아비를 위해 곡하고/또 어미는 딸 때문에 곡하고 또 딸은 어미 때문에 곡하고/또 아낙네는 남편 때문에 곡하고 또 남편은 아내 때문에 곡하고/형제와 자매까지 산 자는 모두 곡을 한다오."/찡그린 채 차마 다 듣지 못하는데 눈물이 문득 뺨에 가득하네./아전이 앞에 나와 다시 말하기를/"곡할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슬프지 않지요./얼마나 많은데요, 퍼런 칼날 아래/온 가족이 다 죽어 곡할 사람조차 없는 집이." 
 - 이안눌 시 동래 4월 15일   

이 시는 동래읍성 전투가 벌어진 날의 참상을 다룬다. 동래맹하유감으로도 불린다.
맹하(孟夏)는 초여름이란 뜻. 봄은 음력 1월, 2월, 3월이고 여름은 4월, 5월, 6월이다. 이안눌은 임란 끝나고 10년 후인 1608년 2월 11일부터 1609년 7월 10일까지 동래부사로 있었다. 그때 이 시를 썼다. 7년 왜란은 끝났어도 왜란이 남긴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던 시기였다. 그래서 현장을 직접 보듯 시가 살아있다.
시인은 감정을 절제하고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다. 감정을 절제해도 감정이 북받치는 까닭이다. 한문 원문은 동래문화원 발간 국역 <동래부지> 제영잡저 95쪽에 실렸다.
동래 4월 15일은 기념비적인 시다. 임진왜란 기록물은 차고 넘쳐도 독자의 내면을 이토록 일렁이는 문학작품은 드물다. 임란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하고 싶다. 동의한다면, 동래는 임란 문학 최고봉의 산실이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이안눌은 4천 편 넘는 시를 쓴 대문호. 자신의 호를 딴 문집 <동악집> 26권을 남겼고 범어사 청룡암 석벽에도 시를 남겼다. 온천장 금강공원에 송덕비가 있다.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답게 거기 송덕비 20기 가운데 가장 낮고 가장 가늘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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