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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의 문학과 동래이야기 ⑨ 최해군 지하철 시 '그대 간 지 한 달'
작 성 자 문화관광과 등록일 2019-10-02 조   회 42

동길산 시인의 문학과 동래이야기   ⑨ 최해군 지하철 시 '그대 간 지 한 달'
동길산 시인의 문학과 동래이야기   ⑨ 최해군 지하철 시 '그대 간 지 한 달'


시에 빠져 지하철을 그냥 보내다

그대 간 지 한 달. 도시철도 1호선 명륜역 승강장에 걸린 시화 제목이다. 제목만 봐도 애틋한데 누가 썼는지 알면 더 애틋해진다. 지은이는 소설가 최해군(1926~2015) 선생이다. 살아생전 부산의 큰어른으로 모시던 분이었다. 부부애가 극진했기에 한 구절 한 구절 입술을 깨물게 한다. 그동안 꾸려가던 꿈도/다듬어 가던 살림도/내 몰라라 그리 쉬이 버릴 수 있었던가. 68년 함께한 부인을 그리는 사부곡(思婦曲)을 읽느라 지하철이 들어와도 그냥 보낸다.


사부곡은 최악의 상황에서 써졌다. 25년 병석에 있던 부인이 타계하자 선생은 시름시름 아팠다. 지극정성으로 부인 수발을 도맡은 선생이었기에 상심이 컸으리라. 상심은 병으로 이어져 별세하기 직전 양산 요양병원에서 수술까지 받았다. 그 무렵 기력을 다해 쓴 시가 그대 간 지 한 달이었다. 일기와 단상을 모아 부산 중견 출판사 해성에서 펴내기로 한 책에 추가로 보낸 육필 원고가 이 시였다.

그대 떠난 지 한 달/이 방 저 방을 비워두고/영영 돌아오지 않을 건가/비워진 방에는/찬바람만 채워지고 있네//그동안 꾸려가던 꿈도/다듬어 가던 살림도/내 몰라라 그리 쉬이/버릴 수 있었던가//기쁨도 슬픔도/즐거움도 노여움도/한 몸 되어 함께한 68년/손 놓은 빈자리가/어이 이리 허전한가//어울리는 정과 정은/끝 간 데를 모를 줄 알았는데/그대와 이내 사이 갈라놓은 이 자리/사람살이가 이리도 무심한가//그대를 눈물로 보낸 피붙이들도/제 삶을 찾아 자리를 비웠는데/이내만 지켜야 하는 이 허망//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네/이 비로 그대 무덤의 잔디는/뿌리를 내릴 것이고/새싹도 돋아날 것이네//이내도 쉬이 이 자리 떠야 할 것이고/그대 곁으로 갈 것이네/기다려다오 그대와 이내의 그날들/그날들을 그리며 기다려다오.
 - 최해군 시 그대 간 지 한 달 전문

평생의 반려자는 김기분(1928~2014). 2014년 12월 말 세상을 떴으니 사부곡은 2015년 1월이나 2월에 썼지 싶다. 그리고 그해 8월 3일 영면했다. 부산 문인장으로 장례식을 치르던 날 묘소에서 후배작가가 사부곡을 낭송해 숙연했다. 같은 해 10월 요산문학축전 행사의 하나로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최해군 소설가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애초 선생을 초청해 대담 형식으로 열려던 행사가 선생이 타계하면서 추모 콘서트가 됐다.
선생은 독자적 세계를 펴 보인 소설가였다. 요산 김정한과 향파 이주홍을 잇는 부산 2세대 현대문학 대표작가였다. 1962년 부산일보 장편소설과 동아일보 희곡으로 등단한 이래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숱한 역작을 내놓았다. 1990년 초부터 살던 거제3동 현대아파트 103동 1106호 거실 벽면엔 책 표지 액자가 수두룩했다. 모두 선생의 저서였다. 글동네 막내가 되어 선생 댁에 놀러 가선 나는 언제쯤 저렇게 내공을 쌓나 부러웠다.
"부산에 관해선 최해군 선생에게 물어라." 선생은 소설가에 머물지 않았다. 1세대 향토사학자로서 지역을 발굴하고 알린 공로는 소설 못지않았다. 세 권짜리 〈부산포〉(1985~1987)를 비롯해 〈부산의 맥〉(1990), 〈부산항〉(1992), 〈부산 7000년, 그 영욕의 발자취〉(1997), 〈부산사 연구〉(2000), 〈부
산에 살며, 부산을 알며〉(2003),
〈부산이야기 50마당〉(2007) 등 선생이 저술한 숱한 향토사와 향토의 이야기는 부산의 뿌리와 맥, 나아갈 바를 가늠케 하는 역작이었다. 전설로만 알던 금정산 금샘 발굴도 선생의 공로가 컸다. 부산 관련 궁금증은 선생에게! 오랫동안 나돈 부산의 불문율이었다.    
선생은 평생 교육자였다. 동래고를 비롯해 부산과 양산에서 40년 교직에 몸담았다. 부산 향토사에 매료된 때도 동래고 교사 시절이었다. 교장이 홍금술, 교감이 문인갑이던 1960년대부터 향토사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 곳곳을 찾아서 기록했다. 그것의 집대성이 아파트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저작들이다.
선생은 후덕했다. 그리고 멋쟁이 베레모 휴머니스트였다. 풍채만큼이나 마음이 넓어 후배작가가 모여들었고 제자는 서로 모시려 했으며 선생이 회장이나 고문을 맡았던 시민단체에선 수시로 자리를 만들었다. 생전 마음이 넓었던 만큼 선생이 남긴 빈자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 시 한 편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들어온 지하철을 그냥 보내고 만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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