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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21 이정제 '농주산 언덕의 푸른 대숲'
작 성 자 문화관광과 등록일 2020-09-25 조   회 53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21 이정제 '농주산 언덕의 푸른 대숲'


천 줄기 푸른 옥이 여의주와 뒤섞이다  

전 호조판서 이정제가 졸(卒)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영조 13년(1737) 4월 5일 기사는 대신을 지냈던 이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한다. 당사자는 이정제(李廷濟, 1670∼1737). 왕이 주역으로 나오는 왕조실록에 사망 소식이 실릴 정도로 이정제는 중신이었다. 주변에 적을 안 만들고 자기 관리를 잘해 숙종과 경종, 영조 3대에 걸쳐 관직을 맡았다. 술과 풍류를 즐기는 놀 줄 아는 선비이기도 했다. 죽호(竹湖)라는 호가 그냥 지어진 게 아니었다. 

사망 두 달 후에는 부인이 왕조실록에 올랐다. 부인 정 씨는 남편이 죽은 뒤 거적을 깔고 자며 벽을 향해 앉아 식음을 끊어 마침내 같은 무덤에 들어가는 소원을 이루었다는 기사가 같은 해 6월 14일 실렸다. 나라에선 그 마음을 기려 정표(旌表)했다. 정표는 어진 행실을 세상에 드러내어 널리 알리는 것. 충신·효자·열녀를 기려서 세운 정문(旌門)을 정려(旌閭)라 했다.
이정제가 부산에 온 것은 1709년 10월. 일본 사신을 접대하는 접위관(接慰官) 신분이었다. 한 해 전에는 전라도 암행어사로 파견돼 운봉·낙안·장수·담양 등지에서 출두했다. 접위관 이정제는 부산에 있으면서 시 8편으로 이뤄진 봉래팔영을 남겼다. 영도 아침 해, 황령산 저녁 봉화, 금정산 성벽, 부산 앞바다 거센 파도, 천년 고찰 범어사 등이다. 농주산 언덕의 푸른 대숲도 그 하나다.

천 줄기 푸른 옥이 여의주와 뒤섞여
눈 속에 우뚝하게 누대를 비추네
밤이 되어 찬바람 소슬하게 불면
꿈속에서 때때로 생황소리 듣겠네
 - 이정제 시 농부죽취(弄阜竹翠)

농주산은 동래읍성 남문 바로 앞에 있던 야산. 현재 동래경찰서 자리다. 경찰서 소공원에 세워둔 농주산 터 표지석이 그때 그 시절을 증명한다. 농주(弄珠)는 용이 여의주를 품은 모양. 산은 나지막했지만 이름은 컸다. 동래 고지도엔 거의 100% 등장한다. 옛 그림 역시 그렇다. 동래 화가 변박이 1760년 그린 동래부순절도를 비롯해 동래부사가 일본 사신을 만나러 가는 그림들에 농주산이 꼭 보인다.
이정제가 농주산에서 본 것은 대나무. 그래서 제목에도 푸른 대나무, 죽취(竹翠)가 들어간다. 변박 동래부순절도가 국가지정 보물로 지정되고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할 정도로 가치가 높은 건 동래읍성 전투 과정이 동영상 보듯 생생하고 세세해서다. 보기만 해도 주먹에 힘이 불끈불끈 들어간다.
농주산도 그림의 가치를 높인다. 어느 지도에서도, 어느 그림에서도 보기 어려운 농주산 세밀한 모습을 담았다. 살이 떨릴 정도다. 일반인은 잘 몰라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농주산이 지닌 역사적 의미는 자못 크다. 일제강점기 이전만 해도 매년 4월 15일이면 부산 사람은 여기 와서 제사를 지내며 대성통곡했다. 농주산은 조선의 곡소리였고 조선의 성지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가장 먼저 이 고장에서 순사(殉死)하신 분들을 모신 전망제단(戰亡祭壇)이 있었던 곳. 동래경찰서 표지석은 농주산을 제단이 있던 성지였다고 밝힌다. 1592년 4월 왜군에 맞서 목숨 바친 이들을 모신 제단이 여기 있었다. 농주산 나지막한 언덕 북, 동, 서 세 군데 제단을 쌓고 매년 4월 15일 제사를 지냈다. 왜에겐 눈엣가시 같은 제단이었다. 일제강점기 도로를 낸다는 명분으로 산은 헐리고 만다.
동래부순절도 농주산을 본다. 국보급 낙락장송이 농주산 이쪽저쪽 보이고 장송 안쪽, 그러니까 농주산 가운데는 천 줄기 푸른 옥이라던 대밭이다. 조선 중신 이정제가 봤던 농주산에 가장 가까운 그림이 변박 순절도 농주산이다. 이정제 시에 나오는 생황은 피리 비슷한 악기. 구구절절 천 줄기, 구슬픈 소리를 낸다. 송상현 동래부사가 남긴 절명시(絶命詩) 외로운 성에는 달무리 지고 구절만큼이나 구슬프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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