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토론마당 게시판 리스트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⑪ 김규태 시인
작 성 자 문화관광과 등록일 2019-11-27 조   회 14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⑪ 김규태 시인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⑪ 김규태 시인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⑪ 김규태 시인


동래고·국제신문·부산문화 거인    

김규태(1934∼2016) 시인은 동래고 출신이다. 29회다. 서울대 불문학과를 나왔으며 평생 시인으로, 그리고 언론인으로 지냈다. 1958년 신문에 몸담아 국제신문에서 문화부장과 사회부장, 정경부장 등을 거쳤다. 신군부가 언론사를 통폐합한 1980년대 초에는 부산일보로 옮겨 논설위원과 논설주간을 역임했다. 1990년 국제신문이 복간하자 복귀해 논설위원과 논설주간을 거쳐 정년퇴임했다.

등단은 일찍 했다. 약관을 갓 넘긴 1957년 당대 쟁쟁한 문학지였던 <문학예술>로 등단했다. 문청이라면 다들 선망하던 <사상계>로도 1959년 등단했다. 강은교 시인은 1968년 <사상계>로 등단, 김규태 시인 한참 후배였다. 대학생이던 1956년 문리대문학회를 만들어 이어령이니 유종호니 성찬경, 송욱, 박이문 등등 쟁쟁한 학생 문사와 시를 논하고 문학을 논했다. 한마디로 김규태 시인은 떡잎부터 걸출했다. 
김규태 시인은 살아생전 움직이는 부산 문화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현직 언론인으로 지냈기에 그럴 만도 했다. 본인이 시인이었고 신문사 문화부에 오래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 경력은 정년 이후 진가를 보였다. 국제신문 <김규태 칼럼>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연재로 이어져 부산 문화의 속살과 뼈대를 속속들이 내보였다. 칼럼이 실리고 인간기행이 실리는 요일은 가판 부수가 배로 늘었다.
국제신문 인간기행 첫 회는 2006년 2월 13일 실렸다. 청마 유치환 시인이 주인공이었다. 청마가 이승에서 가진 마지막 술자리에 동석하면서 겪은 비화였다. 생생한 육담으로 비화를 술회한 유치환 기행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였다. 증언이 이어졌으며 청마를 가슴에 묻은 숱한 독자의 마음을 건드렸다. 무엇보다 역시 김규태!였다. 몸의 나이로 인해 퇴임은 했을망정 정신의 나이는 여전히 파릇함을 부산 문단과 한국 문단에 각인시켰다.
"김형, 청만데, 오늘 나 좀 봅시다." 국제신문 인간기행 첫 회는 이렇게 시작한다. 국제신문 문화부 기자이자 문단과 고교 후배인 김규태에게 청마는 그날 저녁 만남을 청한다. 청마가 부산예총 지부장에 당선된 것과 관련해 의논할 일이 있어서였다. 광복동 책방골목 모란다방에서 여럿이 합석해 의논했고 소주나 한잔 하러 자리를 옮긴다. 부산데파트 들어서기 전에 있던 짬보라는 10평 남짓한 식당에서 1차를 했고 이어 모란다방 앞 스탠드 선술집에서 2차를 한다. 술이 거나해진 청마가 먼저 일어나 소설가 윤정규의 배웅을 받으며 합승차로 귀가한다. 다음 날 신문사에 출근한 김규태는 청마 부음 소식을 듣는다. 합승차에서 내려 수정동 중앙로를 건너던 중 버스 사고를 당했다. 1967년 2월 13일 밤이었다.
"외가길 감성이 다감한 시인이었지요." 김규태 시인이 국제신문 문화부 기자로 있을 때 문화부장이 최계락 시인이었다. 그 인연으로 2016년 타계 전까지 최계락문학상재단 위원장을 맡았다. 김규태 위원장과 함께 최계락 시인 진주 외갓집을 2007년 찾았다. 당시 국제신문에 연재하던 동길산 시인이 쓰는 길 위의 풍경에 도움말도 줄 겸 길 안내도 할 겸 흔쾌히 동행해 주었다. 김규태 시인은 최계락 시인을 외가길 감성의 시인으로 평하며 동행 내내 눈매가 촉촉했다.

낯선 것은 오히려 멀리에 있지 않다/그토록 오래 들여다본/그대 눈동자의 속 깊이가/아득히 멀어 보인다/때로는 내가 던지는 말의 억양이/낯설어 그 말의 속뜻을 헤아릴 길이 없다/잠들지 못한 많은 날들 가운데/이 밤이 더 낯설어 보인다/오늘도 어제의 시간처럼/돌아오지 못할 연줄을 띄우는 것처럼/손이 설다/가까이에 있는 것만이/몸에 배어 익는 것이 아니었다/편안한 것에 대한 하나의 미신이었다 
- 김규태 시 낯선 것은 멀리에 있지 않다

김규태 시인은 평소 시를 아껴 썼다. 시를 대하는 마음이 그만큼 각별했다. 본인 말대로 시집을 내는 주기가 평균 10여 년일 정도로 과작이었다. 첫 시집 <철제 장난감>을 1969년 낸 이래 2005년 <흙의 살들>까지 단 네 권의 시집을 내었다. 그러기에 시 한 편 한 편 맑고 높았다. 우울과 상실감을 노래한 초기 시에서 삶의 원형에 이르는 꿈을 담은 후기 시에 이르기까지 김규태 시 세계는 정결하고 고결했다.
김규태 시에 관통하는 가치는 가까운 것의 소중함이었다. 시 낯선 것은 멀리에 있지 않다는 가까운 것이 갖는 소중함의 반어법적 표현. 그토록 오래 들여다본/그대 눈동자의 속 깊이가/아득히 멀어 보였던 시인의 우울과 상실감은 역으로 삶의 원형에 대한 갈망이었다. 최계락 시인 외갓집을 찾았을 때 훔쳐보았던 촉촉한 눈매가 새삼 생각난다.  
 dgs1116@hanmail.net

첨부파일
목록
본 콘텐츠는 저작권 또는 초상권 위배 소지가 있어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화면 하단의 개별 담당자에게 문의 바랍니다.



담당부서 정보

  • 담당부서 총무국  문화관광과   
  • 담당자황순규
  • 문의전화051-550-4074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