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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⑧  손창섭 단편소설 '비 오는 날'
작 성 자 문화관광과 등록일 2019-08-27 조   회 11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⑧   손창섭 단편소설 '비 오는 날'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⑧   손창섭 단편소설 '비 오는 날'
동길산 시인이 쓰는 문학과 동래이야기 ⑧   손창섭 단편소설 '비 오는 날'


영혼의 빗줄기, 내면을 적시다

연일 내리는 비는 사람을 차분하게 한다. 살아온 날을 돌아보게 한다. 비를 대하는 마음 역시 비처럼 가늘고 낮아진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손창섭(1922∼2010)이 1953년 발표한 단편소설 비 오는 날은 말 그대로 비 오는 날 읽기 좋은 소설이다. 소설을 읽노라면 두껍고 뻣뻣하던 마음이 가늘고 낮아지며 가난하고 여렸으나 맑고 고왔던 젊은 날이 생각난다.      

동래 종점에서 전차를 내리자, 동욱이가 쪽지에 그려 준 약도를 몇 번이나 펴보며 진득진득 걷기 힘든 비탈길을 원구는 조심조심 걸어 올라갔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동욱과 원구는 전쟁 피난민이다.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동창 친구며 둘 다 미혼이다.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한 동욱은 1·4후퇴 때 여동생 동옥과 피난 나와 미군 부대를 기웃거리며 동생이 그린 초상화로 생계를 잇고 원구는 잡화를 가득 벌여 놓은 리야카를 지키고 선 행상이다. 술자리에서 동욱이 원구를 집으로 초대했고 40일이나 계속된 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 원구는 전차를 타고 동욱이 세 든 집을 찾아간다.
원구가 전차에서 내린 곳은 동래 종점. 소설에는 전차 종점이란 구절이 또 언급된다. 에 딱 한 채 있는 집에 동욱 오누이 거처다. 왜정 때 요양원으로 쓰였다는, 모로 기울어지려는 낡은 목조건물이었다.
내가 비 오는 날을 처음 읽은 건 1980년 초.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였다. 문학도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소설이고 학교 근처 이야기라서 동욱이 살던 집이 어디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실제로 소설에 나타나는 글 약도를 따라 탐방에 나선 친구도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끝내 오리무중이었다. 동래 종점 때문이었다.
동래 종점은 없는 말이었다. 동래 방면 종점은 온천장이었다. 동래는 종점이 아니라 중간역이었다. 동래역이 있던 곳은 현재 동래경찰서 맞은편 한국전력이고 온천장 종점은 온천장 부산은행이다. 작가는 왜 동래 종점이라고 했을까. 논쟁하던 문학도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동래가 맞고 종점은 착오라는 주장과 다른 하나는 온천장 종점이 맞고 동래는 착오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주장도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동래가 맞는다는 주장은 요양원이 동래에 없었고 온천장에 있었다는 증언에 막혔고 온천장이 맞는다는 주장은 원구가 헛걸음치고 되돌아간 호박 덩굴 우거진 철둑 길에 막혔다. 온천장엔 기차가 다니지 않았기에 철둑길도 없었다.
범위를 넓혀 낙민동 한양아파트 뒤편 언덕배기 동산마을도 대상에 넣었다. 동래 기차역 기찻길이 가까웠고 동래 전차 역에서 마을까지 철길을 따라 걸었다는 동네 사람 증언도 있었다. 동산마을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동래) 종점에서 내려 개천을 끼고 올라가다가 개천 건너 왼쪽 산비탈이란 구절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욱 집은 허구일지도 모른다. 소설적 상상력 내지는 이질적 장소의 결합에 의한 산물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1980년대 문학도가 그토록 열성을 기울인 건 소설이 가진 매력이 그만큼 컸던 까닭이다. 원구는 이후 여러 차례 더 동욱을 찾아간다. 실상은 살결이 유달리 희고 눈썹이 남보다 검은 여인 동옥을 보기 위해서였다. 왼쪽 다리가 어린애의 손목같이 가늘고 짧은 장애를 지닌 동옥에게 연정을 품기도 했으리라.
소설은 우울하게 끝난다. 마지막 찾아갔을 때 집주인은 바뀌었고 동욱 남매 행방은 불명이다. 동옥이 원구 오면 전해 달라고 편지를 남겼지만 주인집 아이들 실수로 찢어 없어진 상태. "병신이긴 하지만 얼굴이 고만큼 밴밴하고서야, 어디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집주인 말을 원구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는 자책의 소리로 들으며 원구는 호박 덩굴 우거진 밭두둑 길을 앓고 난 사람 모양 허정거리는 다리로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소설을 다시 읽었다. 처음보다야 덜했지만 마음의 일렁임은 여전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집을 찾아 나섰던 글 친구들도 생각났다. 이 세상 가장 가늘고 가장 낮은 사랑을 소망했던 1980년대 초반 청춘들. 그 시대를 건너온 우리 모두에게 비 오는 날은 암울한 현실에서 하루하루 메말라 가는 내면을 촉촉하게 적시는 영혼의 빗줄기였다. 가만 눈 감으면 지금도 그 빗소리 들린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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