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들기

총게시물 : 163,   페이지 : 1/17

no images
조회수 0 ㅣ 2021.02.25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어느 날 불현 듯 흰 머리카락들이 솟아나고, 볼살이 처지며, 없던 잔주름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하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한 움큼씩 머리카락이 빠지는 걸 발견할 때, 우리는 늙어감을 비통하고 서글픈 심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다.
노인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는지. 사회에서 퇴출당해 빈둥대는 존재, 꽉 막힌 늙은이, 쭈글쭈글함? 여기에 더해 노년이 무슨 특권인 양 늙음을 휘두르는 꼰대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을 터이다.
노년의 역설이란 게 있다. 오래 사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늙는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 말이다.
그 점에서 최근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을 담은 한 일간지의  인터뷰 기사가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았다. 한 세기를 관통한 묵직한 삶의 철학이 아하라는 깨우침을 얻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그 연세에도 명철한 정신력과 기억력, 사고력과 판단력이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는 말했다. 삶이 피어나는 시기가 60세부터라고. "사과나무를 키우면 제일 소중한 시기가 언제일까요. 열매 맺을 때입니다. 그게 60세부터입니다. 나는 인생의 사회적 가치는 예순부터 온다고 늘 말합니다."
단,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있다. 배움을 멈추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이 늙어버리기 때문이란다. 그는 걱정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다"고.
배움에 대해 그는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멋진 노년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행복은 선택과 노력의 대가"라는 그의 말대로 노년의 행복은 책읽기를 실천에 옮기는, 그래서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 명쾌한 인터뷰였다.
우리가 천년의 풍상을 묵묵히 견뎌낸 고목이나 해 저무는 노을을 보고 경탄하는 것, 낙엽이 지기 직전 화려하게 폭발하는 단풍에 취하는 것은 자연이 보여주는 늙음의 그것이 아니던가. 그뿐이랴. 오크통에서 숙성된 위스키나 오래된 와인의 그 감칠 맛이란. 그에게서 풍기는 성숙된 늙음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싶다.


no images
조회수 11 ㅣ 2021.01.25

행복만들기
 봄을 기다리는 마음

〈292〉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북극한파가 매섭게 몰아치는 계절이다. 여기에 코로나는 끝없이 우리 곁을 서성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아, 그렇게 잘났다며 뻐기던 우리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현실이라니.
코로나를 생각하니 어떤 느낌이 드나. 불안하고 무서운가. 우울감도 스멀스멀 파고들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블루에 해당된다. 더 나아가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마구 치솟아 오른다. 코로나레드 단계다.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게 코로나블랙이다. 마치 블랙아웃(대규모 정전 사태)처럼 머릿속이 암흑천지가 되어 버린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희망도 없다. 좌절하고 절망한다. 우울 상태가 극에 이르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떠오른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인간적 거리두기로까지 번지면서 소외로 인한 상실감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하지만 그런 겨울을 따뜻한 시선으로 품을 수는 없을까. 희망과 사랑이 없는 세상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원리가 그렇다. 겨울은 과거를 밀어내고 앞날을 오게 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죽음이 삶을 낳는다는 창조적 파괴력이 그것이다. 어둠이 더할수록 새벽은 가까이 다가오는 법이니까. 겨울은 절망의 순간이자, 희망의 시그널이기도 하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우리 사회 역시 다가오는 봄을 위한 시련으로 품는다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테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겨우살이란 시를 접하고 가슴이 먹먹했다.삶이 고단한 그대여/ 하루하루 겨우 살아간다고 말하지 마라/ 앙상한 참나무 끝에 매달려/ 혹독한 겨울을 의연히 지새우는 겨우살이를 보라/…/ 겨우살이는 결코 겨우 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칼바람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치열한 꿈을 놓지 않는다.
한낱 풀이 그러할진대 만물의 영장인 우리가 못할 게 무엔가. 하지만 새롭고 힘든 도전을 하기보다 자동조종장치에 내맡긴 삶을 살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 스캇 펙은 삶이란 원래 힘든 길이기에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직시하라고 강조한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말했다. 상처를 주는 모든 것이 나를 가르친다. 현명한 사람이 문제를 겁내지 않고 그것이 주는 고통마저 반기는 까닭일 테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우리 모두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기다리며 고난을 헤쳐 나가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우리에게 펼쳐져 있으니까.

no images
조회수 11 ㅣ 2020.12.28
〈291〉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해마다 연말이 되면 새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게 된다. 거리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운치를 더해주는 건 물론이고.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딴판이다. 나라 꼴이 이게 뭔가. 일 년 내내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끝나는, 그야말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참혹한 현실을 온 국민이 겪고 있다. 어디 코로나 바이러스뿐이겠나. 정치는 정치답지 못하고, 경제도 경제답지 못했으며, 사회 역시 사회답지 못했다.
5년 전 올해의 사자성어가 뇌리를 스친다. 혼용무도(昏庸無道).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이다. 당시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가 이를 통제하지 못해 보여준 무능함을 빗댄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혼용무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그때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동산 정책도 실패했고, 파산한 자영업자들은 살을 에는 삭풍이 몰아치는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코로나는 연일 맹위를 더해간다. 이번 겨울은 참으로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총리가 나서 "최악의 겨울을 막기 위해 제발 집에 머물러달라"고 애걸복걸했겠나.
사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말을 잘 듣는 편이다. 혼밥과 혼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집을 나설 때면 신발을 신듯이 마스크는 필히 챙긴다. 지인을 만날 때면 으레 했던 "식사 한 번 합시다"라는 인사말도 듣기 힘들다.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이 삭막하게 변하는 것이 참으로 서글프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나. 삶은 변화무쌍해서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로 변할 수 있기에.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사물의 전개가 극에 달하면 반드시 되돌아간다. 흥(興)함이 극에 이르면 망(亡)함이 오고 성(盛)함이 극에 이르면 쇠(衰)함이 오는 것이 만물의 이치. 어찌 삶에 어둠만 있을 것이며, 계절에 추운 겨울만 있을쏘냐.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노래만 부른다고 세상이 바뀔까. 천만에. 지금이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절망과 불모의 계절임을 솔직히 받아들이자. 하지만 삶의 의지와 용기를 잃지 말자.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시 채우자. 그것이 다가오는 봄날에 새싹을 틔울 수 있는 조건이 아닐까.
no images
조회수 17 ㅣ 2020.11.25

행복만들기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어느덧 한 해도 저물어간다. 여전히 기세등등한 코로나바이러스를 논외로 하면 최근의 글로벌 이슈는 단연 미국 대통령 선거라 하겠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 연설은 백미로 꼽힐 만하다. 압축적 함의를 담은 간결하고도 힘찬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더 자유롭고, 더 공정한, 존엄과 존경이 함께하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포기하지 않는, 힘이 아닌 모범을 보임으로써 세계를 리드하는 그리고 치유된 미국을 강조했다.
그런 미국의 가치를 떠받치는 원동력이 무엇일까. 당선인은 가능성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이 가능성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시 말해 바이든이 정의를 내린 미국의 가치는 자유와 공정, 기회의 평등이었다. 그리고 최종 지향점은 소외되지 않는 가능성임을 천명한 것이다.
당선인은 왜 가능성에 굳이 소외되지 않는이란 수식어를 붙였을까. 필자는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수처작주(隨處作主)란 말이 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이다. 남의 입과 눈, 귀에 휘둘리는 가짜 나로 살지 말라는 거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 동포들에게 주인인가, 나그네인가라며 매섭게 회초리를 내리친 바 있다.
 법정 스님도 그대 자신의 길을 그대답게 갈 것이지, 그 누구의 복제품이 되려고 하는가라고 질타했었다.
얼마 전 타계한 삼성 이건희 회장은 주인의식을 이렇게 표현했다. 돈의 노예로 살지 말라. 돈의 주인으로 기쁘게 살아라.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야말로 바이든 당선인의 소외되지 않는 가능성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이렇게 다짐하자.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앞을 막는 두려움의 물살에 휩쓸리기보다 그 물결을 타는 법을 배우겠노라고.

no images
조회수 84 ㅣ 2020.10.26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와중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짙어지고 있다. 얼마 전 현역 최고령 여의사 한원주 박사가 아흔넷을 일기로 타계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씀은 이랬다.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
그는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를 몸소 가르쳐주신 진정한 장수인이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든, 은퇴 후 어떤 목적을 추구하든,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라는 말이 있다. 고(故) 한 박사는 그야말로 목적이 있는 행복한 은퇴를 했다. 그리고 세상의 환자들을 보듬는 일에 온전히 자신을 바쳤고, 지복(至福)의 삶을 누렸다. 비록 그가 평소 강조했던 백세 현역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참 의사였던 그는 환자를 대하기에 앞서 자신을 정리하는데 힘을 쏟았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살아 있어야 건강한 증거"라며 항상 입술에 립스틱을 발랐고, 백발을 가리기 위해 검은 모자를 썼다. 그리고 베푸는 삶의 길을 평생 걸었다. 40여 년 전 개인병원을 정리한 후 줄곧 무료 진료로 사회에 봉사한 그였다. "넘치는 재물보다 마음의 기쁨이 한량없으니 나로선 손해 본 게 없다"고 했던가.
묻지마 톤즈의 고 이태석 신부를 떠올릴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에게서 필자는 또 다른 교훈을 발견한다. 바로 노년의 진정한 의미다. "눕지 말고 움직여라"는 그의 건강 비결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가을이다라고 말한 까닭이 무엇일까? 모진 여름 더위를 이겨 냈기 때문에 단풍은 아름답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마음껏 노력한, 후회 없는 인생은 장엄하다. 그렇게 가을을 보낸 후의 겨울이야말로 전성기가 아닐까? 노년은 그래야 한다. 힘내고, 사랑하면서! 그렇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다스리면서 공헌하려고 노력하는 가치창조의 삶을 살았다. 필자는 그에게서 숙성의 미학을 배운다. 오래된 와인과 치즈, 그리고 된장과 간장의 풍미와 깊은 맛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을 터이다. 천년 풍상을 꿋꿋이 이겨낸 고목에서 우리는 진한 가슴의 울림을 듣는다. 사람이라고  다를 게 무에 있으랴.
영면에 드신 그에게 타고르의 글을 바친다. 잠이 들어 꿈꾸니 삶은 기쁨이었네. 잠에서 깨어보니 삶은 헌신이었네. 실천을 했더니 보라, 헌신이 곧 기쁨이었네.

no images
조회수 27 ㅣ 2020.09.25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 어둠이 내리기 직전 석양의 투명한 빛이 산의 능선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능선 위로 펼쳐진 하늘빛은 고요와 평화로 잔잔히 물들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노을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산의 윤곽도 사라지면서 달의 자태는 더욱 투명하게 드러났다. 자연은 이토록 아름답다. 법정 스님의 산거(山居)일기 한 대목이다.
명절 추석의 내음이 물씬 풍기는 가을 장면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세상은 고요나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너무나 어지럽고 위태위태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번 추석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명절이 될 듯싶다.
전국 각지에서 내려온 일가족이 모여 송편을 빚으며 정담을 나누는 정겨운 풍경은 보기 힘들 테다. 매년 겪던 귀성 전쟁도 훨씬 덜하겠지.
 어디 그뿐일까. 환절기를 맞아 독감의 계절이 눈앞에 성큼 다가왔다. 열이 나기라도 하면 독감인지, 코로나인지 구분이 안 된다. 독감 환자가 급증하면 코로나 검사를 일일이 다해야 하니까 나라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하튼 추석 연휴 기간이 최대 고비가 될 것은 확실하다. 국민들로서는 명절을 즐기기는커녕 바이러스의 위협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시련의 시기를 맞는 셈이다.
그나마 코로나19로 지친 온 국민에게 단비같은 희망의 선물을 안겨준 쾌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달 초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다이너마이트로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최정상에 우뚝 섰다. 그야말로 다이너마이트 폭발이었다.
그렇다. 고난과 역경은 쓰러지라고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사나운 회오리바람도 한나절이면 그치고, 거센 비도 종일토록 내릴 수 없다는 도덕경 구절을 음미해보라.
힘들 때일수록 경쟁보다 협조와 배려를, 효율보다 여유를, 물질적 풍요보다 마음의 풍부함을 갖추자. 그러면 시련의 추석 또한 무사히 넘길 터이다. 사족 한 마디. 이번 추석에는 방안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틀어놓고 신나게 지내보시길.

no images
조회수 33 ㅣ 2020.08.26

행복만들기


〈287〉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경축식에서 개인의 광복을 강조하며 헌법 10조 시대론을 제시했다. 정부의 정체성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 규정돼 있다면, 이제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행복을 찾아야 할 때라는 요지였다.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를 져야 한다는 거다.
참으로 멋진 표현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빛나는 보석이요, 문장은 누가 봐도 감탄할 만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평등, 공정, 정의가 현실에서 실천되고 있다고 보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테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제시한 헌법 10조 시대론도 구체적인 약속이 빠져 있기에 글쎄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 실천적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이가 있다. 세계적인 대부호이자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설 빌 게이츠, 바로 그다. 그는 이달 초 빈곤국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이 회당 3달러(약 3천500원) 미만에 공급되도록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를 위해 백신 물질 생산과 유통에 필요한 1700억 원 이상을 그와 부인 명의의 재단을 통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강력한 실천의지가 담긴 고마운 약속으로 내년부터 지구촌 중하위 92개국에 백신 1억 회분이 공급될 예정이란다. 와우!
팬데믹(대유행)이 전 세계를 강타한 상황에서 부유한 나라만 보호받는다면 어찌될까. 못사는 나라들이 쓰러지기 시작하면 결국 잘 사는 나라들도 견디지 못할 건 자명하다. 더구나 글로벌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벌써 2천만 명을 넘어섰고, 방역 선진국인 우리나라조차 2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하고 있다. 올여름 지독한 장마와 엄청난 수해, 그리고 역병으로 녹초가 된 민초들이 과연 대통령의 실천의지가 불분명한 헌법 10조 시대 행복론에 귀를 기울이기는 할까.
내가 가진 것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했다. 빌이 그렇다. 그는 사랑을 실천할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사랑할수록 사랑을 더 잘 실천할 수 있음을 깨달은 이 시대의 선각자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no images
조회수 41 ㅣ 2020.07.27

행복만들기


〈286〉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세가 너무나 흉흉하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감염증이 시작된 이래, 올봄을 거쳐 여름까지 계절을 바꿔가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된 지금이라서 그렇지, 무려 5천만의 생명을 앗아간 20세기 초 스페인독감 쯤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화한 독종이다. 최근에는 원인불명의 폐렴이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해 무려 1700명 넘게 숨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은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사회적 접촉마저 최대한 줄이고 있다. 한마디로 불안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발호하는 시대다.
불안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여든여덟인 필자의 노모는 올들어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폐에 물이 차오르는 폐부종 때문에 119응급차로 병원에 모신 게 벌써 다섯 번이다. 숨쉬기가 힘들어 무척 고통스러워하신다. 몸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혈압을 올린다. 열도 치솟는다. 노모를 모시고 가면서 필자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야윈 손을 쓰다듬으며 "이제 다 와 갑니다. 조금만 참으세요"란 위로의 말뿐. 진정 참기 힘든 시간이다. 일각이 여삼추란 말이 그때처럼 실감난 적이 없다.
극심한 불안증은 그렇게 시작됐다. 언제 노모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러 멀리 나가는 일도 뜸해졌다. 다가올 미래가 무섭고 불안하기에 항상 마음은 비상 상태다. 별것 아닌 일에도 놀라기 일쑤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나 자신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걱정에 이렇게 휘둘리다니. 불안해한들 어쩔 도리가 없거늘. 한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새벽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어둠이 끝없이 계속되는 일은 없다. 봄이 오면 눈이 녹듯 불안도 반드시 사라지는 날이 온다. 불안을 없애는 약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지금을 직시하고 당당히 맞서는 용기에 있다.
그래, 불안에 당당히 맞서자.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그게 소위 말하는 마음챙김이 아닐까. 불안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걸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꾸면 될 터이다. 내일의 일을 불안해하기보다 오늘의 삶에 집중하면서 주위를 배려하고 보살피는 일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기브앤테이크(주고받기)란 말은 있어도 테이크앤기브(받고주기)는 없지 않나. 불안의 시대에 내어주는 삶이 참으로 소중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no images
조회수 45 ㅣ 2020.06.26

행복만들기


〈285〉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미국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문제가 인종차별이라는 글로벌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요즘이다.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의 핵심구호는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그만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얘기다. 이게 세계 최강국이자 일등 선진국이라 자처하는 미국의 민낯이다. 흑인을 아프리카 노예의 후손쯤으로 치부하는 오만과 편견, 거기서 파생된 악의적인 차별감이 뇌리에 새겨져 있다.
어디 미국뿐이랴. 한국인을 조센징으로 부르며 비하하기를 즐기는 일본인, 빵즈(몽둥이로 때려 줄 한국놈들)라며 깔보는 중국인들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우리라고 하등 다를 바 없다. 못사는 동남아인들을 천대하고 학대하는 아주 못된 한국인들이 부지기수다.
우리는 경쟁을 강조한 나머지 상생이라는 자연계의 섭리를 잊어버렸다. 식물은 동물을 살리는 산소를 내뱉고, 동물은 식물의 먹이인 이산화탄소를 토해내 행성 지구를 가꿔나가는 그 절묘한 원리를 외면한다. 그 결과 너와 나를 분리시키고 차별화하는 사악한 이분법이 나왔다. 너를 이기는 나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가 끼어들 틈은 없다.
선의의 경쟁(차별)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뿌리를 내릴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너와 나가 우리라는 것, 그리고 하나라는 점을 깨쳐야 한다. 닫혔던 마음이 타인을 향해 서서히 열리면서 둘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감정으로 변해가는 게 사랑이듯이.
그렇다고 해서 하나된 우리가 반드시 같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통일성과 개별성은 결코 배타적이지 않다. 차이는 분리와 다르며, 대조가 갈등으로 이어질 필요도 없다. 우리 손가락은 모두 다르고 고유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모두 한 손의 부분이며, 두 손은 한 몸의 부분이 아니던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생명존엄의 가치를 되새기는 명언이라 하겠다. 생명은 그 어떤 경우라도 수단이 되어선 안 되며, 차별받아서는 더더욱 안 된다 .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모두가 하나임을 깨닫는 사회. 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다수를 다치게 하는 것이고, 소수를 이롭게 하는 것이 다수를 이롭게 하는 것임을 아는 사회. 그게 바로 참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회가 아닐까. 법정 스님이 생전 강조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no images
조회수 49 ㅣ 2020.05.25

행복만들기


최 원 열   
언론인(前 국제신문 논설위원)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대유행)이라는 초유의 글로벌 사태 와중에 지난달 말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는 대한민국을 시퍼렇게 멍들게 했다. 이번 화재로 무려 38명이 희생됐지만 그 이면에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교훈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천 참사는 안전보다 비용 절감 등 경제논리가 우선했다는 점에서 인재(人災)임이 분명해 보인다. 과거 수많은 유사 사례가 있었음에도 그때마다 적당히 타협한 당국의 책임도 상당하다. 그렇기에 사회적 타살이란 비난이 쏟아지는 것도 당연할 터.
혹시 씨랜드 화재참사를 기억하시는지. 21년 전 병아리 유치원생들이 일순간 덮친 화마에 컨테이너 가건물 방 한구석에 몰려 서로 부둥켜안은 채 희생된 그 참혹한 순간을. 온 국민이 발을 동동 구르며 눈시울을 적셨던 당시의 기억이 선연하다. 6살 아들을 잃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순덕씨는 이렇게 절규했다. "국민의 생명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에서 더 살 필요가 없다." 그는 메달을 반납하고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났다. "누구든지 그 속에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긴 채.
어디 씨랜드 뿐이랴. 성수백화점 붕괴 참사나 외환위기, 이번 참사와 판박이인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제천 사우나 참사 그리고 밀양요양병원 참사 등등 끝없이 이어지기만 한다.
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로 인한 대형 참사 원인을 설명해주는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큰 사고 전에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고, 그 전에 300여 번의 징후나 조짐이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해 대형 재해는 우연히 발생하는 게 아니라, 많은 전조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점을 초기에 신속히 발견해 바로잡지 않으면 나중에 엄청난 재해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덮친다는 점을 경고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경우 실수를 애써 외면했기에 참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거다.
세상에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수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결과는 확 달라질 수 있다. 상황을 외면하고 숨기기에 급급한 실수가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기에 작은 실수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바로잡는 습관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플루타르코스가 일찍이 갈파한 적이 있지 않나. 현명한 사람은 실수를 통해 미래를 사는 지혜를 배운다고.

OPEN 공공누리 - 공공저작물 :출처표시, 비영리목적으로 2차저작물 변경하여 자유이용허락    공공누리 출처표시 후 저작물 변경없이 비영리목적으로만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담당부서 정보

  • 담당부서 총무국     
  • 담당자황순규
  • 문의전화051-550-4074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