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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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97 ㅣ 2015.08.25

이번 여름에 지리산 골짜기 마을에서 한 달을 보냈다. 미뤄 둔 장편소설을 쓰겠답시고 지인의 시골집을 통째로, 공짜로 빌렸던 것. 출발할 때는 나름대로 비장한(?) 각오를 했지만 워낙 뒤끝이 무른 성격이어서 글은 뒷전이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거나 동네 뒷산의 둘레길을 어정거리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사실 시골에 숨어들어야 소설이 쓰이는 건 아니다. 글을 쓰는 데는 오히려 세상과의 약간의 부대낌이나 시간에 대한 쫓김이 더 효과적이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혼자 시골 마을로 찾아간 것은 오랜 직장 생활 때문에 한 달 쯤 되는 시간 동안 홀로 지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데 문득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얼마간 세속과의 교신을 끊고 외로움을 자청해 본 것.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없는 시간이 며칠 연속되자 사실 무료하고 쓸쓸하긴 했다. 그래서 종당에는 마을의 도둑고양이 한 마리를 벗 삼게 됐다.

 

녀석이 아침저녁으로 찾아들 때마다 먹이를 공양(?)하곤 했는데, 할 일이 없으니 녀석과 나는 서로 상대방의 낯짝이나 멀거니 쳐다볼 밖에. 처음엔 나를 경계하던 녀석이 내 발 아래, 마당의 탁자 밑 그늘에 하루 종일 척 드러누워 낮잠이나 자던 것이었다.

 

애초 각오만큼 소설의 진도는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얻은 게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비가 쏟아지는 한낮엔 멀리 운무에 젖은 천왕봉을 지켜보는 것도 그럭저럭 운치 있었고 이슬이 내려앉은 아침 솔숲을 거니는 맛도 나쁘지 않았다.

 

밤에는 평상에 누워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기도 했다. 저렇게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하는 새삼스런 탄성과 함께.

 

그러면서 문득 '홀로움'이란 말이 떠올랐다. 시인 황동규가 '외로움을 통한 혼자 있음의 환희'란 뜻하는 '홀로움'이란 조어를 만들어 시에 썼거니와 '홀로움'이야말로 인간이 자기 정화를 위해 복용하는 최상의 묘약이 아닐까.

 

세상이 떼 지어 편싸움을 벌이는 것도, 사람들이 하루하루 악다구니를 벌이며 살아가는 것도, 경쟁에서 이기려고 직장에서 안간힘을 쓰는 것도 어쩌면 외로워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홀로움'은 자신을 적요의 바다에 담가놓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묻은 때를 말갛게 헹구는 행위일 터다.

 

바쁜 것이 미덕만은 아니다. 때로는 가끔 자신의 고독의 망망대해에 던져두고 살아온 삶과 살아갈 시간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좀 외로워져야 세상이 보이는 법이다.

 

소설 원고를 기대만큼 많이 쓰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홀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을 이번 칩거(?)의 가장 큰 결실이라고 위안하며 도시로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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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54 ㅣ 2015.07.27

요즘 텔레비전의 '대세''먹방'이라더니 돌리는 채널마다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남자 가수와 개그맨이 출연해 서툰(?) 솜씨로 요리하는가 하면, 연예인의 냉장고를 통째로 들고 와 유명 요리사들이 즉석 요리 대결을 펼치기도 한다. 전국 유명식당의 음식을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미주알고주알 품평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집밥' 열풍이 거센 모양이다. 구수한 입담을 과시하며 요리 초보 남자 연예인들 앞에서 간단한 레시피로 시범을 보이는 한 외식업체 사장은 이미 장안의 스타로 떴다. 중년 남자들에겐 이미 추억이 된 '엄마의 손맛'을 재현해 주는 방식이어서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내 또래 남자들에게는 어머니의 음식은 '잃어버린 신화'와 같다.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난 처지라면 더욱 그렇다. 궁핍한 시절이었으니 어릴 적 집밥 메뉴가 대단했을 리 없다.

 

객관적인 솜씨로 따지면 유명 요리사에 댈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다들 어머니의 음식을 천상의 음식처럼 그리워하는 거다. 팍팍한 세상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 하느라 부대끼다 보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서 어머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심리가 '엄마표 집밥' 열풍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며칠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나도 요리란 것에 도전하게 되었다. '고등어 김치찜'. 요리법이 간단한 데다 때마침 냉장고에 고등어가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 김치를 썰어 넣고, 고등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고, 된장을 푼 다음 고춧가루·마늘·청양고추 따위 양념을 넣고. 양파와 대파까지 채 썰어 넣었더니 내가 봐도 그럴듯한 음식이 됐다. 도마질을 하면서 콧노래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실소했다. 식탁에 내놓았더니 아내가 웃는다. "오우, 당신도 음식이란 걸 만들 줄 아네.“

 

쉰 줄을 한참이나 넘긴 사내를 부엌으로 불러냈으니 텔레비전의 위력이 세긴 세다. 어쨌거나 요즘은 요리 잘 하는 남자가 예쁨(?)을 받는 세상 아닌가. 가끔 앞치마를 걸치고 가족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다 한들 가장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도 아닐 게다.

 

하지만 한편으론 요즘 텔레비전 예능방송의 흐름이 좀 걱정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먹방'도 좋지만 너도, 나도 걸신들린 듯 먹는 것에만 탐닉하는 게 지나쳐 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집밥'으로 상징되는 어머니에의 추억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기우도 생긴다.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는 한편으로 정신의 음식도 좀 챙겨먹을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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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38 ㅣ 2015.06.26

아이들 뒷바라지가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이순(耳順)이라는 예순 고개가 저만치서 기다리는 나이가 되고 보니 노후 걱정이 슬슬 일어나고는 한다.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선배들의 문상을 다녀오거나, 드물긴 하지만 동창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적엔 착잡한 느낌을 가눌 수 없어진다.

 

늙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든 즐거운 일은 아닐 터이다. 내 자신만 해도 면도를 하다가 흰머리가 늘어나고 이마의 주름이 깊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새삼스레 비감해 지기도 하니까.

 

아내의 목에 주름살이 조금씩 깊어져 가는 것을 발견할 때도 마찬가지. 새색시 때는 제법 고운 것도 같더니만 언제 저렇게 초로의 여인이 돼 버렸나 싶어서 애틋한 느낌도 생기는 것이다.

 

그럴수록 늙어가는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사실 우리네처럼 노후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드물 것 같다.

 

먹고 살기 어려웠을 땐 하루하루가 전쟁과 같았고 요즘은 요즘대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 미처 노후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를 얻기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나이가 들수록 많이 웃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 얼굴엔 300개의 근육이 있는데, 화가 났거나 두려울 때 이 300개의 근육은 긴장감으로 꽁꽁 뭉친다고 한다. 근육의 긴장은 마음의 긴장으로 다시 이어진다고.

 

많은 일에 여유를 가지고 웃어 주는 것, 그리하여 스스로의 마음에도 고요와 평화가 깃들이게 하는 것. 이것도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이 아닐까. 그러면 아마 주위사람들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저 분 참 곱게 늙어가는 분이구나!“

 

더불어 남편은 아내와, 아내는 남편과 친해지는 방법을 다시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 부부만큼 가까운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실제로는 우리는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데 서투르다.

 

하지만 부부만한 평생친구는 없다. 백발의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숲길을 산책하며 무언가를 다정하게 속삭이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그 어느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하는 감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나는 어떨까. 아내가 만약 이 글을 읽는다면 "사돈 남 말하고 있네"하고 웃을 것 같아 계면쩍기도 하다.

 

그래, 말 난 김에 오늘은 아내에게 다가가 슬쩍 안아줘야지.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겠다. "우리, 오래 오래 행복하게 늙어갑시다.“

 

그러면 아내도 모처럼 신혼 때 보여줬던 그런 수줍은 웃음을 내게 보여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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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54 ㅣ 2015.05.26

얼마 전 한 사설 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문화관에게서 부탁을 받아 서너 차례 문학 강연을 맡았다.

 

이 부박한 시대에 그래도 문학이 필요한 이유,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 따위를 주제로 삼아 주섬주섬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평일 오후 강의라 은퇴한 어르신과 주부들이 주 참석자였고 그마저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분위기만큼은 내가 해 본 그 어느 강좌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이었다.

 

엊그제 마지막 강의에서 내건 주제는 다소 거창하지만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다'였다. 강의를 들은 분들이 용기를 내 직접 글을 써 보시라는 뜻이었다.

 

 

그 강연에서 나는 90세가 넘어 시 공부를 시작해 98세에 첫 시집을 낸 일본의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장례비로 모아둔 100만 엔을 들여 만든 <약해지지 마>라는 그 시집이 일본에서 150만 부 이상 팔렸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판됐다는 후일담도 곁들였다.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 마흔이 넘어 장편공모를 통해 등단해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된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도 들려드렸다.

 

72세에 시인이 된 충청도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도 꺼내 "글을 쓰는 데는 나이가 장애가 되지 않으니 생각해 둔 글감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써 보시라"고 권했다.

 

그런데 수강자들이 특히 감동(?)을 받았던 대목은 뜻 밖에도 돌아가신 내 어머니 이야기였다. 일제 때 소학교를 나오신 어머니는 박봉의 교사 아내로서 6남매를 키우시는 고달픈 일상 속에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으신 분이었다. 십 수 년 전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나는 낡은 비닐 백에 담긴 10여 권의 공책을 발견했던 터다. 어머니가 육필로 쓴 시, 일기, 여행기, 살아온 회고담 등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원고를 일일이 컴퓨터에 쳐 넣어 책으로 출판해 가족, 친척, 친지, 그리고 어머니의 친구분들께 돌렸었다.

 

무심코 꺼낸 이야기였는데 강의를 마치자 어르신들이 "당신 어머니 이야기가 특히 감명이 깊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통에 민망했다. 내가 좀 더 어머니에 관심을 드렸더라면 돌아가신 후가 아니라 생전에 책을 내 드렸어야 했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이 있고, 그 살아온 내력은 자신에겐 가장 소중한 재산일 터다. 가슴 속에 오래 묵힌 이야기가 있으면 과감하게 글로 옮겨 보는 것은 어떨까. 어디 작가가 따로 있겠나. 책으로 내도 좋고 아니라도 좋다. 장성한 자식들에게 부모의 인생담을 읽히는 것만도 의미가 있을 게다. 그것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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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7 ㅣ 2015.04.28

30년도 훨씬 더 지난 대학 상급반 때의 이야기다. 토요일 오후 자취방에서 공부하다 잠시 쉴 겸 농구공을 가지고 집 뒤편 중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그랬는데, 농구공이 담을 넘어 언덕을 통통 구르더니 가정집 마당으로 튀어 들어가고 말았다.

 

정중히 사과하고 공을 찾아올 심산으로 대문을 밀었는데 쉰 줄이나 됐을 아저씨가 불문곡직 뺨을 갈기는 것이었다. 아마 그동안 공이 튀어들어 꽤나 성가셨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린애도 아닌데 공이 담을 넘었다고 따귀를 맞았으니 어리벙벙해서 아저씨를 바라볼 밖에. 무어 장독이 깨진 것도 아니었다. 그이는 내게 계속 욕설을 퍼부었다. 뒤이어 나온 아주머니가 공을 건네주긴 했지만 그 억울했던 느낌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헌데, 얼마 전에 다시 봉변을 겪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웬 대학생이 버턴을 누르고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내뱉는 말이 이랬다. "××, 나는 사람도 아이가!" 안에서 먼저 열어 주지 않았대서 하는 욕설이었다. , 어이가 없어 "학생, 거 말이 너무 거칠지 않나"하고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눈알을 부라리며 "아저씨 들으라고 한 소리 아닌데요"하고 응수하는 거다. 내가 다시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 있는데 욕설을 뱉은 건 나 들으라고 한 셈이 아니냐고 하자 그때부터 난동이 시작됐다.

 

네가 뭔데 내게 꾸지람을 하느냐며 온갖 육두문자가 난무했다. "아버지 같은 어른에게 어떻게 이런 몹쓸 욕설을 하느냐"고 꾸짖었더니 이번엔 아예 가방을 내동댕이 쳐가며 삿대질 하는 것이었다.

 

"니가 내 아버지는 아니잖아!"라는 소리를 연방 뱉으면서.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휑하니 계단으로 뛰어 달아났다. 하도 괘씸해서 경비실에 내려가 CCTV를 열어봤더니 다행히(?) 우리 아파트 주민의 아들은 아니었다. 안 그랬으면 어른싸움으로 번질 뻔 했으니.

 

어쨌거나 삼십 수년 전엔 지금 내 또래의 어른에게 수모를 겪었고, 이번엔 그때 내 또래의 대학생에게 봉변을 당했으니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할지. 뺨을 때린 어른이나, 어른에게 욕설을 내뱉은 대학생이나 극소수이긴 할 게다. 내 부덕의 소치라고 되뇌면서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들여다 본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을 버리기 어려웠다.

 

이런 괴물 같은 아이들은 우리 부모세대가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아이들의 거울일진대 어른에게서 그런 막된 행동을 배우지 않았겠는가.

 

지금 길거리에서 사소한 주차 시비로 멱살잡이를 하고 주먹을 을러대는 건 누군가. 아이들에게만 공손하라고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어른은 젊은이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는 세상. 그 쉬운 일이 이렇게도 어려우니 세상살이가 갈수록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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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71 ㅣ 2015.03.31

                  
 언제부터인지 '아줌마'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중년의 전업주부를 가리키는 일종의 비칭으로 정착되어 버렸다. 지하철에서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의 정답은 빈자리를 찾아 돌진하는 아줌마라는 농담이 오래 전 회자되기도 했거니와 아줌마의 이미지엔 수다스러움, 이기심, 첨단정보에 대한 무지 따위의 부정적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는 듯 하다. 


 하기야 엘리베이터나 식당에서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왁자하게 수다를 떠는 어떤 중년부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중년여성들의 편에서 보면 젊은이들에 의해 들씌워지는 그런 아줌마 이미지가 서운하고 부당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파김치처럼 지친 몸에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탄 지하철에서 빈자리를 보면 어찌 앉을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며 새장 같은 집에 갇혀 있다가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 밀린 이야기를 하다보면 웃음소리가 좀 커질 수도 있지 그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따지고 보면 중년남성들의 별칭인 '아저씨'도 좋은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밤늦게 술에 취해 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슬쩍 버리는 상식 없고 주책스러운 이미지가 담겨 있는 것.


 어쨌거나 오늘의 중년들은 외롭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유비쿼터스니, e-비즈니스니 도무지 뜻도 모를 단어가 난무하는데 아이들은 게임을 하는지 뭘 하는지 제 방에 틀어박혀 꼼짝을 않는다. 더구나 우리 사회엔 중년세대를 위한 문화공간이나 문화적 배려가 매우 부실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생활에 찌들수록 삶의 빈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중년세대에게도 젊은 시절 애틋한 삶의 한 자락쯤은 감춰져 있는 것. 연인과 손잡고 밤 바닷가를 거닐며 소설속의 주인공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누구에겐들 없겠는가. 생활에 부대끼다 보니 마음 속 깊이 감춘 감수성을 꺼내들 틈이 없었을 뿐이다. 


 오는 주말엘랑 손에 쥔 걸레를 잠시 놓고 소파에 누워 잠이나 자는 남편을 들깨워 데이트를 나가 보라. 아이들일랑 떼어놓고 옛 추억을 되살려 영화나 연극 한 편을 보고 나온 길에 생맥주 한잔도 좋다. 그럴 형편이 못된다면 동래 식물원이나 복천박물관에서 바람을 쐬어도 좋다. 지금은 햇살 포근한 봄이다.

 

강동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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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57 ㅣ 2015.03.02

 

봄이 오려면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하지만 절기상으론 입춘과 우수가 지나갔고 경칩도 멀지 않았다. 올 겨울은 그럭저럭 따뜻한 날씨가 계속돼 이대로 지나가려나 했더니 역시 겨울 값을 하노라고 2월 들어선 좀 춥기는 했다. 


그래도 하늘은 티 한 점 없이 쨍하니 푸르고, 얇게 썬 무 같은 낮달이 벽공(碧空)에 매달린 모습은 겨울다운 청량감을 준다. 시인 서정주의 '동천(冬天)'이 떠오르는 절기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베란다 창으로 새어든 한줄기 환한 햇살이 난 잎에 부딪쳐 도르르 구르는 모습에서 곧 다가올 봄을 예감한다. 하고보면 뒷산의 나무들도 아직은 헐벗었지만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꿈꾸는 모습이다. 거리에 나서면 볼에 닿는 차가운 바람 사이로 희미한 훈풍 한줄기가 살짝 섞여있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신문과 방송은 올 한 해도 서민 생활이 팍팍할 것이란 우울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연초부터 담뱃값이 대폭 인상돼 애연가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터에 정치하는 이들은 복지와 증세 논란으로 여념이 없다. 증세를 하느냐, 복지를 줄이느냐가 논쟁의 핵심일 텐데, 애초엔 어느 쪽이 서민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는 충정(?)에서 시작된 것이 어느새 여야의 말싸움으로 변질된 느낌이니 마땅찮은 느낌이 들 수밖에. 각급 학교의 졸업식이 지금 치러지고 있지만 취업을 못한 대학 졸업생들의 마음 역시 썰렁할 터이다. 올해 고3이 될 학생들도 입시 중압감에 머리가 무거울 것이다.

 
하지만 봄은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엄마 손을 잡고 초등학교의 입학식장을 찾아가는 코흘리개들의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게 만든다. 봄이 오면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이 시나브로 녹아가면서 우리 가슴 한 자락에도 따뜻한 훈풍이 스며들 것이다.


엊그제 시내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다들 돌아가면서 노래도 '일발장전'했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노래하는 것이었다.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온다."  그 노래의 원제목은 '봄날은 간다'이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그렇게 고쳐 부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올 겨울이 춥고 썰렁했던 이들이라면 지금 창문을 활짝 열고 차가운 바람에 섞인 한 줄기 봄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보라. 그리고 실눈 뜨고 햇살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보라. 지금 남쪽 먼 곳에서 봄이 달려오고 있다. 강동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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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47 ㅣ 2015.01.28

                       
루 게릭 병을 앓는, 절친한 두어 살 위의 선배 소설가가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앓는다는 바로 그 병이다. 3년 쯤 전부터 증세가 나타났는데 처음엔 여러 군데 병원에서 다들 디스크란 진단을 내려 공연히 수술까지 받는 고생을 했다. 

결국엔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풀려가는 루 게릭 병 진단을 받았는데 진행이 생각보다 빨라 얼마 지나지 않아 재직하던 고교에서 명예퇴직을 해야 했고 지금은 집에서 휠체어에 앉아 지낸다. 그나마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그래도 자동차에 태워 송정 같은 근교의 바닷가 카페를 찾아 창 너머로 바다구경도 시켜줄 수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조차도 어렵다. 말도 조금씩 어눌해 지더니 요즘은 거의 하지 못한다. 여행을  좋아했던 그여서 전에는 부부끼리 이곳저곳 주말엔 짧은 여행을 다니기도 했던 터가 아닌가.

 
정신은 유리알처럼 명징한데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면 얼마나 갑갑할까. 내가 그의 고통을 어떻게 짐작이나 하겠는가. 그래도 서른 무렵에 만나 호형호제 하며 25년 세월을 술친구로 지내온 나는 그를 생각할 때마가 가슴 한 쪽이 아릴 수밖에. 마음 한 곳이 안개 깊은 바다처럼 축축해진다.


그나마 얼마 전에 안구 마우스가 장착된 컴퓨터를 장만해 그것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다행이다. 눈동자를 움직여 화면 속의 자판을 응시하면 컴퓨터에 달린 렌즈가 안구의 움직임을 포착해 글자를 하나하나 찍어 주는 방식이다. 그러니 문장 하나를 구성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도 어쩌다 카톡으로 안부를 전해 오기도 한다.

 
그가 최근에 새로운 '편지'라는 제목의 새 소설집을 펴냈다. 아프기 전에 썼던 작품들과 발병 후에 발표했던 소설들을 묶은 것이다. 신문들이 그의 소설집 발간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1면에 실은 신문도 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가 온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병마와 싸워가며 창작의 불꽃을 태워 책을 펴냈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신문에 기사가 난 다음날 방송사에서 내게 전화가 왔다. 그의 이야기를 뉴스로 다루겠으니 내게도 한마디 해 달란 거다. 


TV의 저녁 뉴스 속의 나는 "정태규 소설가가 병마와 싸워가며 펴낸 이번 작품집은 한국 문단에서도 유례를 찾기 드문 중요한 문학적 성취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다가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멀쩡한 몸으로 함부로 흘려보내고 있는 내 시간에 대한 자책감 때문일 터다. 좀 더 정성스럽게 살아가야 할 것이라 다짐하는 한 해의 첫머리이다. 더불어 신이 그에게 좀 더 시간을 허락해 독자들이 감동할 역작을 계속 쓸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강동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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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40 ㅣ 2015.01.02

강 동 수  소설가

다시 한 해가 저문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가 '눈 깜짝할 새'라더니 쏜살처럼 달아나버린 지난 한 해가 진실로 '눈 깜짝할 새'다.

되돌아보니 올 한 해도 숱한 일이 일어났다. 무어니 해도 가슴 아팠던 일은 '세월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을 포함해 300명이 넘는 아까운 목숨을 수장시켜 놓고 우리 어른들은 얼마나 부끄럽고 황망했던가. 두고두고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연말엔 느닷없이 어지러운 정치의 뒷면이 노출돼 국민들을 황당하게 만드는가 하면 한 항공회사 회장 따님이 저지른 이른바 '갑질 놀이'는 많은 장삼이사들을 분개시키기도 한 터다.


나라 밖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을 지나던 말레이시아 여객기 격추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 평화는 아직까지 멀고 먼 도정에 놓여 있음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에볼라가 창궐하기도 했다.


어쨌든, 2014년은 또 그만한 크기로 인류사에 한 흔적을 남겨놓고는 시간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흘러가는 그 시간은 지상에 머물러 사는 모든 개인들이 흘린 땀과 눈물과 환호와 비탄까지 짊어지고 있을 것이다.

시간 속에 새겨진 개인사의 이력은 참으로 미소한 것이지만, 그 미세한 실금들이 모여서 세상의 지도를 만들고 역사의 벽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소중한 것. 그래서 차고 뜨거운 감회를 잠시 가라앉히고 올 한 해 우리가 그은 작은 실금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터이다.

 
시인 최영철은 '소주'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느새 이슬처럼 차고 뜨거운 장르에 왔다/ 소주는 차고 뜨거운 것만 아니라/ 격정의 시간을 건너온 고요한 이력이 있다/ 지금 웅덩이 안으로 조금씩 흘러 들어가/ 차고 뜨거운 것을 감싼다/ 어디 불같은 바람만으로 되는 것이냐고/ 함부로 내지를 토악질로 여기까지 오려고/ 차가운 것을 버리고 뜨거운 것을 버렸다/ 물방울 하나 남아 속살 환히 비친다/ 소주는 차고 뜨거운 것만 아니라/ 불순의 시간을 견딘 폐허 같은 주름이 있다.… '

 
차고 뜨거운 세월을 지나 토악질 같은 분노와 격정의 시간을 건너 얻은, 속살 환히 비치는 고요의 순간은 어쩌면 지금일 터이다.

불순의 시간을 견딘 폐허 같은 주름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날들을 예감하는 시간이 지금일 터이다. 어디 시인의 삶만 그렇겠는가. 우리 모두 '차고 뜨거운 장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지난 한 해 고통과 분노, 슬픔과 안타까움을 딛고 '폐허 같은 주름' 하나 얻으려 여기까지 달려온 동시대의 모든 분들과 함께 소주 한 잔 마시며 우리 자신의 노고를 자축하고 싶다.

새해엔 올해보다는 더 넉넉하고 기쁜 시간이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주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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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49 ㅣ 2014.12.01

강동수
소설가·국제신문 논설실장

 

  며칠 전 저녁 무렵 지하철에서 목격한 풍경이다. 전날 잠을 설쳤던 터라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서 날아온 노성이 귓전을 때리는 바람에 눈을 떴다.

일흔을 갓 넘겼을까, 내 앞에 선 노인장 한 분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옷에 베레모를 쓴 혈색 좋은 분이었다.

 "노인이 서 있는데도 젊은 것이 자리도 양보 않고 말이야!" 나한테 하는 소린가 싶어 당황해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내 옆자리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가씨를 향한 것이었다.

아가씨는 벌게진 얼굴로 꼼짝도 않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짐작건대, 미처 자리를 양보하지 못했는데 노인장이 고함을 지르니 어쩔 줄을 모르는 눈치였다.

혹은 불문곡직 꾸지람을 퍼붓는 노인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못들은 척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노인장의 거친 꾸지람이 계속되자 옆에 서있던 다른 노인들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내 비슷한 연배의 노인 한 분이 제지했다. "다음 차량으로 건너가면 경로석도 있고, 요즘 젊은 애들도 직장 다니느라 피곤한데 너무 그러지 마슈."


애초의 노인장이 "뭐라는 거요! 그럼 젊은 것이 노인을 세워놓는 게 옳단 말이요!"하고 맞받아치는 바람에 노인장끼리의 언쟁으로 비화됐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자리에서 일어설 밖에. 자리에 앉던 노인은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던지 옆자리 아가씨의 무릎을 자기 무르팍으로 모질게 치는 것이었다.


사실 요즘 지하철에서 심심찮게 목격되는 풍경이다.

한번은 등산복 차림의 젊은(?) 노인이 술에 불콰한 얼굴로 자리를 안 비켜준다고 학생들을 야단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나 자신도 쉰 중반에 들어서고선 빈자리만 나면 냉큼 앉는 터수이지만, 운동하러 산에까지 찾아간 분이 지하철에 잠시 서 있대서 큰 일 날까 싶어 딱한(?) 느낌이 들었던 터다.

하기야, 어른들이 앞에 서 있거나 말거나 서로 껴안고 비비는 젊은 친구들 역시 딱하지만. 어르신들의 심사가 이해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자신들이 젊었을 때는 어른을 깍듯이 모셨는데 요즘 애들은 도무지 귀하게만 자라 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예의 차릴 줄도 모르니 화가 날 법도 하다.

그러잖아도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소외되는 것 같아 울적한 데 말이다. 그 마음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만 더 너그러워지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리를 비키라고 고성을 지를수록 젊은이들이 더 경원하지 않나. 자리를 양보 받으면 오히려 처량해진다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

젊은이들도 좀 피곤하더라도 어른들께 자리를 양보하는 습관을 키울 필요도 있겠다. 자기 부모라면 세워두고 제가 냉큼 앉지는 않을 테니. 어쨌든 세상이 많이 변하긴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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