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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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0 ㅣ 2016.07.04

한 달 쯤 전 오래 살던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꼽아보니 23년 만이다. 작은 애가 태어나 대학 4학년이 되도록 한 아파트에 살았다고 하니 지인들이 혀를 찬다.

 

"월급쟁이의 유일한 재테크가 아파트 옮기는 건데 그동안 뭘 했어요?" 이삿짐 옮기는 걸 무던히 싫어하는 게으른 성미 탓이다.

 

그래도 살던 아파트가 산줄기와 잇닿아 있어서 8폭 병풍 펼쳐진 듯 베란다 창으로 뒷산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긴 했었다. 마른 나무에 눈록(嫩綠)의 싹이 트는 봄은 봄대로, 짙푸른 잎에서 진한 생명의 비린내가 풍기는 여름은 여름대로,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가을과 어쩌다 순백의 설경을 연출하는 겨울은 또 그때대로 사계가 다 아름다웠다. 베란다에서 산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게 작은 낙이었다고나 할까.

 

아내의 성화에 못이겨 도심 한복판 낡은 단독주택의 매매계약을 하고 나서도 나는 낯익은 풍경과 이별하는 게 내심 아쉬웠다. 주위의 상업빌딩 사이에 섬처럼 납작 끼여 있는 새 집 꼴도, 대문 밖만 나서면 대로로 자동차들이 씽씽 달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산 바로 아래에 있던 이전 아파트보다는 공기도 당연히 탁할 밖에.

 

욕실과 부엌을 고치고 도배와 장판 까는 것으로 최소한의 수리를 마치고 짐을 풀려 했는데, 취미로 시골집을 짓는 친구네가 재료만 사 주면 인테리어를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무료봉사에 나선 친구 부부가 근 보름 동안의 노역 끝에 벽과 천장까지 향목으로 쫙 깔아주니 한결 나아보였다. 그 와중에 나도 전리품(?)을 챙겼다. 아파트에 있을 때는 두 아이에게 방 하나씩 내주느라 변변한 책방이 없었는데, 이번엔 제일 큰 방을 징발해 내 서재로 꾸민 것.

 

무엇보다 새 집엔 좁은 마당가에 커다란 나무가 있어서 좋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굵은 둥치의 목련, 아왜나무, 은목서. 동백나무와 소철, 금식나무, 남천에다 아직 붉은 꽃을 매단 철쭉도 있다.

 

얼마 전엔 치자나무에서 하얀 꽃이 마흔 송이나 솟더니 온 집에 은은한 향내를 뿌려주었다. 딸아이는 기겁하지만 마당에는 개미도, 지렁이도 꼬물거린다. 이따금 나비와 벌도 찾아준다. 나는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로 슬리퍼를 끌고 나가 일없이 치자향기를 맡아보고 쭈그려 앉아 개미떼의 부산한 이동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기도 한다.

 

좀 과장하자면 도심의 손바닥만한 마당이 작은 생태계인 셈이다. 나무도, 꽃도, 개미와 지렁이도 아파트에선 만져볼 수 없는 것들이 아닌가. 글쎄, 세상은 이렇게 만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도 생겼다.

 

낯선 집에 마음을 붙여 사는 것처럼 우리네 삶이란 것도 낯선 것들에 대한 적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옛 사람이 가면 새 사람이 오고, 다시 그들과 부대끼며 정 붙이며 사는 것. 그래서 우리 사는 세상은 '행복한 지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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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79 ㅣ 2016.05.31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소설가 김연수의 아름다운 단편소설 '스무 살'의 한 구절이다.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한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고 작가가 말한 것은 스무 살이 그만큼 인생에서 특별한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의 나이는 뭉뚱그려 세어도 될 만큼. 성년이 되는 나이이지만 아직 세상을 속속들이 알기엔 어린 나이, 모든 것이 결핍으로 가득 차 있지만 새로운 삶을 갈망하는 나이…….

 

현실을 초극하고 싶지만 하늘을 날기엔 날개가 아직은 약한 청춘의 나이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지나간 스무 살은 너무나 짧아서 애틋한 나이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스무 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1980년 대학 신입생 시절, 벽지에 곰팡이가 꺼멓게 슨 반지하 자취방에 살던 가난하고 헐벗었던 청춘이었다.

 

세상은 아직은 너무나 추상적이고 멀어보이던 나이이기도 했다. 처음 해보는 객지살이는 낯설었고 때로는 힘겨웠다.

 

미팅이란 걸 나가도 새침한 서울내기 여대생들에게 딱지나 맞던 촌놈이었다. 집에서 부쳐져 온 용돈을 술 마시느라 탕진하고선 라면을 줄창 끓여 먹었고, 라면마저 떨어지면 또 굶기를 예사로 했다.

 

하지만, 그 나이는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 독립된 개체로서 주체적 삶을 시작했던 나이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내 삶을 둘러싼 결정을 스스로 내리고 또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기 시작한 나이였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 때가 아니었던가. 인식에 눈뜨기 시작하던 나이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책 속에 담겨 있기라도 한 듯 책읽기에 탐닉했고, 학교 앞 막걸리 집에서 친구들과 온갖 추상적 담론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요컨대, 스무 살은 내게도, 당신에게도,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치기와 고뇌가 뒤섞였던 나이였다는 거다. 그러나 지나와서 되돌아보면, 가장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인생의 황금기였던 거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제목처럼 "청춘은 아름다워라!"하고 외치고 싶을 만큼.

 

동양에선 예로부터 스무 살이 되는 남자를 약관(弱冠)이라 불렀다. 그 나이의 여성은 방년(芳年)이라고 했다. 의젓하게 관을 써도 되는, 다시 말해 어른 대접을 해주는 나이이며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나이인 것이다.

 

느닷없이 '스무 살' 타령을 하는 것은, '동래고을'이 창간 2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매체로서의 '동래고을'도 이제 관을 쓰는 어른이 된 셈이다. 혹은,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낼 만큼 숙성한 연륜을 쌓았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19965월 첫 울음을 터뜨리며 세상에 나온 '동래고을'은 창간호 발행부수 3만부에서 지금은 세 배 가까운 85천부로 늘어났다고 한다.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외형적인 확대뿐만이 아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민선시대에 걸맞게 구정과 구민과의 가교 역할에도 충실했다고 하겠다. 주민들이 알아야 할 구정 시책과 유용한 각종 생활정보를 전달하는 데 힘썼고 구민들의 여론을 전하는 신문고 노릇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다른 구보들과 차별화되는 '동래고을'의 여러 장점 중의 하나는 문화 유적이 많은 동래구의 특성을 살린 갖가지 기획 시리즈물일 것이다.

 

이를테면 '되돌아 본 격동의 동래 100', '동래골 재조명', '옛 사진·사료에서 본 근대 동래 이야기' 같은 향토사 시리즈는 동래의 역사를 재발굴해 주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준 좋은 기획물이었다. 나아가 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도 들었다.

 

지난 스무 해 '동래고을'이 밟아온 세월은 동래구의 역사와 궤도를 같이 한다. 동래구민들은 '동래구보'를 보며 애향심과 자부심을 키워오지 않았던가. 스무 살은 아름다운 나이이다. 청춘과 활력의 연대이기도 하다. '동래고을'의 스무 돌을 축하한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어른이 된 셈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꿈을 펼칠 나이가 아닌가.

 

부디 초심을 잃지 말고, 구민들의 진정한 동반자, 다정한 이웃, 그리고 풍요로운 삶의 안내자가 되어 주기를. 주민들의 여론을 오롯이 담아 구정에 충실히 담는 메신저의 역할을 다 하기를. 역사와 충절의 고장 동래의 얼을 후세에게 되살려 주기를.

 

올해 스무 살을 맞는 '동래고을', 그대는 영원한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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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0 ㅣ 2016.04.26

무애 양주동 선생의 수필집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백주회' 이야기가 나온다. 그 책엔 동경 유학 시절 노산 이은상 선생 등과의 교우관계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져 있거니와 가난한 유학생들이 어쩌다 돈이 생기면 하루 저녁에 술집 100곳을 순회했다는 회고담이 나온다.

 

비루(맥주의 당대 발음), 위스키, 청주를 가리지 않고 한 집에서 딱 한잔씩 마시고 다른 술집으로.

 

그래도 100잔이니 대취할 밖에. 남의 땅에서 공부하던 식민지 출신 유학생들의 슬픈(?) 호기가 이른바 ' 데카당스' 취미로 나타난 것일 터이다.

 

술이라면 수주 변영로 선생도 빠뜨릴 수 없다. '명정(酩酊)사십년'이란 수필집에는 그의 장구한 술의 역사가 기록돼 있다. 다섯 살 때 어쩌다 술맛을 보게 된 이후 도주(盜酒)에 맛 들였고, 고보시절에는 날마다 술 취한 채 등교해 선생과 싸움을 일삼았다니 알 만하다.

 

수주가 "술 마신 뒤 찬바람 부는 거리에 나서기 싫다"고 했다는 이야기 역시 유명하다. 왜냐. 없는 돈에 겨우 취했는데 찬바람을 맞고 술을 깨는 것이 너무 아깝다는 것.

 

음주를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는 시인 조지훈이었다. 술을 바둑에 비겨 9개의 급과 9개의 단으로 나눈 그의 주도론 또한 유명하다. 9급은 불주(不酒)라 해서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이요, 1급은 학주(學酒)라 해서 술의 진경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러면 초단은 술의 취미를 맛보는 애주(愛酒). 7단은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낙주(樂酒). 입신의 경지인 9단은 폐주(廢酒), 또는 열반주의 경지이니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을 일컫는다.

 

갑자기 술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최근 연이은 술자리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선거일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목이 뜨끔뜨끔하고 온몸이 쑤시는 게 감기 몸살이었다. 잇몸까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웬일인가 했더니, 바로 전 이틀 동안 연이어 술을 마신 데다 그날은 개표방송을 보느라 잠을 설쳤던 탓이었다.

 

마누라의 핀잔이 쏟아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당신, 아직도 청춘인줄 알아요? 며칠 동안 부어라 마셔라,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오는 거 보고 이 꼴 될 줄 알았다니까.“

 

하긴, 지방간이네, ()수치가 높네 하며 의사로부터 절주 권고를 받은 지도 오래이니 할 말이 없긴 하다. 술을 절제해야 할 줄 알면서도 좋은 벗들과 어울려 마시다 보면 그만 한계치를 넘기 일쑤이니 내 의지 박약을 탓해야 할까.

 

술은 마물이어서 지나치면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인격의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불상사를 자초할 수도 있다. 아니, 열반주가 되지 말란 법도 없을 터이다.

 

안 마시자니 허전하고, 마시자니 다음날 후회하게 되고. 그러니 술은 영원한 애물단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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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56 ㅣ 2016.03.28

최근 장인어른을 다른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친부모님을 여읜 지 오래고 숱한 친지와 어른들의 타계를 지켜보았으니 무덤덤할 만도 하지만 생각보다는 마음의 파장이 오래 간다. 상례 때에는 사위라서 문상객들을 대접한답시고 술에 취해 지냈는데 모든 절차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텅 비는 것이었다.

 

정이 많았던 장인은 나를 아들처럼 아껴주셨다. 그런데도 나는 처가 일이라면 뒷짐만 진, 무뚝뚝하고 무심한 사위였다. 임종 전 병원에서 마지막 뵈었을 때 병상에 누운 장인께서는 흐릿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셨다. 글쎄,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눈엔 따뜻한 애정과 연민의 빛이 묻어 있었던 것도 같다.

 

평안하게 눈을 감으신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나는 어릴 적 읽은 동화가 생각났다. 소년과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소년은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도 자고, 그네를 매달아 타기도 한다. 청년이 된 아이는 나무 열매를 따서 내다 판다. 가지를 잘라 집도 짓는다. 나중엔 배를 만든다며 나무를 통째로 잘라간다. 그때마다 나무는 소년에게 기쁜 마음으로 자기를 내준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노인이 된 소년이 찾아왔을 때 등걸만 남은 나무는 자신의 그루터기를 앉아 쉴 자리로 내준다. 그래도 나무는 행복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으랴만, 생각해 보면 장인의 일생은 자식들에겐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입관을 할 적에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귀한 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인과 사위로 인연을 맺은 지 30년 동안 늘 자애롭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의 모든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십시오."

 

고인의 생전 뜻에 따라 수목장을 치렀다. 한 줌의 뼛가루를 보면서 인생이란 참 덧없는 것이구나 하는 새삼스런 생각이 스쳐갔다. 한 잔 술로 마지막 예를 치르고 하산하는데 가슴 한 구석이 동통처럼 무지근하게 아파오는 것이었다.

 

글쎄, 나는 내 아이들에게 내 장인처럼 속정 깊은 아비가 될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 내가 눈을 감았을 때 내 아이들은 나와 내 아내가 장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 아비를 그리워할까 하는 걱정(?)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남은 생을 좀 더 정성스럽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새삼스런 다짐도 했던 것 같다.

 

며칠 전 봄비가 종일 내렸다. 그 비는 한 줌의 재로 묻힌 장인의 유해를 촉촉이 적셨을 것이다. 창을 타고 흐르는 빗줄기를 보면서 그 분은 삼라만상이 순환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환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로소 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생이란 것은 허무한 것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오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이 지금 내 가슴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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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46 ㅣ 2016.02.26

새삼스런 이야기이지만 스마트폰 보급 이후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는 SNS의 보편화일 터다. 트위터, 페이스 북, 카카오스토리나 갖가지 밴드 몇 개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나도 페이스 북에 가입한 지 5년 쯤 됐다. '페친'을 늘리려고 일부러 애를 쓴 적은 없는데도 어느새 1000명 가까이 된다.

 

그들 중에는 오프라인에서 가끔 만나는 이도 많지만 얼굴도, 사는 곳도 모르는 이가 더 많다. 그들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혹은 댓글을 달아준다. 거꾸로 내가 '좋아요'를 눌러주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페친'들이 현실의 친구만큼이나 가까워진 느낌이 들 때도 있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SNS에 오르는 글들은 매우 다양하다. 정치적·시사적 현안에 대한 견해에서부터 개인적인 관심사와 살아가며 겪는 이런저런 일상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멋진 사진과 동영상도 오른다.

 

SNS'1인 미디어' 시대의 총아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언론사 하나를 소유한 셈이니 그야말로 '대중 언로'가 활짝 트인 시대다.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 널리 알리고 싶으면 휴대전화 자판만 두드리면 되니 멋진 신세계가 도래한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면 소통과 이해, 배려가 넘치는 세상이 돼야 하는데도 오히려 갈등과 충돌이 더 심각해지는 것 같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SNS가 갈등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정치인들에겐 SNS가 필수품이라지만 거기 올린 글이 구설수에 올라 곤욕을 겪은 이들도 적지 않다. 내 생각을 친구들과 공유하려고 올린 글에 일면식도 없는 이가 욕설에 가까운 댓글을 올려놓은 걸 보면 "도대체 내가 이 짓을 왜 하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것이다.

 

다르게 보면 SNS는 익명화,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는 도구일 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세상에서 버티고 살아가기가 그만큼 팍팍하니 사이버 세상에 목을 매는 게 아닐까. 체온을 가진 친구나 이웃들과의 따뜻한 만남이 어려우니 SNS에 자기가 올린 글의 '좋아요' 개수를 세고 있는 지도 모른다. SNS에 탐닉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외로워질지 모른다는 걱정도 드는 것이다.

 

글쎄, 현대인으로 살아가려면 SNS를 아예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올 한 해 나는 SNS와 좀 거리를 두려 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휴대전화에 코를 박는 시간보다는 책이라도 한 줄 더 읽거나 여유 있게 거리 풍경을 바라볼 생각이다. SNS는 훌륭한 문명의 이기이지만 그 기계적인 소통의 장치에 내 시간과 정력을 지나치게 소모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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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55 ㅣ 2016.01.27

요즘 나는 충청북도 증평군에 있는 21세기문학관이란 데서 겨울 한철을 나고 있다. 한 개인 기업인이 운영하고 있는 문학공간인데 분기별로 10여 명의 시인, 소설가, 아동문학가를 선정해 창작 활동에 필요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쾌적한 숙소 겸 집필실과 삼시 세끼를 몇 달 씩이나 공짜로 주니 작가들로선 생광스런 공간이다. 농촌마을이라 방해하는 사람 하나 없이 한적하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전국에서 모여든 시인과 작가들이 지금 제가끔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곳에서 동면하듯 웅크리고 있다. 날이 추우니 밥 때를 빼곤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낸다. 밀린 소설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때로는 못보고 지나쳤던 영화를 노트북 컴퓨터로 들여다 볼 때도 있다. 그래도 하루에 한번씩, 한 시간 쯤은 꼭꼭 들판을 산책한다.

 

모자 달린 방한복으로 중무장하고 들판 길을 걷는 맛은 각별하다. 얼굴에 와 닿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오히려 상쾌하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개천가에 무성히 자란 겨울 갈대숲을 바라보면 공연히 마음이 애잔해진다.

 

늦은 시간엔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 집에서 갈아간 커피 한잔을 내린다. 스탠드의 촉광을 한껏 낮추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는 한 모금씩 천천히 삼키며 청승 떠는 맛도 나쁘지 않다. 어둑신한 베란다 창 너머로 초승달이 떠오를 때 오래 잊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쓰다 보니 팔자 좋은 소리가 돼 버렸지만, 그리고 이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분들에게 약간은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도시에 있었다면 생각지도 못할 호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글 쓰는 이들에겐 이것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창작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다. 아니, 하루 종일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두드리는 노동의 시간인 것이다.

 

일상을 떠나서, 사람을 떠나서, 그리고 술을 떠나서 홀로 지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나쁠 턱은 없다. 외로움을 자청해 보면 평소엔 잊고 있었던 많은 일이 생각난다. 살아오면서 내가 저질렀던 많은 어리석음도 다시 깨우쳐진다.

 

글쎄,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악다구니를 쓰며 분주하게 살아왔던 나날이 부질없게도 느껴진다. 그러니 익숙한 것에서 잠시 벗어나 객관적으로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도 필요한 게 아닐까.

 

그나저나, 말 많고 탈 많은 작가들을 한데 모아 글 쓸 공간과 환경을 제공해 주는 독지가들의 존재가 고맙다. 생색도 나지 않을 일에 돈과 정성을 쏟는 이런 분들 때문에 한국 문학이 존재하는 것일 게다. 부산의 지자체들도 작가들이 사색하고 글을 쓰는 이런 레지던스 시설을 확충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한 시대의 정신을 곧추세우는 일에 투자하는 것은 거창한 건물이나 시설물을 짓는 것 보다 당장은 빛이 안 날는지는 모르지만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닌가. 문화와 예술은 회임 기간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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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72 ㅣ 2015.12.28

다시 한 해의 끝자락에 섰습니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한 해의 황혼녘에 서서, 어느 간이역에 내린 나그네처럼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니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누군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만 저도 지난 한 해를 허위허위 살아오느라 바쁘고 고단했습니다.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소설을 쓰는 한편으로 대학에 강의를 나갔더랬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제 가난한 지식의 한 조각이라도 나눠줄 수 있어서 행복했지요. 종달새처럼 활기차게 비상하는 청춘을 엿보면서 한편으론 유쾌했고 한편으론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젊음이라고 모든 것이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닌 듯 했습니다. 취업난으로 대표되는 고민이 아름다운 그들의 얼굴에 드리운 것을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하기야 삼십 수년 전 제 젊은 시절에도 이런 저런 고민을 견장처럼 어깨에 매달고 다녔으니 지금 젊은이라고 별다르겠습니까.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누구의 책 제목처럼 지나가는 한 때의 홍역이라고 속 편하게 넘어갈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을 일러 '오포세대'라고 하지 않습니까. 연애, 결혼, 출산, , 인간관계를 포기했단 이야기지요. 젊은이들에게 그런 현실적인 고민을 안겨준 것은 저를 포함한 기성세대이니 그들에게 무어라 훈계하기도 민망하지요.

 

어쨌거나, 다가올 새해엔 꽃 같고 나비 같은 우리 아이들이 취업 걱정을 조금이라도 더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어른들이 자식 세대를 위해 좀 더 애를 써야 하겠지요.

 

올 한 해 열심히 살아낸 많은 분들께 동시대의 한 장삼이사로서 위로와 격려를 드리고 싶습니다.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들 등록금 대느라 허리가 휘어졌을, 얼굴도 이름도 모를 내 또래의 이웃들과 어느 허름한 선술집에서 막걸리라도 한잔 나누고 싶어지는 저녁입니다.

 

맞벌이를 하느라, 혹은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살림 사느라 동동걸음을 쳤을 많은 여성들께도 마음의 꽃다발을 바칩니다. 지난 한 해 고생들 하셨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소박하지만 따뜻한 저녁상 앞에 온 가족이 둘러앉으면 어떨까요. 작은 케이크라도 앞에 두고 촛불을 켜면 어떨까요. 일렁거리는 불빛 아래 드러난 남편과 아내의 얼굴을 이윽히 들여다보면 또 어떻겠습니까. 한 해 동안 더 깊어진 이마의 주름살을 애틋하게 바라봐도 좋겠습니다.

 

글쎄, 산다는 게 뭐 별 것이겠습니까.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서정주, <무등을 보며>)'는 시 구절 같은 것이겠지요.

 

지난 한 해 열심히 살아온 우리 모두 자축과 위안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해엔 좀 더 넉넉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찾아오기를 함께 기원하십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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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58 ㅣ 2015.11.26

나이를 먹어가는 증거를 발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만 건망증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일제시대 소설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때 사람들은 '건망증이 많다'는 걸 '잊음이 많다'고 표현하곤 했다.

 

요즘 들어 잊음이 많아져서 낭패를 겪는 일이 잦다. 이런 저런 모임을 깜빡 잊고선 태평하게 딴 짓 하고 있다가 "왜 안 오세요?"하는 전화를 받고 화들짝 놀라는 거다.

 

얼마 전에도 모임 때문에 어떤 사무실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는 게 아닌가. 약속은 그 전날이었는데 날짜를 착각했던 거다. 부랴부랴 '카카오 톡'을 열어보니 왜 안 오느냐고 재촉하는 메시지가 달려 있었다. 그러니 약속도 지키지 않는 실없는 사람이 돼 버리기 일쑤다.

 

젊었을 때는 총기깨나 있다고 자부했는데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하고 쓴 입맛을 다시지만 그것도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테니 어쩌겠는가. 인간의 모든 기능이 퇴화하는 것처럼 기억세포가 줄어드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이란 게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부를 하고 나서 20분 후에 남아 있는 기억량은 58%에 지나지 않고 한 달이 지나면 21% 밖에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잊어버린 것을 보충하려면 당연히 다시 외워야할 밖에. 그래서 '반복학습'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건망증에 대처하는 방법도 '반복학습'일까. 휴대전화 일정표에 약속을 부지런히 입력하고 가끔 들여다보는 게 그나마 쓸 만한 방법이겠지만, 분주하게 다니다 보면 그것도 잊어먹기 일쑤다. 게다가 휴대전화조차 가끔 잃어버리고 다니니 이건 구제할 수 없는 건망증의 완결판(?)이라고나 할까.

 

하기야 인간이 희로애락의 모든 기억을 하나도 잊지 않고 산다면 그게 바로 지옥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십대의 실연이나 직장 상사에게 들었던 억울했던 질책, 혹은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고 느낀 분노 따위가 수십 년 생생하게 머리에 저장돼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면 미쳐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니 사실은 망각이란 건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축복인 셈이다.

 

그래도 그렇지 건망증이건, 기억력 감퇴이건 잊음이 많아지는 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세계의 명산 1500개의 이름을 외웠다는 작고한 어느 시인처럼 나도 기억력 연습을 해야 하는 걸까.

 

한 해의 마지막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 한 해 잊어버릴 것은 툭툭 털어버리고 기억해야 할 삶의 고갱이는 알곡 거두듯 따로 챙겨 기억의 창고에 저장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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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9 ㅣ 2015.10.26

무어니 무어니 해도 늦가을의 정취는 단풍이 으뜸일 터이다. 단풍은 최저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나뭇잎의 엽록소가 분해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 과정에서 안토시안이 생성되는 수종은 붉은색이 들고, 생성되지 않은 종은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있던 잎 자체의 노란색이 드러나 노란 단풍이 든다고 한다. 서정주의 시 구절대로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 셈이다.

 

티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어울린 먼 산의 단풍은 목석같은 사람들에게도 한 줄의 시정을 안길 법하다. 만당(晩唐)의 시인 두목(杜牧)'산행(山行)'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멀리 추운 산에 오르려니, 돌길은 비스듬한데(遠上寒山石徑斜)/ 흰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있네(白雲生處有人家)./ 수레 멈추고 가만히 늦은 단풍을 즐기니(停車坐愛楓林晩)/ 서리 맞은 잎이 꽃보다 붉구나 (霜葉紅於二月花).' 단풍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소리가 그럴싸하다.

 

소설가 정비석의 '산정무한'은 금강산의 단풍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나무의 종족은 하늘의 별보다도 많다고 한 어느 시의 구절을 연상하며 고개를 드니,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단풍뿐, 단풍의 산이요, 단풍의 바다다정말 우리도 한 떨기 단풍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리는 줄기요, 팔은 가지인 채, 피부는 단풍으로 물들어 버린 것 같다. 옷을 훨훨 벗어 꽉 쥐어짜면, 물에 헹궈낸 빨래처럼 진주홍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다.‘

 

얼마 전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이라는 신문 보도가 나오더니 잇따라 그 절정이 남부 지역의 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집 베란다에서 보는 뒷산의 수목들도 노랗게 물이 들어가고 있다. "-,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 치어다보며/ "-, 단풍 들것네". 영랑의 시 속, 누이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한 여름 억센 푸른빛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그 육질의 기억을 털어내고 물이 드는 것을 보면 인생사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청년기와 장년기를 보내고 노년에 접어들어 모든 것을 내려놓는 우리네 삶처럼 저 나무들은 단풍잎을 떨어뜨리고 나면 앙상한 나목이 되어 바람 부는 비탈에 고즈넉이 서 있게 될 것이다.

 

지난 10월은 떠들썩한 축제의 계절이었다. 잠시 일상적인 생활에서 일탈해 해방되고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것이 축제라면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남은 한 해를 차근차근 마무리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여'라고 서정주 시인이 '국화'에서 노래한 대로 거울 앞에 서서 우리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는 시간, 만추(晩秋)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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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75 ㅣ 2015.10.01

한가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만월이다. 밤마다 떠오르는 달이지만 한가윗날 밤 월광의 풍취는 자별하다. 옛 도공은 달의 이미지를 커다란 항아리로 잡아냈다.

 

이름하여 달항아리(白磁大壺). 희고 둥근 달항아리를 들여다보면 눈이 시원해져 온다. 처자의 부푼 엉덩이 같기도 하고 뽀얗게 젖살 오른 아기의 둥근 턱 같기도 하다. 그래서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달항아리를 일러 "넉넉한 맏며느리 같다"고 했을 터.

 

달항아리의 비밀은 이음매에 있다. 예전엔 이렇게 큰 항아리를 물레로 뽑아 올릴 기술이 없었다. 젖은 태토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발 두 개를 따로 빚어 맞대 포갠 후 이어 붙였다. 그래서 달항아리의 포인트는 완벽한 대칭의 조형미라기보다는 약간 기우뚱하고 뒤틀린, 그래서 어리숙한 자연미에 있다. 기교보다는 소박함을 앞세웠던 옛사람의 심성을 닮은 것이다.

 

달항아리를 즐겨 소재로 쓴 화가는 김환기다. 화가 스스로 "내 예술의 모든 것은 조선백자 항아리에서 나왔다"고 했을 정도였다.

 

몇 년 전 한 경매에서 15억 원에 낙찰된 그의 그림 '달항아리와 매화'를 두고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논리적이면서도 장식적으로 펼쳐진 매화들, 나는 새, 달빛은 간결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구성을 이루고 있다'고 평한 적도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강익중 역시 달항아리의 미학을 서구인에게 널리 알리고 있다.

 

달항아리의 또 다른 이미지는 원융(圓融)과 무애(無碍)이다. 원효선사가 "중생의 심성은 원융무애하여 태연하기 허공과 같다"고 했거니와 그윽한 달항아리를 지켜보고 있으면 보름달처럼 원만하며 거칠 것 없는 순백의 기쁨이 차오른다. 그러니 달항아리는 마음을 담는 그릇이랄 밖에.

 

올해도 어김없이 한가위가 지나갔다. 모처럼 가족친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둥근 달을 지켜보며 탄성을 쏟아내기도 했으리라. 어디 하늘에만 달이 있겠는가. 마음속에 환한 만월을 띄워도 좋을 것이다. 달을 닮은 달항아리 하나 마음의 창고에 들여다 놓고 가족과 이웃에 대한 고마움을 가득 채워도 좋으리라. '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김상옥 '백자부')을 닮은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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