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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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8 ㅣ 2017.07.28

지난 주말 오후 봄빛 가득한 교외의 바닷가로 갔다. 오랜만에 고교 동창들과의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 바닷가 근처에서 개인 병원을 열고 있는 동창이 친구들을 초청해 만든 모임이었다. 몇 명이나 올까 하고 갔는데, 글쎄 100여 명 가까운 동창들이 모였기에 은근히 놀랐다. 서울에 사는 동창들은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왔다고 한다.


 부산에 사는 친구들이야 가끔 모임을 가지니까 낯이 익지만 서울이나 타지에 사는 친구들은 오랜만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서먹하기도 했다. 심지어 졸업 후 처음 만나는 동창들도 없지 않았다. 이름도 가물가물해서 주최측(?)이 만들어준 명찰을 목에 걸 정도였으니. 그래도 고교 동창만큼 허물없는 사이가 어디 흔하겠나. 다들 아무개야, 하며 다정하게 안부를 나눴다.


 횟집 하나를 통째로 빌려 멸치회와 튀김을 안주로 떠들썩하게 술을 마셨다. 나중엔 멸치찌개까지 나왔으니 그야말로 멸치 잔치였던 셈. 향긋한 미나리에 무쳐진 멸치의 부드러운 속살이 혀에 감기면서 봄이 왔음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회식 중에 몇 사람이 일어서서 즉석 스피치를 했다. 사회를 보는 친구가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바람에 나도 일어서서 몇 마디 했다.


나를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하나 같이 왜 그렇게 늙었느냐고들 해서 좀 머쓱하긴 했다. 저희들도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주제에……. 하기야 나만 해도 요즘 들어 주름살도 깊어지고, 뒷머리도 빠지고 있으니 세월이 속절없긴 하다.


 다시 시내로 나와 노래방까지 갔다. 수십 명이 대형 노래방 몇 개를 점거(?)해 노래 부르고 춤도 추었다. 다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거운 얼굴이었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이 있었던 나는 밤 10시쯤 몰래 자리를 떴지만 타지에서 와서 따로 잡은 숙소에서 묵은 동창들은 광란(?)의 밤을 보냈다던가. 그러고서도 그 다음날엔 복국으로 속풀이를 하고 이기대 바닷가 길을 트래킹까지 했다니 체력들도 대단하다 싶었다.


어쨌거나, 노래방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데 룸미러로 나를 흘끗 보던 기사가 한마디 불쑥 던졌다. "오늘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기분 좋게 취하셨네요."


 오랜만에 동창들과 만나 얻은 활력이 내 얼굴에 배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대답 없이 빙긋 웃고 말았지만 가슴 속에 봄 향기가 가득 찬 느낌이었다. 모임을 마련한 친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여 명의 친구를 불러 모아 밥과 술을 대접하고 숙소까지 챙기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돈이 있다고 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벗에 대한 정과 성의가 없다면 선뜻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겠는가.


 문득 살아간다는 일이 아득하게 느껴져서 나는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춘기 때 같은 교정에서 만나 헤어져서는 40년을 제각기 분주히 살아가다 다시 만난 친구들의 주름진 얼굴이 차창 밖으로 흘러갔다. 아, 그렇게 또 봄이 오고 다시 봄이 가고 있었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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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5 ㅣ 2017.07.28

얼마 전 학생들과 이런저런 한담을 하다가 대학가에 십시일밥이란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한자에 약한 줄 알고 있던 터라 십시일반(十匙一飯)이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십시일밥이 맞다는 거다. 젊은이다운 재치가 드러난 신조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들이 수업과 수업 사이의 빈 시간인 공강시간에 구내식당이나 학교 근처 식당에서 그릇 씻기, 홀 서비스 등의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 대가를 돈으로 받는 게 아니라 일종의 식권으로 받는 건데, 자신들이 먹는 게 아니라 다른 학생들의 신청을 받아 그 학생들이 그 식권으로 밥을 먹게 해 준다는 취지였다.


 "왜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풍요의 시대라곤 하지만 제 손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거다. 그런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겹쳐 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 공부할 짬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 동료들이 점심 값을 벌기 위해 알바 뛰어야 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빈 시간에 노력 봉사를 하는 것. 다르게 말하자면 도서관에서 공부할 시간을 일부 떼어주는 시간 기부이기도 하다.


이런 활동이 시작된 지 3년 쯤 됐다고 한다. 학생 둘이서 식판 하나를 놓고 마주앉아 있는 걸 어느 학생이 보게 됐다고. 한 학생이 밥을 다 먹기를 기다려 다른 학생이 그 식판을 들고 음식 리필을 해 동냥밥을 먹는 걸 지켜본 그 대학생이 이런 운동을 착안했다는 거다. 처음엔 한 두 시간 자투리로 일하러 오면 귀찮기만 하다고 고개를 젓던 식당 주인들도 취지를 알고는 이들을 받아준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해졌다. 딱한 이웃을 위해 남 모르게 후원금을 내는 분들이 더러 있긴 하다. 물론 그런 분들의 따뜻한 마음도 높이 사야 할 터이다. 그래도 자신의 시간을 떼 내어 기부하는 일은 그리 흔하진 않다. 자신도 시간이 아쉬운 처지에 동료를 위해 접시 닦기 같은 허드렛일을 자청하는 일은 더 쉽지 않을 거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이름 모를 친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주는 것이야말로 진짜 동료애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글쎄,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나 할까.


요즘 학생들이 너무 귀하게 자라 조금은 이기적이고 유약하지 않나 하는 내 편견(?)을 고쳐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처럼 취업 경쟁이 혹독한 시절에 내 시간을 희생해 다른 친구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아닌가. 젊은 애들이 버릇이 없느니 어쩌니 해도, 이렇게 반듯하고 속이 깊은 대학생들은 지금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아직은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봄이다. 지금 대학 캠퍼스에도 봄빛이 찾아오고 있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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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66 ㅣ 2017.07.28

지난 2월초,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 홋카이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대학을 졸업하는 아이들에겐 졸업선물이라고 짐짓 생색을 냈지만 기실은 내가 더 들떴을 게다. 처음엔 아이들도 아버지를 위해서 따라가 준다는 듯 시큰둥했지만 막상 집을 나서니 좋아들 했다.


배낭여행에 걸맞게 컴퓨터에 붙어 앉아 내 스스로 초저가 예산으로 여행 계획을 짰다. 한 달 반쯤 전 미리 서두른 덕에 부산서 후쿠오카로 가는 국내 저가항공사와 후쿠오카에서 삿포로로 가는 일본 저가항공사의 항공권을, 값이 싼 중에서도 가장 싼 값에 예약할 수 있었다.


호텔도 싼 것을 서둘러 예약했다. 인터넷을 뒤져 날짜별로 구경 갈 곳을 미리 챙기고 맛집 정보도 찾았다. 홋카이도에서도 그때그때 따로 표를 사서 교통편을 조달했다. 덕분에 기차, 시외버스, 시내버스, 지하철 등등 모든 대중교통을 섭렵했다. 좀 고달프긴 했지만 패키지여행의 절반도 안 되는 경비로 모든 것을 해결했으니 발품 판 보람은 있었던 셈이다.


아이들과 배낭을 짊어지고 삿포로는 물론 오타루, 아사히카와, 노보리베츠 같은 도시를 도는 강행군을 했다. 며칠 동안 눈만큼은 질리도록 보았다. 쌓인 눈이 녹지 않았는데 그 위에 다시 눈이 퍼부으니 1m가 넘는 눈이 단층을 이루며 쌓여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며 본 끝없는 설경, 북해의 검푸른 파도 위로 눈보라가 쏟아지던 황량하면서도 장쾌한 풍경이 지금도 망막에 잔상처럼 남아있다. 아들과 온천욕을 같이 하면서, 이 녀석이 취업을 하고 장가를 들면 부자가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함께 목욕할 일이 더는 있을까 싶어 잠깐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그 중에서도 비에이라는 마을의 설경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점심을 먹던 중에 딸아이가 갑자기 가보고 싶다고 해서 즉흥적으로 기차표를 끊어 나선 길이었다. 시골 소읍이었는데 기차역을 나서자마자 그림엽서에서나 보았음직한 풍경이 펼쳐졌다. 첨탑이 우뚝한 공회당, 역사 앞의 시계탑, 그리고 눈에 덮여 조는 듯한 인적 없는 거리….


유령 도시에 뛰어든 침입자 같은 기분이 돼 눈을 밟으며 텅 빈 거리를 돌아다녔다. 글쎄, 유아기로 되돌아가 동화의 세계를 다시 맛보았다고나 할까. 홋카이도 대학의 카페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캠퍼스를 창밖으로 하염없이 바라본 것도 나쁘지 않았다.


쓰다 보니 놀러 다닌 자랑이 돼 버렸지만, 여행이란 분주한 삶에서 잃어버린 내면의 앨범을 다시 들쳐보는 기회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야 하는 단체여행보다 자유여행에 나선 것도 결과적으론 잘한 선택이었다. 여행 중 아이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 여행의 덤이었다.


홋카이도 대학의 카페에서 쏟아지는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나는 봄을 떠올렸다.  지난 겨울은 우리나라 전체적으로도, 그리고 그 시공간을 사는 국민 모두에게도 힘겹고 잔인한 시간이었다. 그때, 나는 다가오는 봄엔 혼란의 시간이 끝나고 세상의 새로운 질서를 짜는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마련되기를 기원했던 것도 같다. 이제 봄이 오고 있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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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73 ㅣ 2017.01.31

새해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다. 회의나 학생들 면담 때문에 학교에 가거나, 치과에 들르려고 일주일에 두어 번 외출하는 것 말고는 '히키코모리'처럼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거다. 지난 연말 이런저런 모임에 불려 다니느라 지친 터라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낮엔 집이 텅 비기 때문에 추운 연구실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 보다야 낫긴 하다.


 집에 있다고 해서 무어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봉투만 뜯어놓고 쌓아두었던, 우편으로 보내온 동료 작가들의 책을 읽거나, PC로 뉴스 검색을 하거나, 때로는 영화를 다운받아 보기도 한다. 부지런히 직장에 나가는 분들께는 미안한 소리지만 '오뉴월 개 팔자'가 아니라 '동지섣달 개 팔자'라고나 할까. 아, 때로는 청탁받은 잡문 원고를 재촉 받고는 허겁지겁 책상 맡에 앉기도 한다.


그나마 유위한 일을 꼽자면, 새 장편소설의 교정을 본 일이다. 지난해 겨울과 이번 여름방학 때 충청도와 강원도의 산골 마을에 있는 작가 창작실 한 칸을 공짜로 빌려 숙식하며 썼던 작품이다. 쓸 때는 몰랐는데 다시 살펴보니 이걸 세상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내놓아도 될까 싶어 얼굴이 붉어졌다. 게다가, 고치고 고쳐도 잘못된 대목이 자꾸 튀어나온다. 한 열흘 쯤 후면 책이 나올 텐데 이젠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배짱 아닌 배짱을 부릴 밖에.


 어디선가 읽은 글이 떠오른다. 책 3000부쯤 펴내는데 아마존이나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의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진다고 한다. 종이를 만드는 데 그만한 분량의 수입 펄프를 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만 하루에도 수백 종의 책이 쏟아지고 있으니 책 때문에 희생되는 나무는 또 얼마나 될까. 나무 한 그루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이야 말할 나위도 없다. 이산화탄소를 잡아먹고 산소를 공급하고, 홍수를 막아주면서 온난화로 치닫는 기후 변화의 마지막 파수병 노릇을 맡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문득 이 세상에 나무 한 그루의 값어치를 가진 책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아니, 내가 내는 책 한 권이 과연 열대우림 한 그루의 값어치가 있기나 한가 싶어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러니 책이란 함부로 펴낼 일도, 사놓고는 읽지도 않고 처박아 놓을 물건이 아니랄 밖에.

 
새 소설의 교정을 보면서 느낀 것도 있다. 고쳐도, 고쳐도 틀린 대목이 나오는 걸 보면서 우리네 인생이란 것도 이렇게 오류투성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 고쳤다고 책으로 펴내 놓고 나면 어느 페이지에선가 오자가 튀어나오는 게 책이다.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반성하고 바로잡아도 또 이런저런 잘못을 반복하는 게 장삼이사의 삶인 것이다. 그러니 인생이란 이름의 책을 끝없이 교정봐야 하는 게 우리네 운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 1월도 지나가고 있다. 올해의 남은 날을 교정지 들여다보듯 꼼꼼히 살펴가며 실수와 잘못을 고쳐나가야 하리라는 마음을 먹어보는 겨울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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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76 ㅣ 2016.12.28

퇴근 무렵 빈 연구실의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는 세모의 거리는 아름답습니다. 마악 어둠이 낮게 깔리기 시작하는 상점엔 하나 둘 네온사인 등불이 천천히 밝혀지고 어스름을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전조등이 환합니다. 한낮엔 살아가는 일의 아우성으로 소연했을 건너편 산동네 마을들도 지금은 어둠에 잠겨 꿈꾸듯 조용합니다. 집집마다 식탁 위에선 하루치의 시간을 소곤소곤 나누는 가족들의 정겨운 대화가 따뜻한 된장찌개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처럼 나지막이 피어오르고 있을 테지요.


하루의 저녁처럼 한 해의 저녁을 맞는 마음도 애틋하고 아쉽습니다. 총알처럼 흐르는 것이 세월이라 부푼 마음으로 새해를 맞은 게 엊그제 같은데 다시 한 해의 종착역에 서 있군요. 저물녘 텅 빈 플랫폼에 내린 나그네의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세모의 풍정이 아닐까 합니다.

생각해 보면,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올 한 해도 우리네 삶은 바쁘고 고단했습니다. 봄에는 아우성 속에 선거가 치러졌고, 한 여름 무더위에 지친 마음에 겨우 소슬한 한 줄기 가을바람을 맞는가 했더니 느닷없이 터진 전대미문의 스캔들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신문과 TV에선 차마 믿고 싶지 않은, 그래서 듣고 싶지 않는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그 결과로 거리에는 수백만 개의 촛불이 흘러넘쳤지요. 그리고 그 '웃픈' 이야기는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로 한 해를 넘기게 됐으니 내남없이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을 터입니다.


내년에도 또 숱한 일이 일어나겠지요. 나라를 다스리는 이들이 쏟아놓은 오물을 치우느라 우리는 한동안 애를 써야 하겠지요. 경제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니 서민들은 또 얼마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우리는 올 한 해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이마의 주름살이 조금씩 깊어진 만큼, 우리의 땀과 눈물이 방울진만큼,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꿔왔습니다.

지난 한 해 부지런히 일하며,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노여워도 하며 열심히 살아온, 낯모르는 이웃들에게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장삼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아마 내년에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이 우리를 찾아오겠지요.


세모의 마지막 밤, 가장들은 조금 일찍 귀가해서 소박한 저녁상을 앞에 하고 가족들과 둘러 앉으십시오. 치킨에 캔 맥주 한 잔을 나눠도 좋겠지요. 올 한 해를 살아내느라 함께 수고한 가족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빛나는 눈망울을 마주 보십시다. 한  해 동안 열심히, 그리고 무탈하게 살아온 삶을 자축하십시다.


그리하여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 아름다운 새해에의 소망을 어두운 하늘에 띄워 보십시다. 삶이 비록 우리를 속일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끝내 희망의 등불을 고이 간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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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56 ㅣ 2016.12.02

11월 하고도 하순이니 만추의 끝자락이다. 화분에 담겨 가을 내내 노란 꽃잎을 피웠던 황국도 이제는 거뭇하게 시들었고 지난 봄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목련 잎도 누렇게 변색돼 낙엽으로 하나 둘 떨어지고 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나 보다'고, 그래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이라고 미당 서정주가 읊었던 황국이 시든 것처럼 가을도 이렇게 속절없이 시들어 버렸다.


아침저녁으로 볼에 닿는 바람이 쌀랑하니 곧 겨울이 닥쳐 올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농사를 망쳐버린 서툰 농부의 심정이 되어 화살처럼 날아가 버린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글쎄, 손아귀에 가득 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줄줄 새 나가버리는 것처럼 시간은 어찌도 그리 허망한 것인지. 더구나 올 가을은 온 나라가, 온 세상이 아우성치며 뒤집어졌으니 신문과 방송의 뉴스만 들여다보다가 한 계절을 다 흘려보낸 것 같아 더 허망하다.


그래도 마당가의 은목서가 하얗게 꽃을 피워 온 집 안에 은은한 향기를 선사했던 게 그나마 지난 가을에 내가 누린 유일한 호사였다고나 할까. 잎새 사이로 하얀 쌀알처럼 피어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던 아내는 급기야 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아놓고 꽃잎을 받는 것이었다. "다 늙어서 무슨 소녀 취향이냐"고 나는 핀잔줬지만 아내는 못 들은 척 곱게 말린 은목서 꽃잎을 예쁜 그릇에 담아 집안 곳곳에 놓아두는 것이었다.


집안에 벌레가 꾀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 게 아내의 변명(?)이었지만 사라져가는 꽃향기가, 아니 흘러가는 시간이 아쉬워서 했던 노릇이라는 걸 나라고 어찌 모르겠는가. 어쨌든 새벽에 홀로 깨어나 원두를 갈아 커피 한잔 내려 마실 때 어디선가 엷게 흘러 나오는 마른 꽃향기는 머리를 개운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국향천리 인향만리(菊香千里 人香萬里), 국화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했던가.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는데 올 가을 어떤 이의 친구가 풍긴 악취는 만리 밖을 날아와 온 세상 사람이 코를 싸쥐고 분개하게 만들었다. 그 악취가 아직도 가실 줄을 모르고 더해만 가는 게 어쩌면 남은 한 해 내내 그 냄새에 헛구역질을 하며 보내야 것 같아 우울한 심사가 된다.


그래도 올 가을 그나마 국화와 은목서 향기에 취해 지냈으니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나쁘게 보낸 건 아니지 않겠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풍기는 냄새는 과연 어떤 것일까.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여야 하련만, 내게서 악취가 풍기는데도 나 혼자만 모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지나 않은가 싶어 새삼스레 걱정이 된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한 해의 마지막 캘린더를 넘겨야 한다. 남은 한 달 동안이나마 정성스럽게, 시간을 아껴가며 살아야 하겠노라 다짐하며 창밖의 마른 나무를 우러러 보는 만추의 어느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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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28 ㅣ 2016.10.26

 엊그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창밖을 내려다 보다 문득 시조 한 수가 떠올랐다. 조선 중기 함경도 경성의 기녀 홍랑(洪娘)의 시조. 고교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적이 있는 연시다.


 '묏버들 가려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밧긔 심거 두고 보쇼셔/ 밤비에 새닙 곳 나거든 나린가도 너기쇼셔.'


 선조 때의 유명한 문인 최경창이 서울로 이임할 때 헤어지면서 적어준 이 시조는 애틋한 마음을 한 줄의 시 구절에 슬쩍 감출 줄 알았던 은근한 격조를 보여주거니와 단정한 한글 글씨체 역시 당대 기녀들의 만만찮은 교양을 보여주고 있다.

홍랑의 이별하는 마음이 이렇듯 은근할진대 최경창이라고 답가가 없을 수는 없을 터. <송별>이란 칠언절구를 연인에게 주었다.


 '말없이 마주 보며 유란을 주노라/ 오늘 하늘 끝으로 떠나고 보면 언제 돌아오랴/ 함관령의 옛 노래를 부르지 말라/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고답적이고 고리타분한(?)성리학의 나라 조선에 그나마 문학적 향기를 감돌게 한 것은 이들 기녀의 덕분인 것이다. 다시 말해, 기껏해야 도학적인 훈민가 아니면 강호연군가가 고작이었던 사대부 문학의 메마른 정서를 뛰어넘어 인간적인 서정을 노래한 것은 아무래도 기녀들의 문학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왕 말이 난 김에 두어 수를 더 읽어 본다. 우선 매창의 시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더라.'


  황진이의 시조 한 수도 빠질 수 없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니불 밑에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당대의 풍류남아 백호 임제가 황진이가 죽은 뒤 그와 생전에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황진이의 묘소에서 읊었다고 전해지는 또 한 수의 시조도 잇따라 떠오른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듯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가고 백골만 묻혔느냐/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임제는 이 시조 한 수로 대간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고도 하거니와 근엄하기 짝이 없던 도학의 화신, 사대부들도 이들 기녀와의 애틋한 염문 속에서 비로소 인간의 얼굴(?)을 되찾았다고 하면 지나친 망발일까.


 느닷없이 시조타령을 늘어놓는 것은 아무래도 이제 찾아드는 만추의 감상인 성도 싶다. 혹은 현란하고 복잡한 일상에 부대끼다보니 문득 소박하고 담백한 우리 옛시조의 넉넉한 서정이 아쉬웠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설사 문학도가 아니라도 우리 옛시조 한 편쯤 읽어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터. 어쩌면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아 오래 묵힌 정담을 나누는 것이 더 어울리는 계절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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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81 ㅣ 2016.10.04

지난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집에서 뭉그적거리다가 난생 처음 염색이란 걸 했다. 제 손으로 제 머리를 염색하던 마누라가 염색약이 남았는데 버리기 아깝다고 나더러도 해보라는 거다.

 

염색이란 걸 해 본 적도, 해 볼 생각도 먹어 본 적이 없던 터라 처음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다 거듭된 아내의 꼬드김에 넘어가 얼떨결에 "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누군들 안 그랬겠나만, 이래봬도 젊어서는 새카맣게 머리숱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던 몸이다. 그랬는데 쉰 나이에 접어들고서는 뒤통수 쪽이 성글어지고 급속히 머리가 세기 시작해선 지금은 아예 반백이 돼버렸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드는 대로, 머리가 희어지면 희어지는 대로 사는 게 순리가 아니겠느냐고 그대로 놔두었던 터다.

 

실토하자면 염색을 해보기로 한 것은 "머리가 허연 할아버지 꼴로 강의에 나설 거냐"는 아내의 핀잔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닐보자기를 둘러쓰고 동글 의자에 앉아 마누라의 빗질에 머리를 맡기고 앉아 있자니 내가 어느새 이렇게 됐나 싶어 처량한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염색약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머리를 감고 거울을 마주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마의 주름살은 그대론데 머리만 새까만 꼴이 어째 어울리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론 조금은 젊어진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평소에 젊은 사람들이 노랗게, 빨갛게 염색하고 다니는 걸 그다지 좋게 보진 않았던 터인데, 내가 염색을 해보고 나니 젊은이들이 외모에 신경 쓰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까맣게 염색한 머리를 들여다보며 나와 아내는 서로 피식 웃었다. 이런 농담도 건넸다. "늙어서 부부 한쪽이 먼저 가면 등 긁어 줄 사람이 없어서 서럽다더니 우리도 이제 서로 머리 물들여 주는 나이가 됐네.“

 

언젠가 어느 신문에서 읽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배우 윤정희 씨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백 씨는 윤 씨의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주고, 윤 씨는 백 씨의 머리칼을 염색해 주고 남은 것으로 자기도 염색한다는 거다.

 

휴대폰 하나를 부부가 같이 쓴다는 그들이다. 그들은 40년이 넘게 서로 머리를 다듬어주고 염색해 주는 동안 서로를 닮아가며 함께 늙어간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게 뭐냐는 질문에 "서로 염색해 주는 것"이라고 답해도 될 지도 모른다.

 

그날 염색을 마치고 아내가 늦은 점심으로 냉면을 만들어 주었다. 마주 앉아 냉면 가닥을 후루룩 넘기다 보니 이렇게 고요하고 평범하게 늙어 갈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좁은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하는 오래된 노래도 흥얼거렸을 것이다.

 

염색을 한번 하면 머리가 웃자랐을 때 얼룩덜룩 보기 싫어져서 계속해야 한다는데 그래도 나는 이번 한번으로 끝낼 생각이다. 한번쯤은 까만 머리로 나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래도 내 본 모습을 감출 것까지야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왔다. 흰 머리칼을 까맣게 물들이듯, 찌는 듯 무더웠던 지난여름을 헤쳐 나오느라 지친 마음을 새 단장해 삽상한 바람을 맞아보면 어떨까 싶은 어느 가을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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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87 ㅣ 2016.08.26

이탈리아의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동화 '쿠오레' 이야기부터. 잘 난 체하는 귀족집 애가 얼굴과 옷에 검댕이 묻은 석탄집 아이를 더럽다고 놀린다.

 

이 일을 전해들은 귀족 아버지는 아들을 엄히 꾸짖고 여러 친구들 앞에서 사과시킨다. 선생님께도 자기 아들과 석탄집 아이를 나란히 앉혀 달라고 부탁한다.

 

어릴 때 읽은 동화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반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함께 학구로 가진 초등학교들의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한다.

 

대신 고급 아파트가 들어선 인근 학교들엔 학생 수가 크게 늘었다. 알고 보니, 일반 아파트 학부모들이 제 애를 임대 아파트 애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시키기 싫어서 위장전입까지 해 가며 옆 학교로 전학을 시키기 때문이라는 거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란 사람이 관리소장 더러 "너희는 우리 종놈이 아니냐"고 막말을 했대서 공분을 산 게 바로 얼마 전이다.

 

지난해엔 예순 넘은 아파트 경비원이 손녀 같은 여고생에게 구십 도로 절하는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도 있다. 입주자대표회의의 일부 주민들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라는 거다.

 

우리나라에선 괜찮은 아파트를 소유하고 월 소득이 500만 원이 넘으며 2000cc 이상의 중형차를 모는 사람 정도를 중산층으로 지칭하는 모양이다.

 

돈으로만 따지는 우리와 다른 나라는 사뭇 다르다. 미국 국공립학교는 중산층을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우며,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며, 테이블 위에 정기적으로 받아보는 비평지가 놓여 있는 집. 영국이나 프랑스가 정의하는 중산층도 비슷하다.

 

그 나라식으로 따지면 위장 전입한 학부모, 관리소장에게 막말한 주민대표, 경비원에게 구십도 인사를 시킨 어떤 아파트의 일부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