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들기

총게시물 : 147,   페이지 : 2/15

no images
조회수 111 ㅣ 2018.12.27

 다시 한 해가 저문다. 늘 그렇듯 연말이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진 시간의 궤적이 아쉽고 안타까워진다. 해낸 일도 별로 없는데 시간은 왜 이리 금방 흘러가버린 것일까. 지난해 이맘 때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생각나지 않는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 시간이 죽은 곤충의 껍데기 같은 잔해를 남기고 저만치 달아난 걸 느낄 때 나는 속절없어진다. 내년엔 우리 나이로 쳐서 나이 앞자리에 6자가 붙게 되기 때문이어서 더 애틋한 마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40년 가까이 사귀어온 묵은 친구 두엇과 망년회랍시고 만났다. 소주잔을 부딪치면서 올 한 해 살아온 감회를 나누고 새해에도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보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청춘시절 말갛고 고운 얼굴이었던 친구들의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카락과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살을 바라보며 나는 마음이 짠해졌더랬다. 그래도 함께 늙어가며 속내를 펼쳐 보일 벗이 있으니 또 얼마나 위안이 되는 것인지. 
 지나가 버린 한 해를 꼽아보면 이룬 것이 없어 아쉬운 마음이 됐다가도 그래도 크게 아픈 곳 없이 버텼고 큰 탈 없이 가족을 건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내 개인적으로는 소설가랍시고 지난 가을엔 책도 한 권 냈으니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너무 욕심 낼 건 없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 이것도 나이가 가르쳐 준 지혜일까. 글쎄, 그런 평범한 아쉬움과 만족감이 우리네 장삼이사가 한 해를 보내고 맞을 때 느끼는 감회가 아닐까.
 소소한 개인사를 넘어 나라 전체로 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은 한 해였다. 연초부터 북쪽에서 불어온 훈풍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국민들에게 큰 기대를 불어넣지 않았나. 우리 대통령과 북쪽의 젊은 지도자가 세 번이나 만나고 북미정상회담도 열려 완전한 평화가 금방이라도 다가올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또 그만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법이라 지금은 숨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내년엔 더 큰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 기원하는 마음이 된다.
 무엇보다도 경제가 풀리지 않아 국민들의 마음에 휑하니 찬바람이 불어친 것, 특히 젊은이들이 취업난으로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던 건 기성세대의 한사람으로서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이었다. 아무쪼록 새해엔 내 아이들을 포함해 젊은이들이 좋은 일자리를 얻어 기를 펴고 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어쨌든, 2018년은 또 그만한 크기로 인류사에 한 흔적을 남겨놓고는 시간의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흘러가는 그 시간은 지상에 머물러 사는 모든 개인들이 흘린 땀과 눈물과 환호와 비탄까지 짊어지고 있을 것이다. 시간 속에 새겨진 개인사의 이력은 참으로 미소한 것이지만, 그 미세한 실금들이 모여서 세상의 지도를 만들고 역사의 벽화를 그린다는 점에서 소중한 것. 그래서 올 한 해 우리가 그은 작은 실금을 들여다보고 새로운 한 해를 맞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할 터이다. 내년엔 부디 우리 모두에게 소확행, 작지만 확실하고 행복한 시간이 마련되기를 기원해 보는 한 해의 끝자락이다.


강 동 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no images
조회수 136 ㅣ 2018.11.28

오래 전에 통영의 동피랑 마을에 가 본 적이 있다. 바다를 낀 산동네 마을의 벽과 담장에 예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을 보고 낡은 마을도 이렇게 꽃단장을 하니 확 달라지는구나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여기저기 도시 재정비 사업의 하나로 예쁜 마을이 생겨났던 거다. 나는 부산의 감천마을, 산복도로 이바구길, 중앙동의 또따또가에도 가 봤고 마산의 창동 거리나 전주의 벽화마을도 구경했던 적이 있는 터다.


 내 기억으로는 도시재생사업이란 이름으로 전국의 각 지자체가 산동네의 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작한 게 20년 쯤 전인 성 싶다.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갖가지 도시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나. 교통 혼잡, 생활인프라 부족에다 도시빈민 문제까지 발생하면서 1980년대 들어 도시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정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는 도시재개발이란 것을 도심에 있는 빈민촌을 헐어내 번지레한 아파트나 상가를 짓는 것으로나 여길 때였다. 그러니 쫓겨나가는 빈민들의 저항이 거세 그 또한 사회적 문제가 됐던 것이고.


그래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물리적인 도시 재개발 보다는 기존의 주거지에 문화예술적 인프라를 덧입히고 생활환경을 정비하는 도시재생 개념이 등장했던 거다. 몇몇 지자체의 성과를 기초로 해서 2013년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각 지자체가 우후죽순처럼 이 사업에 뛰어들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부작용도 없지는 않다는 후문이다. 관광자원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욕이 지나치게 앞선 나머지 주민들의 동의와 참여를 얻는 데 소홀한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한옥마을로 유명한 서울의 북촌은 국내외 관광객이 너무 몰리는 바람에 정작 주민들이 사생활 노출 등 생활 불편을 호소한다고 들었다. 게다가 어떤 곳에서 벽화마을로 유명해졌다 하면 너도 나도 베끼기 식으로 마을 담벼락에 그림을 그려 넣는 바람에 특색 없는 정체불명의 벽화마을이 우후죽순 식으로 생기기도 했다.


나아가 주민들의 일상적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보다는 문화예술을 단순한 도구로 이용해서 수박 겉핥기식 치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오히려 마을 주민이 도시재생을 반대하고 나서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고 한다. 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해서 일껏 마을을 되살려 사람이 찾아드는 곳으로 만들었더니 건물주가 임대료를 대폭 올려 정작 그곳을 일군 예술가가 되쫓겨 나오는 현상도 생겨났다.


 언젠가 신문에서 동래구 온천동 역을 비롯해 부산의 7곳이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에 당선됐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러니 부산에서도 도시재생 사업이 더 활발해질 모양이다. 도시재생을 통해 슬럼화한 마을이 새 얼굴을 찾고 주민의 삶이 쾌적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 결과로 관광객이 찾아 주민 생계에 보탬이 되면 금상첨화일 터. 어쨌든 다른 지역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꼼꼼하고 체계적인, 그리고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해 주었으면 하는 게 한 시민의 바람이다.


강 동 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no images
조회수 171 ㅣ 2018.10.29

올해는 별일 없이 넘어가나 했더니 10월에 태풍 콩레이가 부산에 몰아쳤다. 그나마 치명적인 피해는 주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피해를 당하신 분들로선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혀를 차시겠지만, 갓 피어나던 집 마당의 은목서 꽃잎이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진 것은 좀 아쉬웠다.


10월에 태풍이 오는 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드문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미국 플로리다에선 허리케인이 몰아쳐 30여 명이 사망하고 50명 가까이 실종된 데다 2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났다니 콩레이는 거기 대면 온순했던 셈이다.  어쨌거나 살아갈수록 기상 이변이 심해져 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다들 아시는 대로 지난여름은 얼마나 더웠던가. 게다가 올 겨울 추위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장기예보도 나온 터다.


그런데, 내게는 태풍이 준 뜻밖의 선물(?)도 있었다.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던 옆집의 모과나무가 바람을 맞는 바람에 예닐곱 개의 모과가 우리 집 마당에 떨어져 뒹굴고 있었던 거다. 채 익지 않아 시퍼렇긴 했지만 그래도 알이 꽤 굵었다. 주워서 옆집에 돌려주려 했더니 "익지도 않은 채 떨어진 건데 가지려면 가지시라"고 하는 것이었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모과를 썰어내느라 용을 쓰는 아내에게 익지도 않은 걸  뭐 하러 그렇게 힘들여 썰고 있느냐고 핀잔을 줬다. 아내는 "아깝잖아요"하고 한 마디 하더니 잘게 채썰어낸 모과를 유리병에 차곡차곡 담고 설탕을 붓는 것이었다. 나는 핀잔 준 것도 잊어버리고는 "거, 이왕이면 모과주를 담지 그래"하고 주책없이 참견을 했다. 아내는 나를 슬쩍 흘겨보더니 집 근처의 마트에서 소주를 사와서 또 다른 유리병에다 술을 담그는 것이었다.


며칠 후 책상 맡에 앉아 청탁 받은 원고를 쓰고 있는데 아내가 유리잔에 뭔가를 담아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색의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바로 그 모과로 만든 차였다. 시음용이라는 거다. 채 익히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그래도 향긋한 향기가 물씬했다.


한 모금 마셔보니 특유의 새콤한 맛이 입안을 감도는 것이었다. 태풍 덕분에, 아니 이웃 덕분에 이 가을과 겨울엔 가끔 모과차를 마시는 행운을 누리게 된 셈이다. 게다가 향긋한 모과주를 맛 볼 생각을 하니 벌써 목젖이 짜르르해진다.
모과차를 마시다 문득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란 말이 떠올랐다. 잘 가꿔지고, 잘 만들어진 완성품이 가득 찬 세상이지만, 익기도 전에 떨어진 모과가 안겨준 작은 지락(至樂)도 있는 것이다.


어디 과일만 그렇겠는가. 사람도 매한가지인 것을.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엔 어수룩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오래 사귀어 볼수록 덜 여물고 덜 영악한 사람이 인간미를 풍기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업수이 볼 게 아니라, 잘 도닥이면 얼마든 한몫을 하는 것을. 모과차 한잔의 향기에 작은 행복을 느끼는 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강 동 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no images
조회수 166 ㅣ 2018.10.04

어느 새 다시 가을이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라는 릴케의 시 구절이 아니더라도 지난여름은 참으로 길고 무더웠다. 태풍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폭염 때문에 다들 고생하지 않았나. 어지간하면 삼십 몇도 정도는 더위 축에도 들지 못했고 영상 40도를 넘는 곳이 속출했으니.


일종의 계절 에세이라고나 할까, 새 계절을 맞는 감회를 담은 글을 가끔 쓰곤 하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우리네가 참으로 분주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안타까움 섞인 아쉬움이다. 지난봄도 그러했고, 지난여름도 그랬으니 올 가을 역시 정신없이 보내기가 십상일 터라 오지 않은 시간에조차도 벌써 애틋한 마음이 된다. 나만 해도 9월 신학기를 맞아 강의 준비를 하고 수업에 들어가느라 정신 없는 터에 여기 저기 청탁받은 글들을 쓰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추석을 앞두고는 시골 선영에 벌초도 다녀왔으니.


아직은 한낮엔 햇살이 좀 따끈하지만 아침저녁으론 한결 선선해졌다. 먼데 산의 숲은 진록의 관을 쓰고 있지만 머잖아 무관의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작가 레지던스를 핑계로 여름 내내 원주의 시골 마을에서 머무른 터에 가을여행 타령을 하는 것이 좀 염치없다는 생각이야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얼마 전 어느 잡지에서 감포 가는 길을 소개한 기사를 보고 문득 경주에서 감포로 이어지는 그 아름다운 국도를 달려가고 싶었다.


해질녘 황야의 리어왕처럼 외로이 그리고 비장하게 서 있을 두 기의 감은사지 석탑이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모습을 하염없이 보고 싶었다. 이견대 앞바다에 서서 대왕암에 철썩거리는 파도를 보고 싶었다. 가는 길목에 기림사에 들러 시원한 물 한바가지를 꿀꺽꿀꺽 마시고 남은 물일랑 절 마당에 휙 뿌려도 좋으리라.


언젠가 혼자 시골에 묻혀 사는 친구로부터, 밤에 혼자 누워있으면 가을이 오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금씩 스산함을 더해가는,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혹은 깊은 밤 저 홀로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냇물 소리를 일러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것으로 들리면 듣는 이가 청아한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 하면 듣는 이가 분노한 탓이요, 거문고가 궁우에 맞는 듯 들리는 것은 슬픈 탓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가을의 소리를 들으려면  청아한 마음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청아하려 해도 밤새 들을 냇물소리가 없는 것이 딱하긴 하지만.


아직은 피부로 실감하긴 이르지만, 어쨌든 가을이 오고 있다. 최저임금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치고, 고용도 제자리걸음인데, 서울에선 부동산 값이 다락같이 오른다고 신문들은 우울한 소식을 전하고 있긴 하다. 그래도 우리네 소시민들이야 그런 걱정은 잠시 잊고 가을을 맞을 마음의 단장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낙엽을 태우면서 갓 볶아낸 커피 냄새를 맡을 때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낀다는 이효석의 수필 한 대목을 떠올리며 가을이 깊어지기를 기다려도 좋은 시절이다.
마당을 서성이며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로 시작되는 노래 한 소절이 절로 흥얼거려지는 아침이다.

no images
조회수 163 ㅣ 2018.08.28

 더워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던 것도 옛말, 팔월 하고도 중하순을 넘기고부터는 더위가 한풀 꺾였다.

나는 여름 한철을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세우신 원주의 토지문화관에서 작가 레지던스로 보냈는데 짐을 싸들고 부산으로 되돌아 갈 날이 멀지 않았다.


이곳은 숲이 우거진 산골 마을이어서 도심 보다는 기온이 사뭇 낮았겠지만,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한 대로 무더위와 악전고투했던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제 아침저녁으로 선들선들한 바람이 얼굴에 와 닿으니 폭염이니, 뭐니 해도 자연의 순환을 이길 장사는 없는 모양이다.


 글을 쓴답시고 산골로 자청해 들어온 처지이지만, 지난여름은 너무 더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땀을 줄줄 흘리며 책상 맡에 앉아 있어봐야 노트북 자판 위에 얹힌 손가락이 열심히 놀려지는 것도 아니었던 거다. 하는 수 있나. 그럴 땐 노는 수밖에. 그래도 이 무더위를 견디게 해 준 것은 몇 권의 책이었다. 선풍기를 끼고 침대에 드러누워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노릇도 짜장 나쁘지는 않았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들은 2차 대전 이후, 2000년 이전에 나온 서양 작가들의 소설들이었다. 신 고전이라고나 이름 붙여야 할까, 밀란 쿤데라의 농담,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 르 클레지오의 조서, 이사벨 아옌데의 운명의 딸 등이 이번에 내 독서목록에 새로 등재된 책들의 이름. 명색이 작가이니 동서양 고전은 웬만한 건 찾아 읽었지만, 그래도 독서 목록에 이가 빠진 대목이 없을 수는 없다. 이번에 읽은 책들도 빠진 이 채워 넣기의 하나일 테다.


 고전이라면, 그중에서도 서양 소설이라면 딱딱하고 어렵게만 생각해 미리부터 겁을 집어먹는 게 우리네다. 하지만 한꺼번에 많이 읽으려는 욕심 대신 한줄, 한줄 거친 음식을 씹어가듯 천천히 음미하면 나름대로 단맛이 우러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한 조각. 우리는 고전문학을 중고교, 기껏해야 대학 초학년에 읽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이 들어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사실 나만 해도, 고교 시절 도스토옙스키니, 헤세니, 톨스토이니, 카뮈니 해서 기를 쓰고 읽었지만, 지금은 읽었다는 기억만 아물아물할 뿐 내용도 떠오르지 않는다. 깊이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읽었네, 하는 지적 허영을 채우려는 용도(?)였기 때문일 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 해도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읽었어도 남는 게 없더니, 삼십대 이후에 다시 읽어보니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던 것이었다.


 하고 보면, 고전이란 건 해마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수만, 수십만 종의 작품 중에서 최소한 100년 가까운 시간의 압력을 뚫고 살아남은 책이니 나름대로 깊이 있는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지 않겠나. 그걸 중고생이나 대학 신입생에게 읽으란 건, 이유식을 시켜야 할 유아에게 두꺼운 고기 스테이크를 주고 썰어먹으라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더위가 물러가고 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삽상한 바람과 함께 가을도 찾아오리라. 취직만 하면 문학과 담을 쌓고 살면서 애들더러는 세계고전을 읽으라고 다그칠 게 아니라 어른들도 짬을 내 학생 때 못 읽은 고전 한 권 쯤 읽으면 어떨까. 이제 책 읽기에 좋은 계절도 오고 있으니.

no images
조회수 162 ㅣ 2018.07.26

요즘 나는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이란 데서 여름을 나고 있다. 이곳은 소설가 고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일구신 문화공간으로 전국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두어 달 동안 집필실을 겸한 숙소와 삼시 세끼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게 하는 거다. 몇 년 전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처음 참가한 이후 이젠 방학만 되면 좀이 쑤셔 집에 있을 수가 없게 됐다. 토지문화관에 머무르는 것도 재작년에 이어 두 번째다.


숙소 뒤편으로 숲이 우거져서 그다지 덥지 않게 보내고 있다. 정 더울 땐 선풍기를 켠다. 해가 진 다음엔 땅거미가 내리는 동네 고샅을 어슬렁거리며 산책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국에 폭염경보가 내렸다는 뉴스를 접했으면서도 그다지 더위를 실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엊그제 일이 생겨 도회지를 다녀왔는데 과연 가마솥처럼 찌는 날씨였다. 에어컨을 켜둔 실내에서 바깥으로 나오기만 하면 열파가 습격하는 통에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비 오듯 하는 것이었다. 그때야 무더위를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이웃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글쎄,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두어 달간의 무료숙식이란 혜택이 내게까지 차례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좋은 작품을 써서 독자들에게 내놓으란 뜻일 테다. 그러니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지 않겠나 하고 게을러질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있다. 적어도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리며 농사일을 하시는 이곳의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면목 없을 정도로 빈둥거려서야 될 일이 아니지 않을까.


어쨌거나, 올해 더위도 심상치 않다. 지지난해도 더웠고, 지난해도 더웠으니 요즘엔 무덥지 않은 여름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니 앞으로 해마다 여름 기온이 더 올라갈 것 같아 걱정이다. 젊은 사람이야 어떻게 견뎌낸다지만 연로한 어르신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싶다. 열사병 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웃 일본은 얼마 전엔 호우로 쑥대밭이 되다시피 하더니 지금은 우리보다 훨씬 더한 더위가 덮쳤다니 그나마 그걸 위안삼아야 할지.


자치단체들도 무더위에 고생하시는 어른들을 잘 보살펴 드릴 일이다. 경로당에라도 에어컨이 잘 돌아가도록 살피고 쪽방에 사시는 홀몸 어르신들도 돌봐 드려야 할 일. 당국에만 맡길 게 아니라 우리 모두 이웃 어른들의 안부를 챙겨드리면 금상첨화이겠다.


어쨌거나, 이 무더운 날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 공장에서 작업하시는 분들, 좁은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 이웃 모두에게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그분들이 이 무더위와 씨름하면서 열심히 일하시는 덕에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은 치지만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럭저럭 돌아가지 않나.


열심히 일할 땐 일하더라도 휴가철엔 피서를 가기도 하면서 다들 이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이겨냈으면 좋겠다. 시간이야 흐르는 것이고, 또 얼마가 지나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시나브로 우리 곁을 찾아오지 않겠나.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no images
조회수 154 ㅣ 2018.06.27

선거는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라지만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다들 아시는 대로 놀라웠다. 부산에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결과에 유권자들 자신도 놀라워하는 형국이다. 부산시장은 물론 구청장들의 얼굴도 대거 바뀌었고 시의원, 구의원들의 면면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결과를 놓고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며 반기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또 너무 급격히 바뀌면 행정의 연속성에 무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결과든 그것 또한 유권자의 선택이니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 새 인물로 새 판을 짜주었으니 변화를 만들어 내 달라는 민심이 확인된 만큼 당선된 이들은 이런 유권자들의 기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하겠다.


하지만 지방선거는 어디까지나 지역의 살림을 맡을 일꾼을 뽑는 일이다. 이번 선거에선 남북, 북미회담 등 너무 나라 단위의 이슈만 부각됐을 뿐 지역 단위의 현안이 제대로 알려지고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후보의 공약이나 됨됨이가 유권자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정당 기호에 따라 줄투표를 하는 현상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건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투표일 며칠 전 선거관리위원회가 보내온 선거공보물만 해도 거의 책 한 권 분량이 될 만큼 두툼했다. 나는 쉬는 날 아침 마당가 의자에 앉아 비교적 꼼꼼하게 읽었다.


글쎄, 후보가 사라지고 전국 이슈만 남았다고 아쉬워하기 전에 보내온 선거공보물이라도 꼼꼼히 읽는 성의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두어 시간이 걸려 다 읽고 나름대로 고심 끝에 표를 줄 후보를 골라내 사전투표를 했다. 내 선택 기준은 부산,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를 실질적으로 바꿀만한 생활밀착형 공약을 누가 내세웠는지, 그리고 그걸 실행할 능력이 있는지 여부였다.


대부분 쓸 만한 사람들이 당선됐겠지만, 지역에 따라선 아까운 인물이 태풍 같은 민심에 휩쓸려 낙선한 경우도 없지는 않을 거다. 열심히 한 분이라면 언젠가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겠지. 어쨌든 인간이 만든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게 돼 있다. 정치나 행정의 영역도 마찬가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대로 선거란 것은 세상이란 커다란 그릇에 그때그때 새 술을 옮겨 담는 행위가 아닐는지.


새로운 인물들이 지방행정을 맡게 됐으니 기대를 걸어볼 밖에. 당선자들은 마음을 가다듬어 자기에게 맡겨진 공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겠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지나치게 중앙의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지역의 안살림을 잘 챙겨달라는 거다. 후미진 골목에 보안등이라도 하나 더 달아주고, 낡은 건물이 무너지기 전에 안전점검을 한번이라도 더 해주고, 굶고 있는 홀몸 어르신이나 소년 가장이 없는지 한 집이라도 더 들여다 봐 주기를 기대한다. 그게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 풀뿌리 민생이 아니겠나.


어쨌든 선거가 끝났다. 이번에 바꿔 담은 술이 향기로운 새 술인지, 아니면 묵어서 맛이 변한 막걸리인지 우리 모두 잘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일이 남았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no images
조회수 182 ㅣ 2018.05.29

상가 지역에 외딴 섬처럼 끼여 있는 낡은 단층 주택에 살다보니 어이없는 경우를 자주 겪는다. 취객들이 담벼락에 실례하는 건 다반사이고 어두컴컴한 대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곤 꽁초를 버려놓고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침에 나가보면 대문 밖이 꽁초로 수북하다. 한번은 한밤 귀갓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대문 앞에서 구둣발로 담배를 비벼 끄는 걸 목격하고는 나무랐더니 오히려 그쪽에서 기분 나쁘다는 듯 나를 노려보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근처 공사장 인부의 소행인지 편의점 도시락을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먹고는 내팽개치고 뺑소니하는 사람도 있다. 남이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를 치우자니 화도 나려니와 플라스틱 도시락 껍데기를 처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하고 보면, 우리네는 비닐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너무 많이 쓴다. 시장에 다녀온 아내의 손엔 검은 비닐봉지 두어 개가 어김없이 들려 있는 거다. 인터넷으로 가끔 물건을 사보면 제품 보호용 스티로폼은 또 얼마나 많이 넣어놓았는지. 쓰레기매립장마다 폐플라스틱 제품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으니 예삿일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이 약 3억 톤, 비닐봉지는 1조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그게 다 어디로 가겠는가. 90% 이상이 재활용되지 못하고 버려지고 또 그중 35%는 바다로 흘러간다고 한다. 태평양엔 쓰레기로 매립된, 한반도 크기의 7배나 되는 섬이 있는데 그중 90%가 플라스틱류라고.


 폐플라스틱류를 먹은 어류들이 다시 인간의 배로 들어가니 이거야말로 먹이사슬의 악순환이라고나 할까. 그걸 태울 때는 독성 가스까지 나온다. 게다가 미세 플라스틱 먼지도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적이 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이제 지구를 푸른 별이 아니라 플라스틱 별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수천 년쯤 후, 후손들이 21세기 유적지를 발굴하면 문화재 대신 플라스틱 쓰레기만 잔뜩 나오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그동안 중국에 주로 수출(?)됐는데 중국이 이의 수입을 금지하는 바람에 얼마 전엔 나라 전체가 플라스틱 쓰레기대란을 겪기도 하지 않았던가. 하고보면 쓰레기를 줄이자고 유료로 파는 쓰레기봉투도 비닐제품이니, 플라스틱에 플라스틱을 담아 내다버리는 꼴이다. 플라스틱이 자연분해 되는 데만 500년 넘게 걸린다니 큰일은 큰일이다.


 하여튼 우리의 일상생활에 플라스틱 없는 곳이 없다. 1회용 커피 잔, 페트병, 고무장갑, 고무호스…. 플라스틱이 안 들어간 제품을 골라내는 게 더 빠를 정도가 아닌가. 자동차에만 해도 플라스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 있나. 그런 판국에 3D프린터로 플라스틱 완제품을 죽죽 뽑아내는 시대에 살고 있는 거다. 그러니 내남없이 플라스틱류의 남용은 이제라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좀 불편하더라도 장바구니 들고 시장가기, 1회용 컵보다는 텀블러 쓰기, 지나친 포장용재 줄이기 등등.


 일전에 어느 모임에 갔다가 초소형 쇼핑백을 기념품으로 받았다. 돌돌 접으니 손아귀에 쏙 들어오는 크기였는데, 그걸 핸드백에 늘 넣어 다니다가 꺼내 쓰면 편리할 듯해서 아내에게 건넸다. 하다못해 물건을 살 때 무심코 건네받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라도 사양(?)하는 정도의 경각심은 갖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no images
조회수 198 ㅣ 2018.05.02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와 평범한 사람들의 속을 뒤집는 게 있다. 이른바 갑질이 그것이다. 갑질이란 건 한국에만 특유한 현상인 모양이다. 언젠가 외국인과 식사를 같이 하다가 우연히 갑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가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한참 설명해야 했다.


일부러 영어사전을 찾아봤더니, 갑질에 해당하는 똑 부러진 영어 단어가 없었다. 자신의 힘을 오용함이라거나 우두머리 행세를 함하는 식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정도였다. 하기야 갑질이란 우리말도 내력이 그리 오래된 건 아니다.


갑질이란 말의 유래는 다들 아는 대로다. 계약서를 쓸 때 계약 당사자를 갑과 을로 줄여 쓰곤 하는데, 권력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갑으로 지칭되는 데서 온 말이다. 집주인이 갑이고 세입자가 을, 고용주가 갑이고 피고용자가 을인 것처럼. 직장에선 상사가 갑의 위치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어쨌거나, 갑질이란 말이 한국에서 그렇게 자주 쓰이고 때로는 뉴스까지 장식하는 건 그 만큼 우리 사회가 불평등, 불공정하다는 뜻이겠다. 집주인이건 세든 사람이건, 사장이건 말단이건, 외국에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책임을 행사할 뿐 약자를 착취하거나 인간적으로 모멸을 주는 일이 적다는 뜻일 거다. 문명국일수록 약자에 대한 법적·사회적 보호 장치가 잘 돼 있기 때문이기도 할 터.


한 재벌가 여성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른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이번엔 그 동생이 자기네 회사가 발주하는 광고대행사 관계자에게 고함지르고 물을 뿌렸대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아버지뻘 되는 간부에게도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일상사로 내뱉었다는 고발도 잇따르고 있다. 글쎄, 자매는 용감했다고나 해야 할지.


이 집만 그랬던 건 아니다. 술자리에서 변호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폭행한 또 다른 재벌가 도련님이 있었는가 하면, 운전기사를 종처럼 부리면서 걸핏하면 뒤통수를 때린 사장님도 있었다. 그들에게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던 게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식석상에선 멀쩡히 행동하는 걸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그들의 갑질은 특권의식 때문일 터. 나는 태생부터 너희와 다르다는 오만함을 어릴 적부터 무의식 속에서 키워왔던 거다. 타인을 짓밟으면서도 "이 회사는 내 꺼야, 누가 감히 건드려"하는 오만 때문에 자기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거다. 글쎄, 그들이 평생에 한번 잘한 일이라고는 재벌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뿐일 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이런 이야기를 뉴스에서 마주치면 공연히 열통(?)이 터진다. 하기야 재벌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갑질은 자주 발견된다. 재벌의 갑질에 분개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강자의 위치에 서면 약자를 괴롭히는 걸 적잖게 봐 왔으니.


우리 사회가 꽤 민주화되고 정의롭게 됐다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나도 혹시 누군가에게 갑질을 하지 않았는지, 하다못해 식당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지나 않았는지 슬며시 찔린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no images
조회수 217 ㅣ 2018.03.30

날씨는 아직 좀 새치름하지만 어느덧 봄이다. 얼마 전 개강을 했을 때 나는 새 기분을 낸답시고 오랜만에 동네 미장원엘 가서 겨우내 더부룩해진 머리를 짧게 깎았더랬다.


아내에게 맡겨 허옇게 센 머리칼을 까맣게 염색도 했다. 염색 따위 해선 뭐하냐고 한마디 했더니 마누라님께서 "요즘 애들은 할아버지 선생을 안 좋아한다는 것도 몰라요? 젊어 뵈면 좋지 뭘"하고 반격을 해 왔기 때문이다.


 쉬는 날엔 마누라의 성화에 못 이겨 새 옷도 사러갔다. 할인 아웃렛에서 초봄에 입을 만한 콤비 정장을 한 벌 사 입었다. 내친 김에 내년 겨울에 입자고 이월상품으로 순모 코트도 아주 싸게 장만했다. 그동안 입었던 코트가 10년도 넘어 실밥이 나들나들 드러났기 때문이다.


옷을 차려 입고 매장의 거울에 비추어봤더니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젊어 보이긴 했다. 이마에 깊이 파인 주름살이야 어쩌겠느냐만. 돌아오는 길에는 옷을 사준 보답으로 맛집을 찾아가 아내에게 추어탕을 한 턱 쏘았다.


 어쨌거나 삼월의 캠퍼스는 활기차다. 젊음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거다. 강의실에 앉아있는 새내기들을 보면 어느새 봄이 왔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입시 준비에 시달렸던 아이들 아닌가. 나름대로 멋을 한껏 내 버들개지처럼 피어오른 얼굴로 재깔거리는 아이들을 지켜보면 내 기분도 따라서 좋아진다. 글쎄,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업 준비다 뭐다 해서 인생의 쓴 맛(?)을 조금씩 맛볼 터이지만 이제 막 대학의 교문으로 들어선 지금이 그들에겐 가장 빛나는 시간이 아닐까.


 오래 전 본 홍콩영화 중에 화양연화(花樣年華)란 게 있었다. 왕가위 감독이 만든 영화였는데 같은 날 한 아파트에 이사 온 남녀가 각자의 배우자가 외도하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그들도 서로 만나 외로움을 위로받지만 결국 자기네 가정으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멜랑콜리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영화 전편을 감싸 애잔해졌던 기억이 난다. 영화 제목인 화양연화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꽃다운 시절 쯤 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절은 얼마나 짧은가. 새내기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나의 꽃다웠던 시절을 떠올려 보지만 근 40년 전의 그 때는 안개처럼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그런 시절을 거쳐 지금의 내가 있지 않았나 하고 스스로를 짐짓 위로(?)해 보는 거다. 지금의 내가 인생에서 느껴야 할 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서.
 출근길에 짬을 내 일부러 한 시간쯤 걸어 다니는 온천천변에도 동백이 빨갛게 피었고 버들개지에도 싹이 텄다. 볼에 닿는 미풍에도 봄기운이 서려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살아 있음의 충일감을 느낀다. 하고 보면 내 집 마당가의 목련나무에도 총알처럼 생긴 수백 개의 봉오리가 개화를 기다리며 하늘을 향해 곧추서 있다.


곧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는 화사한 중춘(仲春)이 펼쳐지리라. 봄이다.

강동수 소설가·경성대 교수

OPEN 공공누리 - 공공저작물 :출처표시, 비영리목적으로 2차저작물 변경하여 자유이용허락    공공누리 출처표시 후 저작물 변경없이 비영리목적으로만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담당부서 정보

  • 담당부서 총무국  문화관광과   
  • 담당자황순규
  • 문의전화051-550-4074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방문자 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