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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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71 ㅣ 2011.08.30

일 년 중 제일 큰 명절은 추석이다. 설날처럼 춥지 않고 오곡백과를 추수하였으니 물질은 풍요하고 마음도 맑고 넓어져 조상님께 추원보본(追遠報本)하니 예절의 날이다.

 

차례(茶禮)나 성묘(省墓)에 술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청주, 소주에 양주까지 등장하지만 옛날에야 막걸리였고 집집마다 술을 빚어도 영남에서는 동래 산성 막걸리를 제일 좋은 술이라 하였다.

 

요즘 막걸리는 누룩을 쓰지 않고 양조장에서 찐 밀가루에 백국균을 뿌려서 만든 입국( )을 사용한다. 전통 누룩을 사용하는 것보다 공정이 쉽고 생산비도 적게 들어 1960년부터 우리나라 양조장들은 이 방법을 쓴다. 그러나 산성토산주는 전통 누룩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유일한 양조주이다.

 

산성 누룩에 대한 기록으로 '조선주조사' 1907년 재정고문부가 조사한 것을 보면 경상남도에서 사찰 승려의 부업으로 누룩을 제조 판매하였는데 동래부의 범어사는 100명의 승려가 있어 해마다 2300석의 밀을 사용하여 누룩을 만들어 부산지방에 판매하였다.

 

이후 일제시대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에서 누룩을 사용하지 못했으나 동래산성 마을 사람들은 논밭이 적은 산골이라 누룩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었다.

 

산성 아낙네들이 30리가 넘는 산 아래 구포장이나 동래장에서 생밀을 구입하여 맷돌에 갈아서 둥글납작하게 디뎠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뜨뜻한 흙방에 군불을 지펴서 곰팡이를 피운다. 다른 지방에서는 삼복더위에 누룩을 만드는데 동래산성 마을에서는 14개절 만든다. 생업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막걸리나 탁주는 같은 술, 다른 이름으로 아는데 엄격히 구분하자면 탁주가 원주요, 탁주에서 청주를 걸러냈거나 청주가 포함된 그대로인 술에다 적당량의 물을 섞어 자루나 체에 걸러낸 것을 막걸리라 한다.

 

물을 섞었으니 알코올 도수가 68도로 낮다. 그러나 산성마을 토산주는 일반 막걸리보다 2도 정도 높다. 그래서 술이 진하고 일반 막걸리보다 구수한 누룩향이 입안에 돌고 텁텁한 맛이 혀에 감긴다.

 

청주(淸酒)는 맑은 술이다. 술독에 고두밥과 누룩을 넣고 버무려 발효 숙성시키면 밥알에 든 녹말이 삭아 알코올로 바뀌고 쌀 껍질만 남은 밥알들이 동동 떠오른다. 이것이 동동주. 알코올 도수는 1416. 이름대로 술맛은 맑고 투명하니 부자들이 마신 술이요 조상 제사에 올리는 제주(祭酒)의 으뜸이었다.

 

동래 산성 막걸리에 이런 연유가 있고 그래서 부산의 막걸리가 많이 팔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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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8 ㅣ 2011.07.27

인품 고매하고 일은 성실하게 하며 왕을 충성으로 모시는 시민이 있었다. 세상은 그의 삶과는 정반대로 부정과 부패로 썩어가고 견제할 수 있는 윤리도덕이란 말은 사라진 옛말이 되었다.

 

그는 울분으로 이런 세상에 살 수 없어서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 동굴에서 살기로 했다. 산신령은 이 착한 사람이 측은하여 그의 소원을 물었다.

 

"착한 자여,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미운 자나 부도덕한 사람이라도 징벌하란 부탁은 들어줄 수 없다. 오히려 당신이 부탁하는 갑절로 미운 자에게 혜택을 주겠다. , 당신의 소원 세 가지를 말하여라."

 

"신령님 감사합니다. 생활하기 불편하오니 호화스럽지는 않더라도 저택을 주옵소서."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약속대로 너가 미워하는 도사에게는 두 개의 저택을 주겠다. 두 번째 소원은 무엇인가?"

 

"산으로 들어가면 돈은 필요 없을 줄 알고 맨손으로 왔는데 가끔 사람들 모이는 장터에 가는 수가 있습니다. 백 냥의 현금이 필요합니다."

 

그에게는 당장 백 냥이 주어졌고 미워하는 도사에게는 이백 냥이 주어졌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소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기적이 이루어지다니 정말 까무러칠 만큼 놀랍습니다. 세 번째 소원은 너무 놀라서 나를 반만 죽여주시옵소서."

 

세상이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 힘들더라도 내가 돈이 없어 생활이 궁핍하여 자녀 공부시키기 힘들더라도 그래서 외롭고 멸시 당하더라도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가 있다.

 

그러나 땀 흘리지 않고 나를 속여서 편하게 살아가는 자가 있다면 공부 많이 하여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먹물들이 지난 허가 난 도둑놈 면허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을 볼 때 그런 자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 서민 졸자들이 몰라서 속아서 땀과 눈물 젖은 푼돈을 제공하며 살아 온 것을 알았을 때, 그때 정말 죽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죽냐. 저 부당하게 돈과 권력의 조직들을 부셔놓고 죽어야지. 내가 왜 죽냐! 그렇지만 내가 저들을 물리칠 힘이 없다. 법이 있지 않느냐 하시는데 법은 당신들의 법일 뿐이다.

 

정말이지 산신령이라도 강림하셔서 무지렁이 소원 들어 주셨으면 그것도 나를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나를 반쯤 죽여주시고 저들에게는 내 몇 배의 덕을 베푸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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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9 ㅣ 2011.05.30

6월이 되면 반공의 달이라 하고 6·25를 잊지 말자는 행사가 곳곳에서 개최되었는데 요즘은 반공이란 말은 찾기 어렵고 친북 종북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공산주의 하던 나라들이 붕괴되었는데 무엇이 두려워 지금도 반공하자는 것이냐 하겠지만 세상일에 불만 불평 부정적인 사람들이 의지하는 논리와 행동을 보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5대 원칙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1879~1940)는 러시아의 혁명가로 볼세비키와 10월 혁명에 무장봉기하였다. 레닌과는 독일 강화문제로 대립했고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에 반대하여 추방되고 멕시코에서 암살을 당하였다.

 

레닌과 스탈린에 쫓겨났다고 사상이 다른 것은 아니고 권력투쟁에서 졌을 뿐이다. 70년 전에 죽은 그를 새삼 끄집어내는 것은 트로츠키의 망령이 이 나라에서 슬금슬금 활개를 펴고 있음을 알아야 된다는 이유에서다.

 

트로츠키는 앞에 나서지 않고 조금 어리석은 친구에게 완장 둘러주며 세뇌한다.

 

첫째 적을 만들어와 편을 가르게 한다. 가진 자 못가진 자, 배운 자 못 배운 자, 경영자와 노동자, 이 종교와 저 종교, 어떤 조직이건 구성원을 편 가르게 하고는 둘째, 동지와 적으로 구별한다.

 

셋째 혁명은 보수를 분쇄하는 것이다. 보수는 지금까지 영화를 누려온 집단이다. 보수를 지탱하는 저력은 보수언론이다. 보수를 변명하고 개혁을 방해하는 보수언론을 공격하라.

 

넷째, 법과 원칙은 공론에 불과하다. 기득권 세력들의 방패요 창이다. 그들이 만든 법과 원칙에서 틈새를 발견하여 선전하라. 다섯째, 우군은 철저히 지원하고 적은 멸망 때까지 공격하라.

 

그렇게 하더라도 이론가는 나서지 말고 완장 차고 나선 행동대원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라.

 

예를 들자면 농노에게 완장을 채워라. 그리하면 그 머슴은 자기 주인 지주부터 죽창으로 징벌할 것이다. 피를 보는 쾌감. 그 쾌감은 다시 울분을 만들고 그래서 정의는 승리한다고 그대는 새 역사의 창조자가 된다고 뒤에서 지하에서 조종하는 사람이 있다.

 

성공하면 등단하여 이용한 행동대원에게 누명을 씌우고 실패하면 자기가 부려먹은 행동대원들의 실적을 고발한다. 숨어 있었으므로 동지를 배신하였으므로 입신양명 할 수는 있겠지만 사악한 배신에는 배신이 따른다.

 

친북 종북을 자랑처럼 외치는 자들의 뒤에는 트로츠키의 망령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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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416 ㅣ 2011.04.26

동래에 살고 있는 어느 시인의 얘기다. 연전에 칠순을 넘겼으니 노시인이라 하겠으나 60년간 시를 썼지만 금년에야 시집 산에서 듣다한 권을 냈으니 이웃에 사는 분들도 그가 시인인줄 모른다.

 

50년대에 진주사범 나왔고 앉으나 서나 고향 진주 자랑하고 진주 출향 문인 전국 모임인 남강문우회의 초대 회장을 지냈으니 문단에서는 알아주는 분이다.

 

이 양반이 동래에서 40년 넘게 살고 보니 자기 고향 진주와 지금 살고 있는 동래는 비슷한 사례가 많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란 3대첩에 꼽히지만 왜군이 재침하였을 때는 군관민 6만명이 최후까지 항전 하였으나 끝내는 장렬한 최후를 감내한다.

 

동래도 1592413일 왜군이 침입했을 때 동래부사 송상현과 군관민이 왜적에 대항하고 순절한 절신(節臣)의 충절이 배인 곳이다.

 

행정으로는 진주 목()이 서부 경남 일대를 관할하고 동래부사가 동남 일대를 관할하였다. 임란을 겪고 진주 병사 김태허는 진주성에 대포문 12개를 증축했는데 부산 개항 때 동래 마안산에 포대를 만들어 대포산이라고도 불린다. 서장대 북장대는 동래 진주 두 곳에 있고 사람들 심성까지도 정 많고 꼿꼿한 성깔 그대로 닮았다고 한다.

 

학소대 상춘정, 시회(詩會)를 막 파한 한량들 갓 도포 차려 입은 양반 체면에 곱사춤 문둥이 춤을 출 수 없으나 학춤은 넋을 잃고 본다.

 

보다가 저도 모르게 어깨춤 들썩이는 모습은 촉석 씻고 흐르는 진주성에서도 본다. 양념은 그만치고 이제 진주사람 동래 시인 선생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제목은 '대포산'이다.

 

동래 진산(鎭山) 구월산에서 뻗어내려

동래고을 병풍처럼 푸른 산

말안장 닮아 마안산(馬鞍山)이라 이름 붙였지만

두 개의 산봉우리가

여자의 봉긋한 젖가슴으로 보이기도 해

좀 민망스러운 이름 유방산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개항 직후 산마루에 포대(砲臺)를 쌓아 생긴 이름

대포산이 동래사람들 입엔 더 달갑게 불린다.

그 대포 밀려드는 외세 앞에

크게 힘 한 번 썼을까마는

그래도 고을 뒷산에 대포가 있다는게

얼마나 든든했을까

대포 놓였던 자리쯤에 세워진

3·1운동 기념탑 돋을 새김에는 낯익은

동래사람들이

대포산이 흔들리도록 진종일 대한독립만세

외치고 있다.

 

이 시를 지은 분이 동래 명륜로250번길 25에 살고 있는 정재필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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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8 ㅣ 2011.03.30

지난 315일 오후 2시 민방위 훈련을 알리는 사이렌이 전국에 울리고 있던 바로 그 시간 도시철도 노포동 방면 어느 지하철역 승객이 붐비지 않는 시간이었다. 역내로 들어온 차 문이 열리자 내릴 사람이 하차하려는 틈새로 먼저 타겠다고 앞사람과 내리는 노약자들을 밀어붙이고 승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손님이 타고 문이 닫혀야 차는 출발한다. 충분한 시간이 있는데 왜 그러느냐. 앉을 자리라도 있다면 차지하겠다고 그럴 것이다. 연세 많으신 분도 그랬고 젊은이들도 그랬다.

 

그 시간에 등산을 하려는지 하산했는지 모르겠으나 히말라야에 오를 만큼 큰 배낭에 최고급 등산복 입고 등산화 신은 건장한 사람들도 빈 의자 차지하겠다고 돌격하는 용사처럼 진입하고 있었다.

 

평소에 자주 보는 광경이었지만 이날은 무심상할 수가 없었다. 며칠 계속 지진과 쓰나미로 고통당하고 있는 일본 소식을 듣고 보면서, 죽음의 공포를 안고도 질서와 인내를 지켜내는 일본 시민들의 모습에서 감동이나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인가.

 

평상시에 그러했다 하더라도 민방위 훈련 사이렌이 아직 들리고 방송은 행동요령을 계속 알리고 있는데 이럴 때라면 팽개쳤던 질서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유식한 분들은 논리 세워 말한다. 어린아이 때부터 한국 부모들은 '이겨라. 이기려면 빨리 하라'고 가르친다.

 

일본 부모와 선생님은 '메이와쿠(迷惑)'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급하지 않는 시간에 급해서는 안 될 공간에서 급하지 않는 짓을 습관적으로 한다.

 

빨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남에게 폐를 끼친다면 잘못된 것이다. 내가 하는 짓이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기본 약속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도 방송을 통하여 보았다.

 

도로가 망가지고 폐허가 된 도시, 그래서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거리.

 

그 부서진 도로 저쪽에 신호등 하나 붉은 불, 일본 사람들은 파란불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훌륭하다거나 우리가 배워야 할 바가 많다고 하더라도 찬사는 예가 아닐 것 같지만 각성할 것을 보고도 깨우치지 못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 첫 번째 도리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재앙을 입은 이웃 일본을 돕는 일이다. 우리 모두 일본 돕기에 동참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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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9 ㅣ 2011.02.28

23일이 설날, 그 다음날 4일이 입춘, 열흘 지나서 14일에 눈이 내렸으니 정월 보름 사흘 전이라 서설(瑞雪)이라 하겠는데 구제역으로 신산하고 영농시설이 붕괴되고 교통수단은 마비되고 뚫렸다는 눈길도 연쇄충돌이었으니 오는 봄 시샘하는 춘설이라지만 행적(行蹟)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하나 빨리 녹아버리기 때문인지 눈에 대한 비난도 오래가지 않는다. 봄 꽃, 여름 녹음, 가을 단풍 좋다지만 온 세상 흰 비단으로 감아 봄 생명 불러오는 눈처럼 아름다운 계절의 상징도 드물 것이다.

 

꽃 녹음 단풍은 생물이라도 움직이지 않지만 눈은 생물이 아님에도 유연 활발하고 소리 없기는 같으나 내리는 눈발을 보면 온 세상이 고요한 환호성을 내지르는 듯하다. 눈 오는 소리를 '사락사락'이니 '뽀드득 뽀드득'이라고 표현한 글들이 있지만 그것은 눈 오는 소리가 아니고 눈 밟는 소리 아닌가.

 

저렇게 흩날려 오는데 소리 없어 안타깝다면 시인 김광균의 설야(雪夜)에 절창이 있다. 눈 내리는 때는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순수의 절정인 백설에 하필이면 야한 글귀를 인용했느냐고 못마땅하게 생각하신다면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 식물은 움직이지 못하나 눈은 자유롭다.

 

김진섭 선생은 순치(馴致)할 수 없는 고공무용, 길들일 수 없는 짐승의 하늘무용이라 했으니 자유와 힘과 아름다움이 백설에 있다고 하겠다.

 

폭설의 피해를 알면서도 눈을 반가워한다. 반가움을 짐짓 어른스럽게 말한다. '눈이 오면 좋아서 날뛰는 것은 아이들과 개뿐이다.'

 

요즘 아이들 옛날과 달라서 눈 내리다고 기뻐 뛰고 눈싸움하는 것 보기 어렵다. 개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출산이 적으니 그럴 것이요 개는 따뜻한 집안에서 숙식하는 애완견들이라 눈 볼 수 없는 개 평생 아니겠는가.

 

아이들도 개도 환영하지 않으니 눈도 이상한 마음보로 세상일을 방해한다. 심사(心思)를 부린다. 길이 막히고 자동차가 미끄러지고 눈 무게를 못 이긴 건물이 붕괴되고 운송되고 선적되어야 할 화물이 시간을 넘기고 야채와 고기의 가격 순위가 바뀐다. 세상일을 이렇게 섞어놓고는 눈은 나 몰라라 한다.

 

나는 태고부터 이렇게 내렸다. 나무에 흰 솜옷 입히고 산천을 씻으며 추악한 것들 깨끗하게 덮어주노라. 그러나 눈이 덮는 것은 외양(外樣)일 뿐 세상사에 움추린 내속까지 씻어주지 못하여 눈 맞으며 흘리는 이 눈물은 눈물[眼淚]인가 눈물[雪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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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45 ㅣ 2011.01.27

올해는 열심히 뛰어보겠다던 중소기업 경영하는 김사장이 2월 달력을 보고 작심 한 달 만에 온 몸에 기가 빠졌다.

 

일 년 열두 달 중에서 11개월은 30일 이상인데 2월만 28일이요. 음력설 연휴가 있지요. 놀 토()2일이요, 일요일 4일 합하면 28일 중 9일은 휴업이다.

 

일 년 중 2월이 제일 춥다. 소한 대한이 정월에 지났으니 이제 얼어 죽을 내 아들이 없다고 큰소리치던 아버지가 입춘 추위에 돌아가셨다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2월은 춥다.

 

설이 있는 2월이라 쉬는 날이 많다지만 농경국가 그것도 4계절 분명한 나라들의 겨울은 한 달 내내 농사 일이 없어서 설 기분에 젖어 놀았다.

 

우리 풍속은 음력 설날부터 상원(정월보름)까지 설이요, 중국은 정월 한 달 동안 가게 문 닫고 이웃끼리 친척같이 즐기며 지낸다.

 

날씨 춥다고 그냥 방콕 생활만 할 수는 없다. 올해 농사 잘되라고 하늘에 빌기도 하고 몸에 힘 돋우는 운동도 하고 농사일은 협력하는 일이라 온 동네가 모여 단합대회도 열어야 한다. 이런 일들을 잘 어울러 놓은 것이 줄다리기, 부산 사람들은 줄땡기기라 한다.

 

동래 줄다리기도 유명하였다. 준비기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 하고 경비도 많이 들어 중단된 적도 있지만 동래야류 동래지신밟기 동래고무 동래한량무 동래학춤은 기영회 등의 관심으로 이어져 왔다.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백성의 단합을 염려해 1930년부터 중단됐다가 1969, 1984, 1996년에 각각 재현됐던 동래줄다리기가 지난해 동래읍성역사축제 때 온천장에서 다시 열려 관심을 끌었다.

 

사실은 지금 보존되고 있는 동래야류나 학춤 등은 정월보름 메인이벤트인 줄다리기를 하고 나서 뒤에 이어진 순서였다. 당시 낙민동 너른 마당에서 23일 정도로 접전하였으니 정월의 농민의식 전통문화 축제로 필요한 행사였다.

 

줄다리기는 동래를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힘을 겨루었다. 세병교에서 동래구청, 복천동으로 이어지는 길을 경계로 안락 연산 민락 거제 양정 수영 해운대 기장 좌천이 동부요, 명륜 복천 온천 사직 서면 초읍 연지 장전 금곡 구포까지를 서부 팀으로 만들었다. 수안동은 동부와 서부로 반씩 나뉘었다.

 

줄다리기에서 이긴 편이 동래야류를 공연했는데 동서 양편이 준비한 내용이 달라서 야류의 내용이나 춤, 탈의 모양까지 원형은 이것이다 하고 고집하지 않는다.

 

줄다리기하는 동안에 고사 지내기, 지신밟기, 마을마다 당산에서 풍년 기원 고사를 지낸다. 옛 동래에서의 정월은 사람이 노는 달이 아니고 단합하여 신과 접속하는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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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0 ㅣ 2010.12.29

정초가 되면 가까운 사람들끼리 덕담을 나눈다. 하는 일마다 뜻대로 잘되기를 기원하며 나누는 인사다. 그런가하면 점집을 찾아서 신년운수를 짚어보는 사람들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들의 점괘가 때때로 인생의 화두인양 싱겁고 재미있다.

 

옛날 어느 날,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세 사람이 장안에서 용하다는 도사를 찾아갔다.

 

"도사님. 저희 세 사람이 올해 과거에 붙을 것인지 떨어질 것인지 운수를 좀 봐주세요."

 

도사는 말없이 한참을 꾸무럭거렸다. 그러다가 드디어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이것 밖에 알려 줄 것이 없네. 말을 더하면 천기가 누설되어 해롭다네."

선비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문을 나섰다. 그러자 정작 몸이 단 것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사의 제자였다.

"아니, 도사님.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 난 할 말을 다 했다네."

"손가락 하나를 들어 보이셨는데, 세 사람 중 한 사람만 합격한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네."

"두 사람이 합격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한 사람은 떨어지고, 두 사람 합격한다는 뜻이니라."

"세 사람 다 합격하면 어쩌시려고요?"

"한 사람도 안 떨어진다는 것이지"

"세 사람 다 떨어질 수도 있는데요?"

"어허! 한 사람도 합격하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쯧쯔쯔……."

 

도사는 치켜든 손가락 하나로 변화무쌍한 점괘를 뽑아냈다. 용한 도사는 금세 소문이 나는 법, 시간을 거슬러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줄을 이었다. 우리 아들이 대학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지, 어느 대학을 가야 하는지 아우성이었다.

 

그러자 도사는 황급히 손바닥을 펴 흔들며 피하고 말았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입시제도에 손사래를 치고 만 것이다.

 

옳거니! 도사의 제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 수 깨쳤다는 듯 소리쳤다.

"오리무중!"

 

불확실성의 시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고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시대일수록 신통방통한 천기(?)가 함부로 누설되어 세간이 어지럽다.

 

그만큼 사람들의 심리 속에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하고 가르쳤고,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라고 가르쳤다.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이 만사형통으로 가는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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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29 ㅣ 2010.11.29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소설가 S선생은 사회생활에 객기가 있었거니와 그의 작품들도 액션이 강하고 남성적이다. 세상이 부패하고 비도덕적인 상황을 볼 수 없을 때 그의 비분강개는 폭발한다.

 

"내가 죽을 때. 가령 치료되지 못할 병으로 희망을 잃었을 때. 어차피 나는 죽은 인생이니까 이 세상을 불편하게 만드는 놈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자폭으로 청소하고 갈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선생께서 급성인 폐암으로 입원하셨고 곧 저명한 의사선생 많다는 서울의 대규모 병원으로 옮기셨다.

 

문병 갔던 친구가 웃기려고 말했다.

"서민의 삶을 훼방하는 사이비 지도자들이 많은 서울로 간다. 중환으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서울로 간다니까 친구들은 서울에 큰 사고 나겠구나 걱정 반, 기대 반인데 거사 계획은 세웠는가?"

 

S선생 말 할 기력도 없겠지만

"아직은 내가 죽을 때가 아니야.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요. 그리고 내가 비록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나쁜 녀석들 세상의 암적 존재인 그들을 소탕할 생각이 없어요. 세상사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구요. 힘이 없으니까 용기가 없으니까 의지가 약하니까 이런 변명을 하는구나 그러시겠지. 이 세상 떠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용서뿐이야. 나처럼 뒤늦게 용서하지 말고 살아있는 오늘 하루하루의 인연들을 용서하는 삶이 되기를 바라네."

 

문병하고 부산으로 가려는 친구에게 그가 읽고 왔던 책을 주면서 "재미있다네."

 

책은 십자군의 정화요 기사도의 상징인 "사자왕 리차드"를 소설같이 쓴 전기였다. 10년 재왕에 8년을 전쟁 원정으로 전장에서 싸웠고 이겼다. 수없이 날아오는 화살을 막고 창검을 떨어뜨리게 했던 용맹무쌍한 그의 일생도 마감의 시간은 피할 수 없었다. 프랑스의 필립 왕과의 전투에서 적군 병사가 쏜 화살을 맞고 중상을 입었다. 리차드의 병사들은 왕을 쏜 사수 버르탕··구르동을 체포하였다.

 

리차드는 단칼에 포로의 목을 칠 것 같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침착하였다.

"젊은 병사여! 너를 용서하겠다. 신하들이여 이 포로를 석방하라!"

그리고 덧붙여서 "사슬을 풀어주어라. 100실링을 주어 돌려보내라." 말을 끝내고 리차드는 숨을 거두었다.

 

자네 어학실력으로 읽기나 하겠느냐면서 S선생이 준 그 책의 마지막이 그렇게 적혀 있었다.

Take off his chains, give him 100shillings, and let him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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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40 ㅣ 2010.10.28

여섯 남매를 낳으신 우리 어머니는 자식들의 생일 때쯤이면 자주 몸살로 앓아 누우셨다.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열심히 미역국을 드셨다. 내 몸속에도 그와 비슷한 기억회로가 있는 것 같다. 백일장 현수막을 보면 괜스레 설레는 현상이 그것이다.

 

나는 백일장 선수였다. 선수는 '어떤 일을 능숙하게 잘하는 사람'이나 '습관적으로 자주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의 경우는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때까지 선생님을 따라 매번 백일장을 섭렵하였으니 선수라고 해도 그리 과한 표현은 아닐 것 같다.

 

'선수'와 비슷한 느낌으로 ''이라는 말이 있다. '일꾼' '소리꾼' '춤꾼' 등을 이르는 말인데 '노름꾼' '사기꾼'으로 넘어오면 어감이 영 불량해진다. 글 쓰는 사람에게 '글쟁이', 신문을 만드는 사람에게 '신문쟁이'라고들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일의 전문성을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살짝 비틀거나 꼬집어보고픈 불량성이 엿보인다. 그런 맥락으로라면 선생님을 따라 매번 백일장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이나 '쟁이'보다 '선수'로 불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백일장은 조선조 태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임금이 성균관 학생들에게 친히 시무책(時務策)을 구한 것인데, 이것은 관리임용과 무관하게 과거 지망생·낙방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고,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임금은 젊은 유생들에게 당대의 급한 일에 대해 의견을 구하고, 시사 이슈에 대한 비평의 장을 펼쳐 주었다.

 

따라서 유생들은 잘못된 것 부정적인 것을 마음껏 글로 표현하고, 임금은 그 중에서 잘 된 글을 뽑아 연회를 베풀었다.

 

그 후 백일장은 각 지방 수령이 과거형식을 본떠 관할구역내의 유생들에게 즉석에서 글재주를 겨루게 하였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국가나 여러 단체에서 본래의 뜻을 살려 어린이· 학생· 일반인 상대로 시, 시조, 산문의 수작을 뽑는다.

 

그러나 백일장도 가끔 난장판이 되곤 했다. 목민심서에 이르기를, 조선조 후기에 들어 학풍이 문란해져 일자무식꾼도 남의 글을 빌려 시험지를 내고, 수령의 자제가 심사위원이 되고, 심지어 기녀(妓女)까지 관여하여 등차(等次)를 메겼다고 한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글제를 가지고 수령을 마구 욕질하다 포박되기도 했다니 말해 무엇 할까.

 

요즘도 마찬가지다. 재주도 없는 놈 데리고 나와 여러 사람 눈치봐가며 고쳐주는 인솔자, 미리 써온 연습장을 열심히 뒤적이는 놈,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아 적는 놈, 그걸 보고 항의하는 학부모·······.

 

역사란 언제나 현실에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백일장이 열리면 글쓰기에 여념 없는 문사(文士)들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 손이라도 한 번 잡아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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