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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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3 ㅣ 2020.12.28


조선 500년 뛰어넘는 고려가요

정과정곡은 국보급이다. 고려가요 가운데 유일하게 지은이가 알려져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에 실렸다. 시험에 곧잘 나와 달달 외우는 학생도 꽤 됐다. 시험 때문에만 그런 게 아니고 사춘기와 맞물려 순정한 마음을 파고드는 무엇이 있었다.
내 님이 그리워 우니나니/산 접동새와 난 비슷하요이다. 여기서 님은 임금을 지칭하고 전체로는 임금을 그리는 사모곡이라고 교과서는 설명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멋들어지게 낭송할 생각에 외우고 또 외웠다.
나는 등단 초기 정과정곡을 비장의 카드로 썼다. 서울 문인 야코를 죽이는 회심의 한 방이었다. 그들이 부산에 오면 자갈치니 광안리는 필수 코스였다. 해산물 접대를 잘 받고서는 고작 한다는 질문이 부산에 문화다운 문화가 있느냐?는 거였다. 오만하고 방자했다.
질문 의도는 불순했다. 생선 비린내 갯가 부산에 고급스러운 문화가 어디 있겠으며 조선 500년 도읍지 한양을 앞서는 문화가 어디 있겠느냐는 통박이었다. 실컷 재롱부리고 뺨 맞는 격이었다. 내 돈 써가며, 내 시간 내가며 대접했건만 부산은 그들에게 사농공상 맨 아랫자리였다.
그때 들이댄 게 정과정곡이었다. 조선 500년 역사가 아무리 두꺼워도, 조선 500년 문화가 아무리 고고해도 국보급 고려가요 정과정곡보다는 한 수 아래일 터. 서울 문인 역시 정과정곡을 익히 접했으니 내 말귀를 금방 알아듣고 꼬리를 내렸다.
정과정곡은 부산을 대표하는 문학이다. 정과정곡을 어디서 썼느냐 하는 데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과정곡과 불가분이던 고려 정자 정과정이 부산에 있었고 정과정곡을 기리는 정과정유적지가 부산에 있고 정과정곡을 쓴 이의 증조할아버지 묘소가 부산에 있고 무엇보다 지은이가 동래정씨다.
지은이는 정서(鄭敍). 고려 인종 때 사람이다. 인종은 1122년부터 1146년까지 임금으로 있었다. 정서는 잘 나갔다. 어머니가 고려 왕족인 개성 왕씨였고 부인의 친언니가 인종의 부인, 왕비였다. 그러니까 인종과는 동서지간이었다. 그런데 줄을 잘못 섰다. 인종 장남을 밀었는데 차남이 왕이 되었다. 결국 무고를 받았고 부산 유배형에 처했다.
정서가 얼마나 심란했을지는 불문가지. 왕족 신분에서 하루아침 유배 죄인으로 전락했으니 세상만사 허망했으리라. 수영강변에 정자를 짓고 세월아 네월아 했다. 오이밭을 일구며 오매불망 애타는 심정으로 음유시인이 됐다. 훗날 정서의 호 과정(瓜亭)을 따 정자를 정과정이라 부르고 정서가 짓고 읊던 노래를 정과정곡이라 했다.
귀양살이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동래에서만 6년을 지냈고 거제도까지 포함해 도합 19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귀양살이 떠나기에 앞서 인종 다음 임금 의종은 "이번 일은 부득이한 것이니, 곧 풀려날 것이다"라고 언약했지만 허사였다. 의종은 좀 심했다. 의종 11년(1157) 첫 왕자 탄생 기념으로 대사면을 단행했으나 정서는 오히려 더 먼 거제도로 이배됐다. 귀양살이 끝내고 개경으로 돌아간 건 무신정변으로 의종이 시해되고 다음 임금이 즉위하고 나서였다.
정과정 있던 자리는 1740년 발간 동래부지에 나온다. 동래부 남쪽 10리다. 다른 고서엔 좌수영에서 북쪽으로 3리 떨어진 강기슭이라 했으니 지금의 수영하수처리장에서 F1963 일대가 된다. 부근에는 정과정유적지가 있다. 정과정곡 시비와 400년 보호수 팽나무, 경암 바위가 볼 만하다. 경암(鏡巖)은 바위 표면이 매끈하여 사람 얼굴이 비친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하마정 정묘(鄭墓)도 정과정곡과 연관이 있다. 정묘는 조선 8대 명당이란 곳에 들어선 묘소. 묻힌 이가 정서의 증조할아버지 정문도다. 정서가 유배지 부산에 있는 6년 동안 할아버지 묘소를 찾는 일은 잦았을 것이다. 제사 때도 찾았을 것이고 마음이 울적한 날도 찾았을 것이다. 8대 명당 탁 트인 풍광을 보며 간밤에 쓴 시를 낭송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과정곡과 동래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정과정 있던 곳은 수영강변이고 증조할아버지 묘소는 부산진구라서 고개 갸우뚱대는 이가 왜 없을까. 하지만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게 앞서 언급했듯 정과정곡 지은이 성씨다. 동래정씨는 조선 3대 명문가. 전주이씨, 안동권씨 다음으로 재상이 많이 나왔다. 그러므로 동래는 예부터 떵떵거리던 명소였다. 문학도 그랬다. 예부터 떵떵거렸고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 간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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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 ㅣ 2020.12.28

현판 부착, 업적 안내판 설치
캐릭터조형물… 포토존 마련
박차정 의사 생가 입구 공터에 동래의 독립운동가 가문인 박차정 의사의 가족사 전시공간이 지난 7일 조성됐다.
이는 가장 먼저 독립유공자(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가 된 박차정 의사에 이어 큰오빠 박문희 선생(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 둘째오빠 박문호 선생(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한 집안에서 독립유공자가 무려 3명이 배출됐음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
동래구는 삼남매가 모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음에 따라 박차정 의사 생가 입구 공터를 매입하고 가족사 전시공간을 조성했으며, 대문에는 박문희·박문호 선생의 생가임을 알리는 현판을 부착했다.  
또 생가 입구 공터에 있던 매실나무 7그루를 동래읍성역사관으로 옮겨 심고 그 자리에 독립유공자 삼남매의 업적 안내판과 인물 캐릭터 조형물을 설치해 방문객들이 삼남매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도 마련했다.
한편 박차정 의사 생가는 동래구 명륜로98번길 129-10(칠산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5년 7월 복원돼 동래구에서 줄곧 관리해 오고 있다. 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동래구는 2019년 5월 9일 박차정 의사 생가 앞 명륜로98번길 도로 일부구간에 처음으로 박차정길이란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
 
 문화시설사업소(550-6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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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 ㅣ 2020.12.28

동래건축문화상 최우수작
우수작은 단독주택 등 2개
2008년부터 아름다운 건축문화 확산 및 도시경관 조성을 위해 동래구에서 매년 시행하고 있는 동래건축문화상 수상작이 선정됐다.
이번 공모전은 동래구 관내 2020년 사용 승인된 건축물 중 응모된 작품을 대상으로 11월 24일부터 이틀에 거쳐 동래구 건축위원회 심의를 통해 최종 수상작품을 선정했다.
건축위원회는 건축계획의 독창성과 건축물의 배치 및 평면계획의 합리성뿐만 아니라 외부디자인의 시인성에 초점을 맞추어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결과 최우수상은 명륜동 283번지 지상에 지어진 제이케이 스크린골프장 건축물(설계자 이지건축사사무소 박수정)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제이케이 스크린골프장 건축물  〈사진〉은 기형적인 대지 성격을 그대로 살리면서 동래향교에 인접한 대지여건을 감안해 전통적인 문살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돛단배 형상의 경관조명인 수직루버를 통해 입면의 선적인 요소를 강조한 부분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우수상으로는 온천동 1450-78번지 지상에 지어진 단독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이 복합된 건축물 1개소가 선정됐다.수상작은 지난 12월 9일부터 동래구 임시청사 2층 복도에 전시되고 있으며, 수상 건축물에는 황동으로 제작된 동래건축문화상 명패가 부착된다.
 건축과(550-4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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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 ㅣ 2020.12.28

이달 말 완공 예정
레이저 조명 등 새로운 볼거리
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 환승광장(온천동 527번지)일원에 은은한 빛으로 장식된 야간경관 조명이 설치돼 새로운 볼거리가 제공된다.
동래구는 2020년 관광수용태세 개선사업으로 사업비 2억 원(국·시비 각 1억 원)을 확보하고 도시철도 동래역 환승광장에 전통과 문화를 품은 행복도시 동래를 반영한 테마가 있는 야간경관 조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달 말 완공 예정인 이곳에는 아트 폴 9개를 활용해 교각하부 천정과 바닥에 레이저 조명등이 비쳐진다. 또 교각 1개소와 가로등 3곳에는 그림자조명등이, 공원 내 수목에는 투광등과 교각 1곳에 LED조명등이 각각 설치된다.
동래구 관계자는 "동래역 환승광장에 조성되는 야간경관 조명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구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새해에는 소소한 일상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화관광과(550-4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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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 ㅣ 2020.12.28


전염병이 극성한 동래부에 別 祭를 설행(設行)할 것을 청하는 議政府의 계(啓)
원문
府啓曰, 卽見慶尙監司李根弼狀啓, 則東萊等十餘邑 氣滋蔓, 民情驚慘, 先事祈禳, 恐不可已, 別 祭及今設行事, 請令廟堂稟旨分付矣, 怪 之氣, 有熾無熄, 禳 之方, 宜 勿徐, 別 祭斯速設行, 香祝, 依已例, 令該曹磨鍊下送, 何如, 答曰, 允.
국역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경상감사 이근필(李根弼)의 장계를 보니, 동래(東萊) 등 10여개 고을에 돌림병이 만연하여 백성들의 실태가 놀랍고 참담하니, 일에 앞서 재앙을 물리치는 제사를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 별려제(別 祭)를 이번에 거행하는 문제를 묘당에서 품지하여 분부하도록 하십시오. 하였습니다. 괴질(怪疾)의 기세가 치성(熾盛: 불길같이 맹렬함) 하기만 하고 수그러들 줄 모르니 재앙을 물리치는 방도를 늦추지 말고 속히 강구해야 하겠습니다. 별려제를 신속히 거행하도록 향과 축문을 전례대로 당해 조(曹)에서 마련하여 내려 보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별려제(別 祭)는 특별히 지내는 여제( 祭)를 이르며, 여제는 나라에 전염병이 돌 때에 지내는 제사를 말함. 설행(設行)은 베풀어 행하다는 뜻이며, 계(啓)는 관청이나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올리는 말.

출 처 : 국역비변사등록 260책
수록일 : 고종 16년 1879년
    8월 1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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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 ㅣ 2020.12.28

12월 8일부터 본격 운영
예술인 복지서비스 지원
부산문화재단(대표이사 강동수)은 부산예술인복지지원센터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센터 홈페이지(bawsc.bscf.or.kr)를 12월 8일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홈페이지는 예술인 복지서비스 지원은 물론 시민들에게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 센터의 모든 사업일정과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와 연결돼 예술활동증명 진행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부산예술인복지지원센터 영문이니셜 BWSC 및 부산바다의 일출과 산의 정경을 모티브로 한 B·I(Brand Identity)도 제작해 센터의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2017년 2월 전국지자체 최초로 개소한 부산예술인복지지원센터는 부산지역 예술인의 맞춤형 복지서비스 제공 및 안정적인 창작환경 조성을 위해 △예술인 파견지원사업 △반딧불이(빈집활용)사업 △부산예술인 아카이빙 사업 △예술인 컨설팅 매칭 아이컨택 등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역실정에 맞는 예술인복지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부산문화재단(745-7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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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70 ㅣ 2020.11.25


동래 가랑파와 미나리에 동동주

이해주(1931∼2019) 시인은 6·25 참전 세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그때 경험으로 6·25 종군시집 <위치>를 1959년 세기문화사에서 냈다. 문단 평가와 독자 반응이 좋았다. 시에 매진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집이 너무 늦게 나왔다. 무려 사십 년이 지난 2002년이었다. 그동안 신문잡지에 수필은 자주 발표했다. 그래서 수필가로 더 알려져 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한국 경제를 살리는데 나서고 싶었다네." 사십 년이 지나서 두 번째 시집을 낼 만큼 시를 등한히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후는 암흑기였다. 시를 통한 구원보다는 경제를 통한 구원이 훨씬 시급하다고 여겼다. 결국 경제를 전공했으며 나중에 부산대 상대 학장까지 지냈다. 나에겐 대학 은사였다. 졸업 후 문단에서 다시 뵈었다. 두 번째 시집이 늦은 이유를 여쭈자 전후 경제 상황을 언급하며 정년퇴임 2모작 인생에선 시에 매진하겠단 의지를 내보이셨다.
이해주 선생은 문단에서 발이 꽤 넓었다. 종군시집을 낼 만큼 문학 열정이 뜨거운 데다 교수 재직 시절 대학신문 주간을 오랫동안 맡아 문단 교류가 잦았다. 학보사 주최 문인 초청 강연회라든지 문학상 심사위원 초빙, 각종 기념시 청탁 등으로 문인과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문인 교류에 술은 감초였다. 시나 수필에 술자리 풍경이 곧잘 나온다. 술을 넘치게는 마시지 않았지만 자리를 흥겹게 이끌었다.

할매파전집을/찾는다//동래 가랑파/언양 미나리/기장 해물//보기만 해도/군침이 도는/파전에 동동주 곁들여/봄을 마신다//세월의 강을/거슬러 오르면//초가집 마루에서/곱다니 할매/우하/향파/요산의/걸쭉한 다담/호탕한 웃음소리//돌담에 스며드는/농익은 해학을 씹는다
 - 이해주 시 동래파전
동래파전는 이해주 시선집 <사랑하는 것을 위하여> 수록 시다. 술자리 풍경이 흥겹다. 우하 박문하, 향파 이주홍, 요산 김정한 선생과 어울린 할매파전집 풍경을 묘사한다. 곱단이 할매는 60년대와 70년대 동래 제일식당 추강(秋江) 여사 애칭. 추강 여사는 곱기도 고왔지만 문인들 걸걸한 입담을 다 받아줄 만큼 품이 넓었다. 초가집 마루며 돌담은 술이 저절로 넘어갔을 풍경화다. 지금이나 그 시절이나 동래는 운치가 넘쳤다.
시를 쓴 날은 2003년 1월 16일. 시에 나오는 인물은 모두 작고한 후였다. 생각건대 바람 찬 그날, 술이 그립고 사람이 그리워 이 시를 썼지 싶다. 이해주 선생은 이 시에 대한 설명이랄지 창작 동기를 수필에 남겼다. 계간 문예지 <문예시대> 2003년 가을호 권두 칼럼이 그것이다. 권두 칼럼은 다섯 번째 수필집 <여백의 자유>에 실렸다. 좀 길지만 해당 대목을 그대로 인용한다. 글맛이 구수하다.

수년간 일본에서 살다가, 귀국하여 가장 먼저 찾은 전통 음식점이 동래할매파전집(옛 제일식당)이다. 때마침 이른 봄철이라 파전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1968년부터 74년까지 나는 부대신문(釜大新聞) 주간을 맡고 있었는데, 그 무렵 초청 문인 강연회나 작품 심사가 끝나면 가끔 서울에서 내려온 연사나 심사위원을 모시고 제일식당에 들렀다. 개울가 초가집 마루청에 앉아 곱게 한복을 입은 곱단이 할매(秋江 여사)가 구워 주는 파전에다 동동주를 곁들여 환담하던 수필가인 민중의원의 우하 박문하, 향파 이주홍, 그리고 요산 김정한 선생의 추억이 어제인 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셨지만, 어쩌면 파전보다도 그러한 옛날이 그리워 그 집을 찾았을는지도 모른다.

선생은 작년 봄 타계했다.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혼자 문상 가서 소주를 꽤 마셨다. 비가 왔던 것 같다. 인생 1모작은 시 대신 경제였고 2모작은 경제 대신 시였던 이해주 선생. 먼저 가신 우하 선생과 함께, 향파 선생과 함께, 요산 선생과 함께 돌담이 보이는 이승의 초가집 마루에서 동래파전 흥겨운 술자리 벌이고 있으리라.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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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53 ㅣ 2020.10.26


동래 언덕배기 살던 수필의 달인    

일본인에 대한 저항의식은 국내의 어느 지방보다도 (부산이) 준열하다. 동래고보는 <천장절> <기원절>이면 교정의 국기탑에서 <히노마루>(일장기)를 끄집어 내리기가 일쑤였고 마침내는 학생 백수십 명이 투옥되는 사건까지 일으켰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시가전차를 청년들이 모여들어 궤도 위에 넘어뜨리는 것도 부산 명물의 하나이다.
 - 김소운 수필 일본말과 민족감각에서

김소운(金巢雲, 호적 金素雲 1907∼1981)은 삶이 파란만장했다. 초등학생일 때 퇴학당하고 14살 때 이국땅 일본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갖은 고초를 감내하며 넝마주이식 공부를 했다. 그러나 스스로 일어섰고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이 됐다. 서간체 수필 <목근통신>은 특히 유명하다. 한국 동란 와중인 1951년 8월에 써 70년이 지난 지금도 수필 중의 수필로 꼽힌다.
일본에 보내는 편지. <목근통신> 부제다. 목근(木槿)은 한국을 상징하는 무궁화나무다. 수필 제목에서 민족성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읽힌다.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받은 모멸과 학대에 대한 항의, 일본인의 그릇된 습성과 허위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우리나라에 대한 연민과 깊은 애정 등을 담았다.
김소운은 살아생전 일본통이었다. 일본통이 된 건 순전히 타의였다. 반은 일제 탓이었고 반은 이승만 정권 탓이었다. 초등생 나이로 1919년 삼일운동에 연루돼 영도초등학교 전신인 옥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이듬해 화물선을 얻어 타고 도일한 게 첫 번째 타의였으며 광복 이후 이승만 정권에 쓴 소리를 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게 두 번째 타의였다.
소운이 일본에서 지낸 기간은 도합 34년. 75년 생애의 거의 절반을 일본에서 보냈다. 1920년 일본으로 처음 건너간 이후 일가를 이루곤 귀국해서 매일신보 기자를 지냈다. 1931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고 광복 반년 전인 1945년 2월 손가방 하나를 들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14년여의 긴 일본 망명생활에서 돌아온 김소운과 필자는 실로 30여 년 만에 만났다. 부산 동광동에 있는 타워호텔 커피숍에서다. 1952년 김소운 작사, 김동진 곡의 동래고교 교가가 만들어졌을 때 마침 필자가 (동래고) 학예부장을 맡고 있었다. 그 인연으로 첫 대면 인사를 나눈 이래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에서 

동래고를 졸업한 김규태 시인은 평생 국제신문에 몸담았다. 퇴직 후에도 줄곧 필자로 참여했다. 기자로 있으면서 만난 문화인을 2006년 인간기행 형식으로 연재했다. 2007년 7월 3일 게재한 인간기행은 수필의 달인 김소운이었다. 인용 대목은 동래고 교가 가사를 청마 유치환 이전에 김소운이 먼저 지었다는 사실과 함께 일본에 14년 망명했음을 알려준다. 김소운 작사 교가는 1952년 지어졌다. 동래 일신여학교 뒤편에서 가축을 치고 모종을 가꾸며 살던 때였다. 
1945년 귀국한 소운은 부산에서 지냈다. 광복동의 목욕탕 옥상에서 작은 방, 그리고 동래의 언덕배기에 혼자 전원생활을 했다. 가족은 진해에 두고서였다. 일본 망명은 1952년 신문 인터뷰가 발단됐다. 그해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세계예술인대회 한국 대표로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본에서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이승만 정권을 비판한 것이 부메랑이 돼 망명 아닌 망명을 15년 가까이 했다. 
김소운은 사후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2005년 <친일사전 수록예정 문인명단>에 올랐다. 반론은 만만찮았다. 소극적 친일과 적극적 친일을 나눠서 보자는 반론이었다.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목근통신>을 읽으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김소운 가족사를 알면 더욱더 그렇다. 김소운의 딸과 부인은 1970년대 민주투사였다. 딸 김윤은 1974년 학생운동권 탄압을 위해 조작했던 민청학련 사건 당시 여학생으론 유일하게 기소돼 5년을 복역했다. 부인 김한림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모체가 된 구속자가족협의회 창립을 주도했다.
김소운은 당대 일어 번역 일인자였다. 동경제대, 아사히신문과 함께 일본 문화 3대 아이콘이던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펴낸 일어판 <조선동요선>(1933), <조선민요선>(1939), <조선시집>(1934)이 그것을 방증한다. 번역을 통해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였던 김소운은 1977년 한국번역문학상, 1980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영도에 그를 기리는 문학비가 있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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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1 ㅣ 2020.10.26


제53회 숲속의 열린음악회
동래문화회관 대극장
11월 6일 오후 7시 30분

과거의 명곡들을 현시대 감성에 맞게 재해석한 뉴트로 콘서트!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던 가사들을 만나는 시간.
동래문화회관은 오는 11월 6일 금요일 오후 7시 30분 대극장에서 제53회 숲속의 열린음악회 아름다운 가사가 들리는 콘서트 아가콘을 무대에 올린다.
이번 콘서트에는 가수 홍경민, 국악인 이봉근, 뮤지컬배우 유지, 크로스오브 두 번째 달 밴드까지 총 출연해 새로운 감동을 안겨줄 전망이다.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감동을 주는 명곡들은 어떤 노래들일까?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가사가 있는 노래가 아닐까? 그 시절, 그 사람, 그 노래를 추억해보며 가사를 꼭꼭 씹어 음미 할 수 있는 콘서트를 즐겨보자!
관람료는 2만원이며, 동래문화회관 회원, 초·중·고등학생, 장애인 및 동반 1인, 65세 이상 경로우대자, 의상자 본인, 의사자 유가족 등은 50% 할인 된다. 동래문화회관 홈페이지에서 예매 가능하며, 예매 잔여분은 공연 당일 현장판매. 13세 이상 입장 가능하다.
한편 이번 콘서트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될 경우 동래문화회관 유튜브 채널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문화시설사업소(550-6611)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단어로 과거의 문화나 풍습, 물건 따위를 새롭게 즐기는 일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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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1 ㅣ 2020.10.26


경주·동래 등지의 전염병 사망자가 223명이다

원문
慶尙道 金海府有一女一産三女。
慶州、東萊、宜寧、咸陽、永川、蔚山、新寧、延日 疫死者, 摠二百二十三。

국역
경상도 김해부(金海府)에 사는 여자가 딸 세쌍둥이를 낳았다. 경주(慶州)·동래(東萊)·의령(宜寧)·함양(咸陽)·영천(永川)·울산(蔚山)·신녕(新寧)·연일(延日)에 전염병으로 사망한 사람이 모두 2백 23명이었다.

【중종실록】 57권,
중종 21년 6월 8일 기미(1526년)
【태백산사고본】 
29책 57권 12장 B면
【국편영인본】 16책 514면
【분류】 호구-호구(戶口)
/의약-의학(醫學)/보건(保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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