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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 ㅣ 2021.02.25

동래 장날 태극기 흔들며 목청껏 대한독립 만세 외쳐
윤정국
동래고역사관 관장
해마다 거행해오던 동래3.1독립만세 재현 행사를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거행치 못하나 보다. 코로나 때문이란다. 언제쯤 마스크를 집어 던지고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래 시장통 만세거리를 휩쓰는 군중들의 물결을 볼 수 있을까?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젊은 학도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종로 거리를 내달릴 때, 서울 시민들도 곳곳에서 이에 호응하는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 만세 운동은 차츰차츰, 그러나 빠른 속도로 삼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져 나갔으니 이른바 우리나라 역사의 위대한 기록, 곧 삼일운동의 시작이다.
이날, 서울 현장에 있었던 경성공업전문학교 학생인 곽상훈(사립고보1회)은 3월 2일 밤, 독립 선언문과 격문을 창호지에 베끼고 가위로 가늘게 잘라 운동화 신발 끈으로 위장하여 동래에 내려왔다. 담임선생이었던 이환 선생을 만나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하고 후배 재학생 간부들과 거사를 위한 준비를 의논하는 한편 동래 청년들도 비밀히 만나 이 거사에 호응토록 했다. 학생들은 학교 근방 학생 집, 하숙방 등에 삼삼오오 은밀히 모여, 태극기를 만들고 선언문과 격문을 프린트로 재작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 옹은 김 모라는 연희전문 학생을 동래고보에 보내어, 부산에 있는 학교 학생들도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본교 간부 학생들은 긴급회의를 통해 책임감 있고 성실한 일학년 학생 최익수를 심부름꾼으로 뽑아서 부산상업학교와 일신학교, 그리고 부산진보통학교 교사 홍재문 등에게 이 일에 적극 동참할 것을 전달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하여 3월 8일에는 영주동, 초량동, 좌천동 거리에 벽보와 태극기가 나붙기 시작하더니, 3월 11일에는 부산상업학교와 일신학교 학생들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시위를 전개하였고, 3월 12일에는 부산진 보통학교학생들이 홍재문 선생의 인솔 아래 시위를 전개하였다.
마침내 3월 13일, 동래 장날, 동래고보 학생 200여 명은 두 분대로 나뉘어 망미루와 동래남문 앞 길목에서 태극기와 선언문, 격문 등을 장꾼들에게 은밀히 나누어주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획된 시간이 되자 제1분대장 엄진영, 제2분대장 김귀룡이 각각 망루에 올라 선언문을 낭독 하려는 순간,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호각을 불면서 의거 학생들을 덮쳤고, 학생들은 위기의 순간 품안에서 태극기를 꺼내어 흔들며 목청껏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하니 장꾼들도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장터는 만세 소리로 떠나갈 듯 난장판이 될 쯤에, 만화 같은 일화가 있었으니 순경 복장을 한 한국인 순경이 제복을 벗어 던지고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 옆에 있던 헌병 보조원도 모자와 정복을 벗어버리고 함께 만세를 불렀다 한다. 경찰과 헌병들은 공포를 쏘기 시작하더니, 나중엔 실탄 사격에다가 소방차까지 동원하니 군중들은 흩어지기 시작하고 총부리 앞에 어쩔 수 없어 검거되어 잡혀가면서도 맨주먹으로 대항하기도 하고, 계속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기도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잡혀가는 사람 수가 늘어갈 뿐이었다.
이때 잡혀간 학생들은 모두 7∼8일간 심문을 받았고, 공판에서는 27명의 학생들이 보안법 위반, 몇몇은 출판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에서 1년, 8개월, 6개월, 4개월의 형을 받았다.
이 만세운동으로 이듬해인 1920년도에는 졸업생이 없어 졸업식을 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역사도 남겼다, 아직 옥중에 있거나, 고문으로 인한 병중에 있거나, 경찰의 눈을 피해 숨어 있거나, 실의에 빠져 학교를 그만두거나 해서이다. 형을 마치고 나온 최고 학년인 4학년에게는 개별적으로 졸업장을 주기도 했다.
이후 학교는 공립학교로 바뀌고, 일제의 압박은 더욱 심해졌으나 동고 학생들의 저항은 광복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1940년, 11월 23일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가 있었는데 일본인 심판들의 편파 판정에 항거하여, 동래중(5년제)과 부산 제2상업학교의 한국인 학교 학생들은 격렬한 항의를 하고, 영주동까지 시가행진을 하면서 아리랑, 도라지 등의 노래를 부르고, 일본놈은 돌아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러고는 이 대회 심판장이었던 경남지구 위수사령관인 대좌 노다이의 관사를 습격하였다. 이 의거를 세상 사람들은 노다이 사건이라 하고 현재는 부산 항일학생 의거라 한다. 성지곡 공원 입구에 기념비가 있으며, 학교에서는 동고의 날이라 부르고 매년 이 날을 기리고 있다.
현재 동래고등학교 교정에는 항일운동 기념탑이 있으며, 중앙현관 앞에는 선배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변함없이 이어가자는  뜻의 개교 100주년 기념비가 서있다. 동고교풍(東高校風) 신종여시(愼終如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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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0 ㅣ 2021.02.25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구민의 안전 위해


동래구는 코로나19 확산세 장기화에 따른 유입차단과 확산 방지를 위해 오는 3월 1일 개최하기로 한 동래3.1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
동래 3.1독립만세 운동 재현 행사는 3.1절을 맞아 국권회복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기 위한 것으로 매년 3월 1일이면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과 동래고등학교, 만세거리 등지에서 학생·시민·공무원 등 5천여 명이 모여 기념식과 함께 독립만세 재현 퍼포먼스, 만세운동재현 거리 행진, 각종 체험행사 등을 개최해 왔다.
구 관계자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구민의 안전과 지역사회 감염예방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재현 행사를 취소하게 됐다. 아쉽지만 제100주년(2019년) 동래3.1독립만세운동 재현 동영상을 보면서 그날의 뜨거운 민족의 함성과 혼을 느껴보기를 바란다"며 "이날 각 가정마다 태극기를 게양하여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외침과 1919년 3월 1일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 줄 것"을 당부했다. 문화관광과(550-4091)

▶동영상 보는 곳 : 구 홈페이지(www.dongnae.go.kr)-문화관광/축제공연/동래3.1독립만세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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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 ㅣ 2021.02.25

우리 고장 현충시설 둘러보기

부산3ㆍ1독립운동기념탑
부산3.1독립운동기념탑은 부산시에서 전개된 3.1운동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후대에 계승하며 민족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1996년 3월 1일 동래사적공원(마안산 간이체육장)에 건립한 탑이다.
21m의 높이로 솟아있는 상징탑은 창조하는 미래를 표현하고 있으며, 내부 조형탑은 선열들의 독립운동정신을, 천장의 8괘마당은 결집하는 민족정기를 표현하고 있다. 기념탑에는 부산3ㆍ1독립운동기념탑 건립 취지문과, 부산3.1독립운동 약사, 기미독립운동 약사, 기미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이 새겨져 있다.

동래장터 3ㆍ1운동 만세시위지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1919년 동래 장터 3·1 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동래구지명위원회에서 동래장터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옛 남문 터와 동래시장, 복산동 행정복지센터 주변을 동래만세거리로 지정했다. 동래장터 3·1운동의 중요 지점인 현 수안치안센터 앞에는 표지석을 두어 장소의 의미를 알리고 있다.

박차정 의사 생가
박차정 의사는 1934년 34세의 나이로 순국하기까지 독립운동단체인 근우회, 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등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여성항일운동가이다. 여성들에게 한없는 긍지를 심어 준 박 의사의 애국ㆍ애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래구는 2005년 7월 8일 동래고교 인근(명륜로 98번길 129-10)에 박 의사 생가를 건립했다.

항일운동기념탑
동래고 학생의 주요 항일운동인 노다이사건ㆍ동래고보학생의거ㆍ동래중학 조선청년독립당사건(순국당 사건 관련) 등을 기념하여 만든 탑이다.
1995년 11월 3일 동래고교 내 건립된 이 탑의 중앙탑신은 1899년 이후의 미래를 상징하며 100년간의 역사를 각각 10년 단위로 10개의 기초탑신으로 표현했다. 이 기념탑에는 횃불을 든 학생상, 교련복 차림의 학생, 책을 든 학생, 한복차림의 학생 등의 상징이미지를 담고 있다.

애국지사 월성 박공 임갑 기적비
박임갑(1902∼1990)은 경남 양산 출신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3일 동래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 동래군 동래읍 장날을 기하여 엄진영ㆍ고영건ㆍ김귀룡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 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동래구 안락로 99-5에 자리한 기적비는  1994년 3월 12일 건립됐으며, 월성박씨 현감공파 동래문중에서 관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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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9 ㅣ 2021.01.25


강물이 흘러도 돌이 구르지 않고
나루 넘쳐도 수레바퀴 젖지 않아

이섭교(利涉橋)는 온천천 돌다리였다. 동래에서 수영으로 갈 때 이섭교를 건넜다. 조선시대 동래와 수영은 부산의 쌍봉이었다. 동래는 행정 중심도시였고 수영은 군사 중심도시였다. 동래를 다스리던 부사와 수영을 다스리던 수사는 계급이 같아 티격태격 곧잘 부딪쳤지만 큰 틀에선 긴밀한 관계였다.



이섭교는 긴밀한 관계의 상징이었다. 이섭교를 건너 동래와 수영의 관리가 오갔고 이섭교를 건너 동래와 수영의 공문이 오갔다. 이섭교가 물에 잠기면 관리도 공문도 물에 잠겼고 이섭교가 떠내려가면 관리도 공문도 떠내려갔다. 그래서 이섭교는 부산의 어느 다리보다 튼튼하게 지어졌다. 부산의 어느 다리보다 튼튼한 돌다리가 이섭교였다.
이섭교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의미가 깊었다. 고려 정자 정과정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정과정은 고려부터 조선 500년 내내 충절의 상징이었다. 정과정 주인은 동래정씨 정서. 정서는 고려 17대 임금 인종(재위 1122∼1146)과 동서지간이었다. 부인이 왕비의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일이 꼬여서 동래로 유배 왔다. 수영강 강변에 정과정 정자를 지어 거기서 심란한 마음을 달랬다.
정서는 시인이었다. 심란한 마음을 시로 풀었다. 유배는 동래에서 거제도로 이어졌고 시는 수영강에서 거제 바다로 이어졌다. 그가 유배지에서 쓴 정과정곡(鄭瓜亭曲)은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고려가요. 그리움의 대상은 임금이었다. 자기를  유배시킨 임금을 미워하지 않고 구구절절 그리워함으로써 정과정곡은 충절의 상징이 되었고 그가 지낸 정과정 역시 충절의 상징이 되었다.
이제현 정추 한수 류숙 이숭인 양희지 정사룡 윤훤 이춘원 성진선 이원진 정권. 2002년 동래문화원에서 펴낸 <동래제영총집>에 정과정 관련 글이 실린 유학자와 동래부사 면면이다.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가 동래온천이며 범어사 유람 길에 정과정을 찾았고 동래부사가 부임 인사차 정과정을 찾았다. <동래제영총집>에는 그들이 남긴 시가 실렸다.

임금님 그리워 옷 젖지 않은 날 없는 건 이 봄에 산에서 우는 두견새와 같습니다.
옳고 그르고를 누구에게도 묻지 마소서. 저 새벽녘 달과 별이 알고 있을 겁니다.
 - 이제현(1287~1367) 시 과정(瓜亭)

오일장 장꾼도 이섭교를 건넜다. 이섭교를 사이에 둔 시장은 동래장과 수영장. 동래부에 있어서 본부장(本府場)으로 불린 동래장은 장날이 3일, 8일이었고 수영에 있어서 영내장(營內場)으로 불린 수영장은 2일과 7일이었다. 뒷자리가 3일과 8일, 2일과 7일인 날은 장꾼 발걸음이 새벽부터 어둑하도록 이어지던 곳이 부산의 어느 다리보다 튼튼한 돌다리 이섭교였다.
이섭교비는 이섭교 비석. 돌다리 이섭교 놓은 걸 기념해서 세운 비석이다. 비석을 세운 건 1635년. 비석 뒷면에 이섭교를 언제 누가 왜 세웠는지 미주알고주알 새겼다. 큼지막하고 반듯한 돌비에 새긴 글자는 본문만 150자가 넘는다. 손바닥 대고서 한 글자 한 글자 쓰다듬으면 글자를 새긴 장인의 손길이 울렁울렁 느껴지고 그 시대를 산 부산 사람의 숨결이 울렁울렁 느껴진다.
강류이석부전 제영이불유궤(江流而石不轉 濟盈而不濡軌). 돌다리 공사는 1634년 겨울에 착수했다. 그전에도 다리는 있었지만 나무라서 쉽사리 썩었다. 몇 사람이 돈을 모았고 주민은 돌을 옮겼다. 이듬해 봄에 공사를 마쳤다. 돌다리를 놓은 기쁨은 컸다. 그 기쁨을 강물이 흘러도 돌이 구르지 않고 나루가 넘쳐도 수레바퀴는 젖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옛날 지도도 돌다리 놓은 기쁨을 빠뜨리지 않았다. 지도가 열이면 일고여덟은 이섭교를 표기했다. 이섭교를 놓은 지 100년 후쯤인 1736년에서 1776년 사이에 만든 여지도 동래부도 이섭교를 반듯하게 모셨다. 동래에서 수영으로 이어지는 온천천에 무지개다리를 그리고 반듯한 글씨로 이섭교라고 썼다. 여기와 저기를 이으며 무지개 찬란한 내일을 소망한 부산의 돌다리가 이섭교였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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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 ㅣ 2021.01.25


코로나19 확산 방지 위해
1996년 이후 지난해 이어 두 번째

동래구는 코로나19 확산세 장기화에 따른 유입차단과 확진자 확산 방지를 위해 오는 3월 1일 개최하기로 한 동래 3.1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
동래 3.1독립만세 운동 재현 행사는 3.1절을 맞아 국권회복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하신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기 위한 것으로 매년 3월 1일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부산3.1독립운동 기념탑과 동래고등학교, 만세거리 등지에서 학생·시민·공무원 등 5천여 명이 모여 기념식과 함께 독립만세 재현 퍼포먼스, 만세운동재현 거리 행진, 각종 체험행사 등을 개최해 왔었다. 
구 관계자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구민의 안전과 지역사회 감염예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선제적으로 취소하게 됐다"며 "이날 각 가정마다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선열들의 외침과 1919년 3월 1일 그날의 역사를 기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 줄 것을 당부했다.  문화관광과(550-4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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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5 ㅣ 2021.01.25


작년 발급자, 신청절차 없이 자동충전
신규ㆍ재충전 희망자, 2월 1일부터 신청

부산문화재단(대표이사 강동수)은 1월 말부터 문화누리카드 자동재충전 및 신규 발급을 개시한다고 밝혔다. 올해 지원금은 작년대비 1만원 인상돼 1인당 연간 10만원을 지급할 방침이다.
문화누리카드는 경제적 여건 등으로 문화향유가 어려운 6세 이상(2015. 12. 31. 이전 출생자)의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여행, 체육 분야 활동 향유를 지원하는 공익사업 카드이다.
올해 새로 도입되는 이 자동충전서비스는 2020년도 문화누리카드 발급자가 수급 자격을 유지할 경우 별도의 신청절차 없이 자동으로 지원금이 충전된다. 다만 시설발급자나 전액 미사용자, 카드 유효기간이 올해(21.12.31.)인 카드 보유자 등의 경우 해당 서비스 대상자에서 제외되므로 별도의 재충전 절차가 요구된다.
신규 발급 및 재충전 희망자는 2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문화누리 홈페이지 누리집(www.mnuri.kr), 문화누리 고객센터(1544-3412), 모바일 앱 또는 행정복지센터 방문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문화누리카드 발급자는 발급일로부터 당해 연말(12월 31일)까지 가맹점으로 등록된 업종에서 지원금을 사용할 수 있다. 단 사용하지 않은 카드 잔여금액은 이월되지 않고 자동 소멸되므로 기한 내 모두 사용해야 한다.
 부산문화재단(745-7265, 7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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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3 ㅣ 2021.01.25


빛으로 빛나다 출간

격동의 시대 동래야류 지켜와가족·제자·기증자 사진·기억 수록

(사)문장원기념사업회(이사장 김경호)는 신축년 새해를 맞아 <동래춤꾼 인간문화재 名舞, 문장원 포토 에세이집 빛으로 빛나다>를 지난 3일 출간했다.
이 기념사업회는 급속한 산업화에 사라질 뻔한 전통예술의 가치와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전통예술의 계승과 보존 발전에 일생을 바치신 명무 문장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2018년 시민들이 주축이 돼 출범했다.
회원은 200여 명으로 전통예술 인재 발굴, 학술연구 지원과 함께 예술 소외지역 방문공연과 아시아 각국과의 문화 유대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번에 발행된 신국판, 127페이지의 이 책은 가족들과 제자들, 기증자들의 사진과 기억과 글로 만들어졌다. 그 속에는 1917년 격동의 시대에 동래에서 태어나 95년을 동래에서 살면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전후의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겪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리고 고난과 정면으로 맞서며 국토의 변방에서 꿋꿋하게 전통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동래야류를 지켜온 호위병으로서의 그의 당당한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요새 사람들은 팔만 치켜든다고 춤인 줄 알어. 기교만 너무 많이 부린다고 춤이 아니야. 춤을 잘 추기 위해서는 멋을 알아야 해. 멋진 춤은 그저 당닥쿵 따따 해가지고 나오는 게 아니야. 사람이 멋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 한이 숙달되었다는 이야기지" (책 본문 중에서).
한편 김경호 이사장은 "이 책 출간을 계기로 코로나로 위축된 전통예술계 모두가 힘을 얻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인재발굴과 좋은 공연을 위해 꾸준하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문장원기념사업회(503-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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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 ㅣ 2021.01.25

안락누리도서관
2월 3일 ~ 3월 31일
성인 독서문화강좌
안락누리도서관은 상반기 성인 독서문화강좌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이번 성인 독서문화강좌는 책과 함께하는 세계사를 주제로 2월 3일부터 3월 31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11시 30분, 성인 30명을 대상으로 Zoom 프로그램을 활용한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된다.
강의 내용은 불안·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비러비드·총,균,쇠 등 9종의 세계사와 인문학 도서를 함께 살펴보는 시간으로 개인의 자아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지난 20일 오전 10시부터 안락누리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선착순으로 받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동래구 도서관 홈페이지(http://lib.dongnae.go.kr)를 참고하거나 전화(550-6912)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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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55 ㅣ 2020.12.28


조선 500년 뛰어넘는 고려가요

정과정곡은 국보급이다. 고려가요 가운데 유일하게 지은이가 알려져 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에 실렸다. 시험에 곧잘 나와 달달 외우는 학생도 꽤 됐다. 시험 때문에만 그런 게 아니고 사춘기와 맞물려 순정한 마음을 파고드는 무엇이 있었다.
내 님이 그리워 우니나니/산 접동새와 난 비슷하요이다. 여기서 님은 임금을 지칭하고 전체로는 임금을 그리는 사모곡이라고 교과서는 설명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멋들어지게 낭송할 생각에 외우고 또 외웠다.
나는 등단 초기 정과정곡을 비장의 카드로 썼다. 서울 문인 야코를 죽이는 회심의 한 방이었다. 그들이 부산에 오면 자갈치니 광안리는 필수 코스였다. 해산물 접대를 잘 받고서는 고작 한다는 질문이 부산에 문화다운 문화가 있느냐?는 거였다. 오만하고 방자했다.
질문 의도는 불순했다. 생선 비린내 갯가 부산에 고급스러운 문화가 어디 있겠으며 조선 500년 도읍지 한양을 앞서는 문화가 어디 있겠느냐는 통박이었다. 실컷 재롱부리고 뺨 맞는 격이었다. 내 돈 써가며, 내 시간 내가며 대접했건만 부산은 그들에게 사농공상 맨 아랫자리였다.
그때 들이댄 게 정과정곡이었다. 조선 500년 역사가 아무리 두꺼워도, 조선 500년 문화가 아무리 고고해도 국보급 고려가요 정과정곡보다는 한 수 아래일 터. 서울 문인 역시 정과정곡을 익히 접했으니 내 말귀를 금방 알아듣고 꼬리를 내렸다.
정과정곡은 부산을 대표하는 문학이다. 정과정곡을 어디서 썼느냐 하는 데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정과정곡과 불가분이던 고려 정자 정과정이 부산에 있었고 정과정곡을 기리는 정과정유적지가 부산에 있고 정과정곡을 쓴 이의 증조할아버지 묘소가 부산에 있고 무엇보다 지은이가 동래정씨다.
지은이는 정서(鄭敍). 고려 인종 때 사람이다. 인종은 1122년부터 1146년까지 임금으로 있었다. 정서는 잘 나갔다. 어머니가 고려 왕족인 개성 왕씨였고 부인의 친언니가 인종의 부인, 왕비였다. 그러니까 인종과는 동서지간이었다. 그런데 줄을 잘못 섰다. 인종 장남을 밀었는데 차남이 왕이 되었다. 결국 무고를 받았고 부산 유배형에 처했다.
정서가 얼마나 심란했을지는 불문가지. 왕족 신분에서 하루아침 유배 죄인으로 전락했으니 세상만사 허망했으리라. 수영강변에 정자를 짓고 세월아 네월아 했다. 오이밭을 일구며 오매불망 애타는 심정으로 음유시인이 됐다. 훗날 정서의 호 과정(瓜亭)을 따 정자를 정과정이라 부르고 정서가 짓고 읊던 노래를 정과정곡이라 했다.
귀양살이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동래에서만 6년을 지냈고 거제도까지 포함해 도합 19년을 유배지에서 보냈다. 귀양살이 떠나기에 앞서 인종 다음 임금 의종은 "이번 일은 부득이한 것이니, 곧 풀려날 것이다"라고 언약했지만 허사였다. 의종은 좀 심했다. 의종 11년(1157) 첫 왕자 탄생 기념으로 대사면을 단행했으나 정서는 오히려 더 먼 거제도로 이배됐다. 귀양살이 끝내고 개경으로 돌아간 건 무신정변으로 의종이 시해되고 다음 임금이 즉위하고 나서였다.
정과정 있던 자리는 1740년 발간 동래부지에 나온다. 동래부 남쪽 10리다. 다른 고서엔 좌수영에서 북쪽으로 3리 떨어진 강기슭이라 했으니 지금의 수영하수처리장에서 F1963 일대가 된다. 부근에는 정과정유적지가 있다. 정과정곡 시비와 400년 보호수 팽나무, 경암 바위가 볼 만하다. 경암(鏡巖)은 바위 표면이 매끈하여 사람 얼굴이 비친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하마정 정묘(鄭墓)도 정과정곡과 연관이 있다. 정묘는 조선 8대 명당이란 곳에 들어선 묘소. 묻힌 이가 정서의 증조할아버지 정문도다. 정서가 유배지 부산에 있는 6년 동안 할아버지 묘소를 찾는 일은 잦았을 것이다. 제사 때도 찾았을 것이고 마음이 울적한 날도 찾았을 것이다. 8대 명당 탁 트인 풍광을 보며 간밤에 쓴 시를 낭송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과정곡과 동래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정과정 있던 곳은 수영강변이고 증조할아버지 묘소는 부산진구라서 고개 갸우뚱대는 이가 왜 없을까. 하지만 이 모두를 아우르는 게 앞서 언급했듯 정과정곡 지은이 성씨다. 동래정씨는 조선 3대 명문가. 전주이씨, 안동권씨 다음으로 재상이 많이 나왔다. 그러므로 동래는 예부터 떵떵거리던 명소였다. 문학도 그랬다. 예부터 떵떵거렸고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 간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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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8 ㅣ 2020.12.28

현판 부착, 업적 안내판 설치
캐릭터조형물… 포토존 마련
박차정 의사 생가 입구 공터에 동래의 독립운동가 가문인 박차정 의사의 가족사 전시공간이 지난 7일 조성됐다.
이는 가장 먼저 독립유공자(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가 된 박차정 의사에 이어 큰오빠 박문희 선생(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 둘째오빠 박문호 선생(2019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한 집안에서 독립유공자가 무려 3명이 배출됐음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
동래구는 삼남매가 모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음에 따라 박차정 의사 생가 입구 공터를 매입하고 가족사 전시공간을 조성했으며, 대문에는 박문희·박문호 선생의 생가임을 알리는 현판을 부착했다.  
또 생가 입구 공터에 있던 매실나무 7그루를 동래읍성역사관으로 옮겨 심고 그 자리에 독립유공자 삼남매의 업적 안내판과 인물 캐릭터 조형물을 설치해 방문객들이 삼남매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도 마련했다.
한편 박차정 의사 생가는 동래구 명륜로98번길 129-10(칠산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2005년 7월 복원돼 동래구에서 줄곧 관리해 오고 있다. 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동래구는 2019년 5월 9일 박차정 의사 생가 앞 명륜로98번길 도로 일부구간에 처음으로 박차정길이란 명예도로명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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