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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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7 ㅣ 2019.11.26


연관호 재즈 퀸텟
부산의 정통파재즈 피아니스트인 연관호를 중심으로 결성된 연관
호 퀸텟은 12월 6일 오후 8시 제372회 스페이스 움 음악회에서 친숙한 재즈의 세계를 보여준다.

미스김의 프로포즈 아홉 번째 아티스트 시노래풍경. 진우
시의 리듬과 노래가락이 주는 리듬. 그 풍경이 같음을 미스김의 프로포즈에서 감상할 수 있다. 12월 18일 오후 8시

작곡가 김종완 콘서트 장차
예술기획 나빌레라 열다섯번째 사랑방이야기로 작곡가 김종완의 음악을 무대에 담은 장차(將次)가 12월 13일 오후 8시 선보인다.
 
정두환의 음악친구들Ⅸ
12월 27일 오후 8시
전시회
·해남학교 학생작품전시회(2월 7일)
·김정주개인전(12월 9~14일)
·크리스마스시즌 선물전(12월 16~31일)
스페이스 움 음악회는 입장료 2만원(케이터링 포함)이며, 회원은 50% 할인된다.  (557-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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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8 ㅣ 2019.11.26


매월 마지막 주 문화가 있는 날에 복지시설, 학생 등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맞춤형 힐링공연이 열리고 있다.
11월 26일에는 오후 2시30분 안락중학교 동녘관에서 마술사 고재영의 마술퍼포먼스 공연이 개최되며, 28일에는 오후 2시35분 동신중학교 해랑관에서 Fly With Me 댄스팀의 K-POP, 힙합, 스트릿 댄스공연으로 학업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 줄 예정이다.
11월 29일에는 오후 6시30분 새들원 강당에서 송재숙 마술사의 매직쇼 공연이 개최된다.
 문화관광과(550-4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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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3 ㅣ 2019.10.28

 

조선 대학자, 동래에 한 달 머물다

동래 온천장은 옛날 나라가 관리하던 목욕탕이었다. 고관대작은 물론 임금까지 애용했다. 조선시대는 동래부사가 관리했다. 1766년 세운 옛 비석 온정개건비엔 그러한 내력이 상세히 새겨져 있다. 온정개건비를 세우기 150년 전 펴낸 <한강봉산욕행록(寒岡蓬山浴行錄)>은 조선 중기 대표적 유학자 한강 정구와 제자 일행이 45일간 여행을 다닌 기록이다. 45일 가운데 30일을 동래 온천에서 보냈으니 동래 기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봉산은 동래 별호. 봉래, 내산(萊山)으로도 불렸다.

정구(1543~1620)는 소신파였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하고 실천했다. 그의 스승 이황을 배척한 친구와 절교했으며 역모 사건 관련자를 모두 용서하라며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고선 고관 자리를 내던진 채 경북 성주로 낙향했다. <심경발휘(心經發揮)> 등 다양한 분야, 방대한 저술은 영남 성리학 규범이었다. 절개와 기개, 학문적 높이를 흠모해 너도나도 스승으로 모시려 했다. 제자들이 정구를 모시고 동래 온정(溫井) 욕행에 나선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7월 20일 맑음(七月二十日晴). 봉산욕행록은 일기 형식이다. 7월 20일부터 시작한다. 물론 음력이다. 양력으론 찬 바람 부는 9월쯤 된다. 월일 앞에는 만력 정사(萬曆丁巳)라는 연도가 표기돼 있다. 설명하면 좀 길어지니 광해군 9년(1617년) 정도로만 알아두자. 욕행록은 이날부터 9월 5일까지 행적을 소상히 밝힌다. 특이한 것은 쉰 명 가까운 동행자 이름순서다. 누구는 이름을 적고 누구는 직책, 또는 지역을 적었는데 요즘처럼 가나다 순으로 적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름순서는 예민한 사안인 모양.    
계삼명한강선생이견여발(鷄三鳴寒岡先生以肩輿發). 동행자 성명을 장황하게 열거한 첫날 일기는 닭 울음이 맨 처음 나온다. 닭이 세 번 울자 75세 노구의 한강 선생이 탄 가마가 출발하면서 45일 대장정은 시작한다. 성주 인근 칠곡 지암(枝巖)이란 곳에 이르러 배를 타기 전 채몽연 등 몇 사람이 합류했으며 인사드리러 온 사람은 누구누구인지 밝힌다. 혼잡하면서도 흥겨운 정경이다. 다음 날도 날씨가 쾌청해 동래 온천장으로 가는 욕행은 순조롭다. 현풍, 고령, 창녕, 영산, 밀양, 김해를 거쳐 마침내 엿새 만인 7월 26일 일행은 동래 온천장에 도착한다.
오시에 온정의 욕소에 도착했다. 동래부사는 지난봄에 이미 선생께서 이곳에 와서 목욕하실 것이란 말을 듣고 2실(室) 1청(廳) 규모의 초옥을 별도로 지었는데 매우 정결하였다. 지금 선생을 따라온 자가 많은 것을 알고는 다시 임시가옥 2칸을 지어 제자들이 거처할 곳으로 삼았으니 그 정성을 족히 알 수 있었다. 정(井)의 안팎에는 석감(石龕)이 있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왕이 만든 것이라 한다. 하나의 감에는 오륙 명씩 들어갈 수 있고 샘은 위쪽의 석공(石孔)에서 흘러나오는데 물이 매우 뜨거워 손과 발을 함부로 담글 수가 없다.
온정개건비(溫井改建碑). 지금 내가 들여다보는 옛 비석 명칭이다. 동래 온천을 상징하는 비석으로 온천장 어름에 있다. 비석 맨 위는 큰 글씨로 온정개건비라고 새겼고 비석 한 면 가득 한자가 빽빽하다. 한강 선생 일행이 다녀가고 150년 지나서인 1766년 동래부사 강필리가 온천 욕탕을 개축한 공을 기려 세운 송덕비다. 욕탕은 어떻게 개축했을까. 큰 돌로 탕 두 개를 만들어 남녀가 별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9칸의 욕사를 새로이 짓고 세웠다.
큰 돌로 탕 두 개! 송덕비 아래 놓인 화강암 욕조는 네모반듯하면서 고색창연하다. 그러니까 큰 돌로 만든 탕 둘 가운데 하나다. 알려지기론 남탕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저렇게 생긴 돌 욕탕에 한강 선생과 그 일행이 피로한 육신을 담갔으며 저 욕탕에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육신을 담갔으리라. 지금은 저 욕탕에 몸을 담갔다는 증언은커녕 기억조차 죄다 사라졌기에 그것을 기록한 <한강봉산욕행록>은 소중하다. 동래는 당사자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한강봉산욕행록>은 당대 필독서였다. 한강 정구의 위상이 그만큼 높았고 기행문학 백미였다. 동래라는 지역에 갖는 지식인층 호감도 작용했다. 동래는 맨몸으로 왜적에 맞선 임진왜란 성지였으며 동래정씨 정서가 남긴 정과정곡으로 대표되는 충절의 성소였다. 조선의 유림이라면 누구라도 동래를 선망했으며 그러한 선망의 결정판이 <한강봉산욕행록>이었다. 필독서답게 간행도 많이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도 있고 부산박물관에도 있고 부산시립 시민도서관에도 있다. 경매에도 종종 나온다. 이제는 도서관 도시 동래가 나설 때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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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2 ㅣ 2019.10.28


동래문화회관 대극장
11월 1일 오후 7시30분

동래구는 11월 1일 동래문화회관 대극장에서 2019 지역문화예술회관 문화가 있는 날 공연산책 THE 불협화음 이야기가 있는 팝페라 하우스콘서트를 개최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동래문화회관 주관으로 마련되는 이번 공연에는 2012년 결성된 부부 팝페라 듀엣 라루체(최솔·이찬미)가 출연한다.
이탈리아어로 빛이라는 뜻을 가진 라루체는 디지털 싱글 앨범 바람의 노래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전국의 교육청 관련 초청공연에서 웃음과 감동의 무대를 선사하고 있다.
이날 △Come what may(뮤지컬 물랑루즈 中) △On my own(뮤지컬 레미제라블 中) △나를 태워라(뮤지컬 이순신 中) △향수(노래-이동원, 박인수) △아리랑·관객과 함께 부르는 노래 △O sole mio(이탈리아 칸초네) △Volare (이탈리아 칸초네) △바람의 노래(라루체 싱글앨범) 등을 들려준다.
관람료는 전석 무료이며, 동래문화회관 홈페이지에서 선착순 70매 신청가능하다.
 문화시설사업소(550-6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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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1 ㅣ 2019.10.28


10월 26일, 11월 9일
오후 3시, 동래부 동헌

동래역사 테마거리 길따라 역사따라 거리탐방 투어와 함께 동래야 한판 놀자 하반기 공연이 10월 26일, 11월 9일 오후 3시 동래부 동헌에서 열린다.
10월 26일은 음악그룹 THE 튠이 출연해 관객과 함께하는 놀량 2019 공연과 주물럭 비누 만들기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11월 9일은 효산가야금연주단과 박성호 무용단이 출연해 민요연곡, 트로트 등의 가야금연주와 동래한량춤, 진도북춤 등의 공연과 타투 스티커 체험행사를 펼칠 예정이다.  문화관광과(550-4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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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5 ㅣ 2019.10.02


우리 동네 캐릭터 홈페이지
PC·모바일로 매일 1인 1투표

동래구 캐릭터 뚜기ㆍ뚜미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제2회 우리 동네 캐릭터 대상 공모전에 참가해 치열한 접전 끝에 본선에 진출했다. 대한민국 지역ㆍ공공 캐릭터 대상을 뽑는 이번 대회는 전국 85개 기관이 참가한 가운데 9월 11일부터 22일까지 온라인 대국민투표로 진행된 예선을 거쳐 모두 16개 팀이 본선에 올랐다.
뚜기는 1999년에 태어난 동래구 캐릭터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인 동래야류 말뚝이탈을 의인화해 세상을 직시하는 부리부리한 눈과 숯덩이 눈썹, 남성다운 큰 코, 바른말 하기 좋아하는 입, 구민의 작은 목소리까지 놓치지 않는 큰 귀가 특징이며, 여자 친구 뚜미와 항상 같이 다니고 있다.
우리동네 캐릭터 대상 본선은 9월 24일부터 10월 4일 자정까지 진행되며 투표방법은 우리 동네 캐릭터 홈페이지에 접속 후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해 원하는 캐릭터 1개를 선택하면 된다. PC·모바일 다 가능하며 매일 1인당 1표 투표할 수 있다.
이번 대회는 예선과 본선을 합친 종합 득표수로 8개 캐릭터가 최종 선정되며, 본선진출팀은 10월 4일부터 6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부산넥스트 콘텐츠 페어&우리동네 캐릭터 축제에서 출품작품을 전시하게 된다. 시상은 대상 1천만 원 등 총 3천만 원의 상금 수여되며, 6일 시상식이 진행될 예정이다.
동래구 관계자는 "지난해 제1회 우리 동네 캐릭터 대상 공모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번에도 본선 무대에 진출한 뚜기·뚜미를 전국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10월 4일 자정까지 투표에 참여해 줄 것"을 당부했다.
 문화관광과(550-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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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4 ㅣ 2019.10.02


고분군 발굴 50주년 특별전
의식주 등 6개 주제…11월 3일까지

복천박물관은 9월 10일 개막을 시작으로 오는 11월 3일까지 55일간 복천동 고분군(사적 제273호)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며 의식주(衣食住), 1,600년 전 복천동 사람들이란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해양 수도 부산의 역사적 기반인 복천동 고분군은 1969년 주택개량사업 중 우연히 발견된 이후 18차례의 조사가 이루어져 삼국시대 부산의 고분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복천동 고분군 출토 유물을 새롭게 생활사의 관점에서 재조명하여 1600년 전 복천동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는 크게 △의복(衣) △음식(食) △주거(住) △생산(産) △교역(易) △예(禮) 등 6개 주제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복천동 고분군을 중심으로 주변 유적인 동래 패총, 낙민동 유적과 최근 삼국시대 마을이 조사된 두구동 취락 유적에서 출토된 일상생활과 관련된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생활 모습을 복원하기 어려운 부분은 당시 집과 마을의 모습, 도구 사용 모습 등을 그림으로 복원해 내용을 보완했다.
지난 9월 27일에 이어 10월 25일에는 부대 행사로 갤러리토크가 오후 3시부터 4시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복천박물관(550-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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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9 ㅣ 2019.10.02


심폐소생술 교육
동신중학교(교장 강미라)는 10월 28일 본교 해랑관에서 1학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실시한다. 이날 선생님들도 함께 참여한 가운데 2~3명의 강사들이 나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교육이 진행된다.
 박영준(동신중 리포터)

자살예방 캠페인 펼쳐
동해중학교(교장 송인근)는 지난 19일 자살예방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번 캠페인에는 또래상담자 학생 등이 참여해 등교하는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했고, 볼링공 던지기 등의 체험을 통해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도록 도왔다. 또 학생들은 자살 예방 서약서를 작성해 삶의 소중함을 알고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신희재(동해중 리포터)

학교의 또다른 시작
사직여자중학교(교장 최현주)는 지난 9일 새로운 교장선생님을 맞이했다. 학생들은 전 교장 선생님과 짧은 추억을 아쉬워했으며, 새로 오신 교장선생님을 힘차게 환영했다. 새로 오신 최현주 교장 선생님께서는 많은 교직 생활을 거쳐 우리 학교에 오셨다. 앞으로 또 다른 학교생활의 출발이 기대된다. 김승원(사직여중 리포터)

독서토론대회
동래중학교(교장 이동실)는 학생들의 개학을 맞아 의미 있는 행사로 9월 4일 독서 토론대회를 열었다. 논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좋은 것일까였다. 다섯 팀이 참가해서 3번 토론을 했고 학생들의 여러 가지 생각을 듣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  손세범(동래중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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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23 ㅣ 2019.10.02


시에 빠져 지하철을 그냥 보내다

그대 간 지 한 달. 도시철도 1호선 명륜역 승강장에 걸린 시화 제목이다. 제목만 봐도 애틋한데 누가 썼는지 알면 더 애틋해진다. 지은이는 소설가 최해군(1926~2015) 선생이다. 살아생전 부산의 큰어른으로 모시던 분이었다. 부부애가 극진했기에 한 구절 한 구절 입술을 깨물게 한다. 그동안 꾸려가던 꿈도/다듬어 가던 살림도/내 몰라라 그리 쉬이 버릴 수 있었던가. 68년 함께한 부인을 그리는 사부곡(思婦曲)을 읽느라 지하철이 들어와도 그냥 보낸다.


사부곡은 최악의 상황에서 써졌다. 25년 병석에 있던 부인이 타계하자 선생은 시름시름 아팠다. 지극정성으로 부인 수발을 도맡은 선생이었기에 상심이 컸으리라. 상심은 병으로 이어져 별세하기 직전 양산 요양병원에서 수술까지 받았다. 그 무렵 기력을 다해 쓴 시가 그대 간 지 한 달이었다. 일기와 단상을 모아 부산 중견 출판사 해성에서 펴내기로 한 책에 추가로 보낸 육필 원고가 이 시였다.

그대 떠난 지 한 달/이 방 저 방을 비워두고/영영 돌아오지 않을 건가/비워진 방에는/찬바람만 채워지고 있네//그동안 꾸려가던 꿈도/다듬어 가던 살림도/내 몰라라 그리 쉬이/버릴 수 있었던가//기쁨도 슬픔도/즐거움도 노여움도/한 몸 되어 함께한 68년/손 놓은 빈자리가/어이 이리 허전한가//어울리는 정과 정은/끝 간 데를 모를 줄 알았는데/그대와 이내 사이 갈라놓은 이 자리/사람살이가 이리도 무심한가//그대를 눈물로 보낸 피붙이들도/제 삶을 찾아 자리를 비웠는데/이내만 지켜야 하는 이 허망//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네/이 비로 그대 무덤의 잔디는/뿌리를 내릴 것이고/새싹도 돋아날 것이네//이내도 쉬이 이 자리 떠야 할 것이고/그대 곁으로 갈 것이네/기다려다오 그대와 이내의 그날들/그날들을 그리며 기다려다오.
 - 최해군 시 그대 간 지 한 달 전문

평생의 반려자는 김기분(1928~2014). 2014년 12월 말 세상을 떴으니 사부곡은 2015년 1월이나 2월에 썼지 싶다. 그리고 그해 8월 3일 영면했다. 부산 문인장으로 장례식을 치르던 날 묘소에서 후배작가가 사부곡을 낭송해 숙연했다. 같은 해 10월 요산문학축전 행사의 하나로 민주공원 소극장에서 최해군 소설가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애초 선생을 초청해 대담 형식으로 열려던 행사가 선생이 타계하면서 추모 콘서트가 됐다.
선생은 독자적 세계를 펴 보인 소설가였다. 요산 김정한과 향파 이주홍을 잇는 부산 2세대 현대문학 대표작가였다. 1962년 부산일보 장편소설과 동아일보 희곡으로 등단한 이래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숱한 역작을 내놓았다. 1990년 초부터 살던 거제3동 현대아파트 103동 1106호 거실 벽면엔 책 표지 액자가 수두룩했다. 모두 선생의 저서였다. 글동네 막내가 되어 선생 댁에 놀러 가선 나는 언제쯤 저렇게 내공을 쌓나 부러웠다.
"부산에 관해선 최해군 선생에게 물어라." 선생은 소설가에 머물지 않았다. 1세대 향토사학자로서 지역을 발굴하고 알린 공로는 소설 못지않았다. 세 권짜리 〈부산포〉(1985~1987)를 비롯해 〈부산의 맥〉(1990), 〈부산항〉(1992), 〈부산 7000년, 그 영욕의 발자취〉(1997), 〈부산사 연구〉(2000), 〈부
산에 살며, 부산을 알며〉(2003),
〈부산이야기 50마당〉(2007) 등 선생이 저술한 숱한 향토사와 향토의 이야기는 부산의 뿌리와 맥, 나아갈 바를 가늠케 하는 역작이었다. 전설로만 알던 금정산 금샘 발굴도 선생의 공로가 컸다. 부산 관련 궁금증은 선생에게! 오랫동안 나돈 부산의 불문율이었다.    
선생은 평생 교육자였다. 동래고를 비롯해 부산과 양산에서 40년 교직에 몸담았다. 부산 향토사에 매료된 때도 동래고 교사 시절이었다. 교장이 홍금술, 교감이 문인갑이던 1960년대부터 향토사 불모지나 다름없던 부산 곳곳을 찾아서 기록했다. 그것의 집대성이 아파트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저작들이다.
선생은 후덕했다. 그리고 멋쟁이 베레모 휴머니스트였다. 풍채만큼이나 마음이 넓어 후배작가가 모여들었고 제자는 서로 모시려 했으며 선생이 회장이나 고문을 맡았던 시민단체에선 수시로 자리를 만들었다. 생전 마음이 넓었던 만큼 선생이 남긴 빈자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하철 시 한 편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아 들어온 지하철을 그냥 보내고 만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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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6 ㅣ 2019.08.27


영혼의 빗줄기, 내면을 적시다

연일 내리는 비는 사람을 차분하게 한다. 살아온 날을 돌아보게 한다. 비를 대하는 마음 역시 비처럼 가늘고 낮아진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손창섭(1922∼2010)이 1953년 발표한 단편소설 비 오는 날은 말 그대로 비 오는 날 읽기 좋은 소설이다. 소설을 읽노라면 두껍고 뻣뻣하던 마음이 가늘고 낮아지며 가난하고 여렸으나 맑고 고왔던 젊은 날이 생각난다.      

동래 종점에서 전차를 내리자, 동욱이가 쪽지에 그려 준 약도를 몇 번이나 펴보며 진득진득 걷기 힘든 비탈길을 원구는 조심조심 걸어 올라갔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동욱과 원구는 전쟁 피난민이다. 소학교에서 대학까지 동창 친구며 둘 다 미혼이다. 대학에서 영문과를 전공한 동욱은 1·4후퇴 때 여동생 동옥과 피난 나와 미군 부대를 기웃거리며 동생이 그린 초상화로 생계를 잇고 원구는 잡화를 가득 벌여 놓은 리야카를 지키고 선 행상이다. 술자리에서 동욱이 원구를 집으로 초대했고 40일이나 계속된 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 원구는 전차를 타고 동욱이 세 든 집을 찾아간다.
원구가 전차에서 내린 곳은 동래 종점. 소설에는 전차 종점이란 구절이 또 언급된다. 에 딱 한 채 있는 집에 동욱 오누이 거처다. 왜정 때 요양원으로 쓰였다는, 모로 기울어지려는 낡은 목조건물이었다.
내가 비 오는 날을 처음 읽은 건 1980년 초.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였다. 문학도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소설이고 학교 근처 이야기라서 동욱이 살던 집이 어디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실제로 소설에 나타나는 글 약도를 따라 탐방에 나선 친구도 있었다. 그렇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끝내 오리무중이었다. 동래 종점 때문이었다.
동래 종점은 없는 말이었다. 동래 방면 종점은 온천장이었다. 동래는 종점이 아니라 중간역이었다. 동래역이 있던 곳은 현재 동래경찰서 맞은편 한국전력이고 온천장 종점은 온천장 부산은행이다. 작가는 왜 동래 종점이라고 했을까. 논쟁하던 문학도는 두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동래가 맞고 종점은 착오라는 주장과 다른 하나는 온천장 종점이 맞고 동래는 착오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주장도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동래가 맞는다는 주장은 요양원이 동래에 없었고 온천장에 있었다는 증언에 막혔고 온천장이 맞는다는 주장은 원구가 헛걸음치고 되돌아간 호박 덩굴 우거진 철둑 길에 막혔다. 온천장엔 기차가 다니지 않았기에 철둑길도 없었다.
범위를 넓혀 낙민동 한양아파트 뒤편 언덕배기 동산마을도 대상에 넣었다. 동래 기차역 기찻길이 가까웠고 동래 전차 역에서 마을까지 철길을 따라 걸었다는 동네 사람 증언도 있었다. 동산마을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동래) 종점에서 내려 개천을 끼고 올라가다가 개천 건너 왼쪽 산비탈이란 구절에 딱 들어맞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욱 집은 허구일지도 모른다. 소설적 상상력 내지는 이질적 장소의 결합에 의한 산물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1980년대 문학도가 그토록 열성을 기울인 건 소설이 가진 매력이 그만큼 컸던 까닭이다. 원구는 이후 여러 차례 더 동욱을 찾아간다. 실상은 살결이 유달리 희고 눈썹이 남보다 검은 여인 동옥을 보기 위해서였다. 왼쪽 다리가 어린애의 손목같이 가늘고 짧은 장애를 지닌 동옥에게 연정을 품기도 했으리라.
소설은 우울하게 끝난다. 마지막 찾아갔을 때 집주인은 바뀌었고 동욱 남매 행방은 불명이다. 동옥이 원구 오면 전해 달라고 편지를 남겼지만 주인집 아이들 실수로 찢어 없어진 상태. "병신이긴 하지만 얼굴이 고만큼 밴밴하고서야, 어디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집주인 말을 원구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는 자책의 소리로 들으며 원구는 호박 덩굴 우거진 밭두둑 길을 앓고 난 사람 모양 허정거리는 다리로 걸어나가는 것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소설을 다시 읽었다. 처음보다야 덜했지만 마음의 일렁임은 여전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집을 찾아 나섰던 글 친구들도 생각났다. 이 세상 가장 가늘고 가장 낮은 사랑을 소망했던 1980년대 초반 청춘들. 그 시대를 건너온 우리 모두에게 비 오는 날은 암울한 현실에서 하루하루 메말라 가는 내면을 촉촉하게 적시는 영혼의 빗줄기였다. 가만 눈 감으면 지금도 그 빗소리 들린다.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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